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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최악의 역경을 헤쳐온 위대한 여인 - 앨리슨 래퍼 (Alison Lapper)

素彬여옥 2010. 12. 16. 00:20

최악의 역경을 헤쳐온 위대한 여인 - 앨리슨 래퍼 (Alison Lapper)

 

위대한 여인, 앨리슨 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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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여인, 앨리슨 래퍼!

 

장애인의 몸임에도 그렇게 당당함에 놀랬고, 그녀가 살아온 삶에 또 한 번 놀랬다. 

그녀는 나에게 진정한 아름다움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구족화가 겸 사진작가인 래퍼는 1965년 해표지증(海豹肢症) 환자로 태어났다. 

해표지증은 임신부가 수면제·신경안정제를 복용했을 경우에 태어나는 선천성 장애로,  

다리도 허벅지와 발이 붙어 있었다.

생후 6주만에 거리에 버려진 래퍼는 그후 장애인시설로 보내졌고 그녀는 이곳에서

19년을 보내야 했다. “정신마저 불구일 수는 없었다”는 그는 미술에 열정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1994년 브라이튼 대학(미술 전공)을 우등 졸업하고부터 전시회를 통해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두고, “팔 없이 태어났다는 이유로 나를 기형이라고 여기는 사회 속에서,

육체적 정상 상태와 미(美)의 개념에 물음을 던진다”고 설명했다.

끝없는 영감의 원천은 자신처럼 팔이 없는 고대 희랍 미인상(像), 밀로의 비너스였다.

22세 때 결혼했지만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가 9개월 만에 헤어진 그녀는

그 후 미혼모가 되어  아기를 낳았다.

당시 의사는 기형아 출산을 걱정해 말렸지만 아들은 온전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왔다.

그는 ‘장애인 엄마’에 대한 사회의 편견을 깨기 위해 모자(母子) 사진전까지 열었다.

임신 당시 그녀의 모습은 지금 런던 트래펄가 광장에 높이 3.6m 조각상으로 남아 있다.

임신 9개월 된 그녀를 모델로 한 마크 퀸의 작품 ‘임신한 앨리슨 래퍼’가 공모전을 통해

지난 9월 이곳에 설치된 것.

그는 여권 신장을 위한 사회 활동에도 앞장서 왔다.

국제 앰네스티가 28일 런던에서 개최한 ‘여성에 대한 폭력 중단’ 전시회에도 작품을 낸 그는

“전 남편의 손에 고통을 당해봤기 때문에 가정 폭력의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안다”고 했다.

강철 같은 의지와 지극한 예술혼은 일찍이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2003년 스페인은

‘올해의 여성’상을, 영국 왕실은 대영제국국민훈장(MBE)을 각각 수여했다.

지난 9월 펴낸 자서전 ‘내 손 안의 인생’은 한국어를 비롯, 독일·스페인·이탈리아·일본어 등으로

번역됐다. 이 책에서 그녀는 “나 같은 장애인들이 다른 사람에게 우리 삶이 어떤 것인지

알리려 하지 않는다면, 이들은 우리의 어려움들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썼다.


 당당히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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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살아있는 비너스 구족 화가 - 앨리슨 래퍼

 

앨리슨 래퍼!
팔, 다리가 없거나 짧고 손발이 붙어있는 '해표지증’ 장애를 안고 태어남.
6주만에 부모에게 버림받음. 복지시설로 보내졌음.
19세대 남편을 만났지만 폭력에 시달렸고 2년뒤 이혼.

뒤늦게 브라이튼대를 졸업하면서 그림가 사진작업에 몰두.
세계적인 구족화가와 사진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한국을 찾은 그녀는 "영혼이 아름다워야 진짜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책 冊

 

  앨리슨_래퍼_이야기.jpg

 

 

