'공칠과삼(功七過三)'의 문화
등소평(鄧小平)
중국에는 있는데 한국에는 없는 것이 있다.
그 중 하나가 '공칠과삼(功七過三)'의 문화다.
등소평(鄧小平)이 모택동(毛澤東)의 행적을 평가하면서
그의 공(功)이 일곱 가지이고 과(過)가 세 가지인데,
공이 과보다 크기 때문에
그를 중국 근현대사의 최고지도자로 받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는 인생만사에 공과 과, 득(得)과 실(失), 미(美)와 추(醜)의 상반된 면이
공존한다는 만물의 진리를 가리키고 있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중국의 통치체제는 안정되고 사회와 경제가 그 바탕 위에서
큰 흔들림 없이 발전하고 있다.
얼마 전 중국 삼협대학이 주최한 세계총장협의회에서
24개국 총장들이 환담하는 자리에서 주고받은 이 말이
특히 마음에 와 닿은 것은 우리에게 지금 혼란이 지속되는 이유가
이것이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인 기독교회당 정원 내에 있는 장로 이승만 대통령 동상
최근 KBS 특집방송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방영됐다.
이승만 박사에게도 공과 과가 있다.
그는 우뚝 선 항일투쟁가였고 건국대통령이었으며
건국 이후의 혼란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세웠다.
물론 6·25전쟁 때 한강대교를 폭파하고 남하한 일, 개헌 등
독재정권으로 흐른 것 등 과도 있다.
하지만 인물로는 그만한 경력과 학식, 외교력과 지도력을 갖춘 이는 드물다.
그런데도 하와이 망명 이후 공은 다 잊히고 과만 지적될 뿐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또 어떠한가.
우리가 역사상 처음으로 풍요를 누리고
예체능이 전 세계인에게 감동을 주는 바탕이
1960~70년대의 경제발전에 있는 것 아닌가.
박 전 대통령에게도 물론 과가 있다.
유신체제로 정권을 유지하려던 독재는 잘못이다.
그렇지만 박 전 대통령 역시 남긴 공이 과보다 훨씬 많다.
지금 우리에게는 숭배할 만한 스승과 지도자가 없다.
존경할 만한 대통령,
어린이들이 배우고 마음으로 새길 가치관이 정립되어 있지 않다.
선진국에 가면 국민 모두가 받드는 인물들의 동상이
여기저기 서 있고 책에서도 배운다.
그들의 과(過)도 기억되고 있지만 공(功)을 더 사서 기리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과만 부각시켜 폄훼하고 파괴한다.
이승만·박정희 두 전 대통령에게는
'건국대통령' 경제대통령'이란 이름이 걸맞다.
다 같이 독재한 과가 만년(晩年)에 있었지만 공이 더 크고 남는다.
민주화에 큰 공이 있는 분에게는
'민주대통령', 선진화에 큰 공이 있는 분에게는 '선진화대통령' 등
이름을 붙여 기념관을 세우고 동상을 건립해 나라의 지도자로 모신다면
나라의 안녕과 번영에 얼마나 큰 힘이 될까.
그런데 얼마 전 남산에 이승만 동상을 세우는데
정부 관계자는 한 사람도 가지 않았고,
박정희 기념관은 서울 외곽에 만들어졌다.
사회와 경제가 커지고 복잡해지면 정치든 정책이든 회색지대가 늘고
이익이 상충되는 부분이 커지기 마련이다.
국방에도, 지역에도, 교육에도, 과학기술에도
좋고 나쁜 것들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에
한 면만 버리거나 편애하면 반대편의 반감과 반동이 생기고
거기서 끊임없는 분규와 투쟁이 생긴다.
그러면 중용(中庸)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우리 사회는 지금이야말로
'공칠과삼(功七過三)'의 정신과 이에 바탕한 정책선택이 필요하다.
극한투쟁으로 점철된 한국의 정치도 이제 조금 더 성숙한 관용과 배려,
한층 차원 높은 대도(大道)를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