앨리슨 래퍼 이야기

앨리슨 래퍼 지음 / 노혜숙 옮김

황금나침반 / 2006년 5월 / 239쪽 / 9,800원  



▣ 저자   앨리슨 래퍼

1965년, 양팔이 없고 다리가 짧은, 해표지증(phocomelia)이라는 기형으로 세상에 태어났다.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정부의 장애인 시설에서 성장하였으나, 17세부터 정식으로 미술공부를 시작하여 28세에 브라이튼 대학에서 1등급 학사 학위를 받았다. 1999년, 미혼모로 임신을 하게 된 그녀는 만삭의 몸으로 조각가 마크 퀸의 모델이 되어 <임신한 앨리슨 래퍼>라는 작품을 탄생시키게 된다. 높이 5미터의 이 작품은 2005년 가을, 트라팔가 광장에 전시되었다. 그녀는 또한 ‘2005년 세계 여성 성취상’을 수상했으며, 영국 왕실로부터 대영제국국민훈장(MBE)도 수여했다. 현재까지 꾸준한 작품 활동과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6살이 된 아들 패리스도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 역자 노혜숙

이화여자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한 후 서강대학교 대학원 철학과를 수료했다. 한국산업은행과 바클레이즈 은행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베이비 위스퍼』, 『창의성의 즐거움』, 『질문의 7가지 힘』, 『너무 일찍 나이 들어버린,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 『의미있게 산다는 것』, 『너의 꿈에 박수를 보낸다』, 『성공적인 부모 리더십』 등 다수가 있다.


▣ Short Summary

앨리슨 래퍼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삶을 제한하는 것들에 도전해왔다. 신체적 장애와 가족으로부터의 외면, 난독증으로 인한 학습부진 그리고 미혼모로서의 출산, 이러한 모든 것들을 그녀는 극복해냈다. 앨리슨은 주로 자신의 모습을 작품에 담는다. 그녀는 자신의 기형을 장애라기보다는 하나의 특별한 형태로 생각하며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키고자 한다. 그것은 장애인에 대한 문제를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고 편견을 바로잡기 위한 그녀의 의지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피력한 그녀의 소감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내 작품은 거의 팔리지 않는다. 장애인 사진을 벽에 걸어놓고 싶어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보는 눈을 변화시키는 것도 예술의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앨리슨 래퍼가 직접 쓴 자서전이기에 그녀의 삶의 역정이 더욱 생생하게 전달된다. 그중 가장 감동적인 부문은 그녀의 정신세계에는 움츠림이나 좌절이 없다는 점이다. 앨리슨은 학창시절에 난독증이 있어 공부를 잘 못했지만 활발하고 용감하여 학생회장이 되기도 했고, 장애인 시설에서 독립하면서부터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운전과 승마를 배우고, 미술공부를 시작했다. 그녀는 비장애인 남자들과 사랑하고 결혼하고 이별했으며 아이도 낳았다. 그러한 당당한 삶이 결국 영웅들의 조각상만 전시된다는 트라팔가 광장에 자신의 조각상을 나란히 하게 만들었다. 앨리슨 래퍼의 이야기는 꿈과 용기만 있으면 어떠한 장애든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불어넣어 준다. 하지만 그 꿈과 용기는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한테서만 나온다는 것을 더 근본적인 메시지로 전달하고 있다.


차례

따님입니다. 래퍼부인

홈, 스위트 홈

테이트 가족

사랑하는 어머니

하급반 기숙사

상급반 기숙사

우리에게 부적절한 것

푸른색 미니메트로

런던 생활

결혼 그리고…

앨리슨, 미술가 되다

엄마가 되는 거야

나의 아들, 패리스

마이클과의 만남

트라팔가 광장의 조각상

인물
앨리슨 래퍼 (Alison Lapper)
출생 1965년 4월 7일
출신지 영국
직업 화가,사진작가
학력 브라이턴대학교
데뷔 1994년 전시회
경력 세계구족화가협회 회원
수상 2005년 월드어워드 세계여성상 성취부문
        2003년 스페인 올해의 여성상
대표작 내손안의인생
위키백과 앨리슨 래퍼(alison lapper 1965년 4월 7일 -)는 영국의 구족화가이다.
그녀는 태어났을 때 팔이 없고 해표지증이다..... 더보기
My Life in My Hands
 
앨리슨래퍼

 

출처 : 그대 머문 그리움으로
글쓴이 : 청사초롱 원글보기
메모 : 세상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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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표지증 - 양 팔은 아예 없고 다리만 조금 붙어 있는 장애.

 

앨리슨 래퍼는 1965년 양 팔은 아예 없고 다리만 조금 붙어 있는 해표지증이라는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태어난 지 6주 만에 버려져 19세까지 보호시설에서 자랐다. 22세 때 결혼했으나 남편의 구타에 못이겨 9개월 만에 이혼했다. 그 후 헤덜리 미술학교와 브라이튼대 등을 거치며 미술 공부를 하면서 예술가로 새 출발했다. 자신의 벗은 몸을 모델로 사진을 찍거나 입으로 그림을 그려 호평을 받아온 그는 밀로의 비너스상에 빗대 스스로를 '현대의 비너스'라 부른다.

지난해 임신 9개월인 그를 모델로 영국 조각가 마크 퀸이 만든 조각 '임신한 앨리슨 래퍼'가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전시돼 화제를 낳기도 했다.

 

 최악의 역경을 헤쳐온 위대한 여인- '앨리슨 래퍼' 이야기

                         

                             고난 속에서 진정한 승리

이 여인을 기억하시나요?

 

모든 사람에게 고난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단 고난이 닥아올때 어떻게 그 고난을 이겨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미래가 결정지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은 흔히들 사회에서와 심지어 가족에게서 까지

외면당하는 일들이 흔히 있습니다. 

장애인을 보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불쌍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그 장애인은 육체적으로 힘들고

어려운것 뿐이지 마음과 생각까지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정상인보다 그들이 더 영적으로는 밝고

깊은 심연의 세계까지를 바라볼 수 있는

영적인 사람으로 살게되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송명희자매를 아시는 분들이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 분은 그가 태어날 때부터 전신마비 장애인으로 태어났지만,

그 분이 지은 찬송을 아시지요. "나 남과 같이 가진 재물,지식없고

건강도 없으나,난 남이 없는것 있으니

그것은 난 남이 못본 것을 보았고,난 남이 듣지 못한 음성들었고,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으니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없지만,

난 남이 없는 것 받게 하셨다"고 노래 했습니다.

얼마나 위대하고 깊고 감명스럽습니까?

오늘 여기에 소개되는 엘리슨 래퍼 자매 역시

우리의 송명희 자매와 다를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쓸데없는 공명심과 인기에 연연해서 자신을 모르고 가족도 외면하고

오직 자기하나만 생각하다 자살하는 사람이 정말

영육간에 불구자가 아닐까요?

깨달아야 합니다.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더욱 안타까운 것은 연애인들이 죽는 모습을 보고

그런 죽음을 택하여 여기 저기서

같은 유형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정말 인생불구자들이 불어난다는 뉴스는 아연실색하게 만듭니다.

우리 모두 바로 살고 바로 깨닫고 누가 나의 생명의 주인 인것을

 절실히 깨달아야 할 때가 된 줄로 믿습니다.

내가 내 목숨을 맘대로 할 수 있는 주인으로 착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 슬픕니다.

 

 

 

 

 

 

최악의 역경을 헤쳐온 위대한 여인

- 앨리슨 래퍼 -

 

 

 



앨리슨 래퍼(Alison Lapper)는 1965년

영국에서 팔다리가 기형인 질병

(선천성 희귀 염색체 이상)을 안고 태어나,

생후 6주만에 친부모에게 버려져

보호시설에서 성장했다.

22세 때 결혼생활을 시작했으나,

남편의 폭력으로 9개월 만에 파경을 맞았다.

 

그러나 그녀는 장애와 고난을 극복하고

어릴 때부터 관심이 있었던 미술을 뒤늦게 시작해 해덜리

예술종합학교 브라이튼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였고,

1994년에

First Class Honours(최고우등학위)로 졸업하며

예술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입과 발로 그림을 그리는

구족화가이자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팔이 없이 태어났다는 이유로 나를 기형이라고 여기는

사회 속에서 육체적 정상성과

 미의 개념에 물음을 던진다" 라고 말하며,

자신의 신체적 결함을 작품에 적극적으로 담아내

장애인에 대한 편견에 도전해왔다

아들을 출산한 후에는 임신한 여성의 몸과 모성애를

주제로 작품을 펼쳐왔으며,

이 같은 작품 활동은 장애인과 여성들에게

희망을 준 공로로 인정돼,

독일에서 열린 '위민스 월드 어워즈(Women's World Awards)

'에서

'세계 여성성취상'을 수여했다...  비너스“팔 없어도 당당해요”

 

 


 

 

 

 

앨리슨 래퍼 방한 기록사진들 (2006.4.24)

 



앨리슨 래퍼(左)가 아들 패리스와 함께 24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게 우리 엄마 자서전이에요!"

 

 

꿈이 카메라맨? 앨리슨 래퍼의 귀여운 아들 패리스

 

 

"나는 강한 사람이다"

 

 

앨리슨 래퍼의 아들은 '취재진을 취재중'

 



앨리슨 래퍼의 건강한 장난꾸러기 아들 패리스

 

 

선물할 자신의 사진작품과 함께 한 앨리스 래퍼 


 

 

화사하게 차리고 나타난 '살아있는 비너스' 앨리슨 래퍼

 

 
'살아있는 밀로의 비너스' 앨리슨 래퍼 모자

 

 

패리스에 뽀뽀하는 앨리슨 래퍼

 

 

"엄마 물 마셔"

 

앨리슨 래퍼 에버랜드 방문

 

앨리슨 래퍼 에버랜드 방문

 

26일 경기도 고양시 홀트일산복지타운을 방문한 앨리슨 래퍼가

직업재활관 도예실에서 입에 붓을 물고 도자기에 그림을 그려넣

고 있다./우영식/지방/-지방기사 참조- 2006.4.26 (고양=연합뉴스)

 

자신의 작품을 보고 있는 앨리슨 래퍼

 

 

 

한국 구족화가 만난 앨리슨 래퍼


아들 한복 선물 받은 앨리슨 래퍼


'앨리슨 래퍼는
팔과 다리가 없는 장애인으로 태어났다.
"괴물' 이라 불리었던 그녀는
생후 6주만에 어머니에게서 버림받고
장애인 보호시설에서 자라면서
줄곧 세상의 편견과 배척을 이겨내야 했다.
그후 미술을 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브라이튼 미술대학을

졸업 했고,
2000년 주위의 우려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들 패리스를 건강하게 출산하여
구족화가.사진작가.여성, 엄마로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녀는 말한다.

 "장애인이지만 정신마저 불구일 수는 없었다. 
나는 모든 것을 견디고 웃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 그래 왔다." 

                   
 -『앨리슨 래퍼 이야기』책 발췌-


 

*********************


한 여인이 우리를 울린다.
한 여인이 우리 가슴에 희망을 듬뿍 심어준다.
살아 있음에 감사를...
한 여인이 진정한 삶의 의미를 일깨워 주면서 감동으로

닥아 온다.

한 여인이 이렇게 위대하고 아름다울 수 있을까...
열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우리나라 식으로 표현하면
'민들레 같은 여인'
'질경이 같은 여인' 이다.
척박한 사토(沙土)에서 오아시스를 가꾸는 여인.
짓이겨 밟힐수록 향기를 뿜어 자신을 승화시키는 여인.

엄마 앨리슨 래퍼와 아들 팰리스.
그림같고 조각상같고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천사같다.

만약...
아들 패리스가 없었다면 앨리슨 래퍼의 현실을 어떻할까.
그녀의 성품과 근성으로 볼 때
역경을 극복한 감동과 희망의 여인은 틀림없을 것이나
엄마의 강인함. 모성애. 원숙한 여인은 분명 아니었으리라.

엄마의 부족한 부분을 보상하듯
아들 팰리스는 너무나 잘 생겼다.
함께 있는 모자의 모습이 그림이고 환상이다.
아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바라보는 앨리슨 래퍼에게는
패리스가 또한 꿈이요 가장 큰 희망이 왜 아니랴.


어느 책의 대목이 떠 오른다.

"神은 감내할 만큼의 고통을 준다."
"큰 고통을 주는 것은 크게 쓰이기 위해서다."

말이야 쉽고,
누구나 '그럴 것이야' 라고 고개를 끄덕이겠지만
당사자의 삶은 어떻했을까.

神만이 걸을 수 있는 길을....

의연하 살아 온 여인..
지구촌의 빛이고 희망이기에
난 그녀에게 기립 박수를 보낸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노력파는 누구인가요?‘앨리슨 래퍼’

 

 

노력파 화가 ‘앨리슨 래퍼’라 생각해요
구족화가의 얘길 들어 본적이 있는데 많은 같은 장애를 가진 분들에게 희망이 된 분이시네요
비록 장애를 안고 태어났지만 ,화가로서의 역량과 열정을 보여준 ‘2005 세계 여성상’을 수상한
래퍼!를 꼽고 싶습니다

영국의 트라팔가 광장에 세워졌다는 영국 조각가 '마크 퀸'의 조각상 인 장애인 동상의 주인공,

'임신한 앨리슨 래퍼' 가 모델이 되었던 그녀는

살아있는 비너스라 별칭도 갖고 있지요

 

1965년 해표지증(Phocomelia)을 안고 태어나 생후 6주 만에 버려진 뒤

보호시설에서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해요

 

실상 화가로서의 명성은 자신의 나체를 모델로

 빛과 그림자를 이용해 마치 조각 같은 그래서 대리석처럼 보이는 예술적 영상을

표현해 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데 ...

 

그 사실보다 더욱 놀아웠던 것은 ,

장애아를 낳을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지난 2000년에 주변의 만류에 끄덕하지 않은채

아들 패리스를 출산했답니다 그녀의 아들은 건강하게 태어났구요

 

                          

Untitled Lambda print Buy from Britart(좌)

Untitled Lambda print Buy from Britart (우)

 

                                     

 Untitled Lambda print Buy from Britart(좌)

Untitled Lambda print Buy from Britart(우)

 

그녀의 불꽃같은 삶과 화가 ,사진작가로서의 열정은 많은 사람들의 맘을 온통 감동으로

순화시키기에 충분한것 같습니다

2년전 텔레비젼 뉴스에서 접한 그녀의 모습은 잊혀지지 않더군요

 

보통의 엄마도 아일 기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입으로 우유를 먹이려는 모습 그것은 어머니의 모성 ...

 

더없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가장 질긴 사랑

위대한 모성이였습니다

눈물나게 아름다운 그녀 - 앨리슨 래퍼

눈물나게 아름다운 그녀 - 앨리슨 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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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 그녀의 홈 페이지 / 글 : 신문기사 부분 인용 ]

 

 "팔이 없이 태어 났다는 이유로 나를 기형이라고 여기는 사회속에서 육체적 정상성과

 미의 개념에 물음을 던진다."

  '살아있는 비너스'로 불리는 영국인 예술가 앨리슨 래퍼(41)는,

  2년 前  이맘 때 포럼과 전시를 위한 방한을 가졌다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자세로 평생을 살아 왔다.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모든 이들에게

  내 경험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


 

         앨리슨 래퍼(Alison Lapper),

         그녀만의 고유한 신체적 조건과 그로 인해 차별되었던 삶의 과정에서 연유한

         극복의지와 生의 열정 !!!

         이를 통해 그녀는 스스로를 특별하고 유일한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켰다

         자신의 빈약한 몸 위에 스스로 날개들 달아준 의지를 통해 우리는 '한계'라는 틀이

         어떻게 극복되는지 지켜볼 수 있다

         불구로 태어난,

         그러나 예술가로 타고난 그녀의 자유로운 영혼과 행위가 아름답다.

 

 

                                 

 

                                 

 

 

       그녀가 자신의 신체를 소재이자 주제로 삼아 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신체의 아름다움에 대한 통념을 깨는 통쾌함'

       즉 예술에 있어서의 이상적 미, 정상성의 기준에 질문을 제기하는 듯 보인다

       또한 장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독특한 아름다움' 또는 '유쾌한 유머' 로 승화시키는

       그녀의 작품 이면에 장애인, 여성과 같은 소수자의 목소리가 강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 앞에서 우리는 무엇보다 중요하게 느끼는 것은

       래퍼가 여성이기 이전에,

       장애인이기 이전에 자유롭고 창조적인 의지를 지닌 이 시대의 예술가라는 것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에 대한 구분,

       신체의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하는 그녀의 작품에는

       분명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세계가 존재한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은 그녀 자신의 나신을 담은 사진작품 34점으로,

       빛과 그림자를 이용하여 고전조각과 같은 인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작품들과

       그녀가 최근 열중하고 있는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한 합성사진 작업도 포함되어 있다

       명암을 강하게 대비시켜 극적인 효과를 창출하는 그녀의 사진은,

       밀로의 비너스 상을 연상하게도 하지만 신체의 급격한 해체 혹은 파편화를 연상시키는

       조형적 효과는 현대적이고 실험적인 느낌을 준다

       미완성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토르소 그 자체인 그녀의 몸은 화면 안에서 

       살아 스스로 선이 되고 면이 되어 전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앨리슨 래퍼는 임신 9개월째인 지난해 가을,

       영국 현대미술가 마크 퀸에 의해 '임신한 앨리스 래퍼' 라는 5m짜리 조각 동상이

       트래펄가 광장에 전시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사진은 그녀의 조각상이 있는 광장]

 

 

 

 

▒ "완벽한 엄마가 되고 싶고 혼자 다 해내고 싶지만 아직도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곤 해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999년 미혼모로 아이를 낳은 그녀의 아들은

비장애 아동으로 태어나 건강히 자라고 있다

아이를 위해 해주고 싶은 것이 많은 그녀는 입과 발 밖에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꼈지만 삶을 비관하지는 않았다

 

▒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는 전혀 창피하지 않아요

그래서 나 자신을 꾸밀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용기와 뜨거운 모성애가 깊은 감동을 전해 준다.

1965년 짧은 다리와 양팔이 없는 해표지증(Phocomelia)을 안고 태어나 생후 6주만에 버려진 뒤

보호시설에서 성장하면서 겪었던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를 담은,

[앨리슨 래퍼 이야기]- 황금나침반 2006을 출간했다

당당한 도전으로 삶에 맞서 온 그녀의 용기있는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갖고 온 글]

▒ 모든것을 갖추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디하나 부족함이 없어 뵈는 사람이라도 몇 %의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

부족함을 메우려는 노력이 개인의 발전을 촉발하고

인류의 지평을 넓히는 결과를 낳기도 하지만 자족(自足)의 미덕을 터득치 못함으로써

삶의 상당부분은 불행의 그늘에 머물고 만다

부족함 투성이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오히려 그 부족함에서 자족의 길을 찾아

숨은 능력을 발휘하며 행복한 삶을 만들어 내는 경우를 종종 본다

 

구족(口足)화가들은 일반인의 눈으로 보면 부족함 투성이지만 그들의 삶은 멀쩡한 사람보다

치열하고 행복의 강도도 진하다

구족 화가들이 예술가로 대우받은 역사는 길지 않다

이들은 단지 호기심의 대상이나 생계유지를 위해 자선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로만 여겨 졌었다 상당수 화가로서의 탁월한 재능을 입증했지만 신체적 장애가 이들의 작품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데 장애가 되었다

소아마비를 앓아 팔을 못 쓰는 에릭 스테크만 (독일. 사망)이 같은 처지의 장애인들과 함께

1956년 세계구족화가협회 (AMFPA : Association of Mouth and Foot Painting Artists)를

결성하면서 이들은 예술가로서 자립의 길을 모색할 수 있게 됐다.

 

 

      

 

 

       17세때 미술공부를 시작해 1994년 학사학위를 딴 그녀는,

       암울한 유년기와 불운한 결혼생활을 겪었지만

       불굴의 의지로 일어서 세계적인 구족화가가 되었다

       그리고 지난해는 세계여성 성취상을 수상하고 대영제국 국민훈장까지 받았다.

   

 

                  

 

                                     

 

 

      아들과 함께 방한한 그녀.

      그녀의 전시는 2006년 4월 28일~5월 25일 까지 [예술마을 해이리 Lee & Park 갤러리]

      사단법인 해이리 T. 02-733-9958 [참고로 해이리에 근무하시는 실장님과 통화를 하여

      사진을 순수한 블러그활동에 의한 특정한 목적과 이익이 발생하지 않음에 대한 동의를

      구하였음을 밝혀 두기로 한다] 열렸었다.

      

      그녀를 초청한 이유를 들어 보자면,

     

      우리나라 장애인에게 큰 희망을 주는 좋은 계기가 될 뿐만 아니라

      장애인 복지정책 입안자 입장에서도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손학규 前지사는 말했었다.

 

      그녀를 보며 큰 부끄럼에 마음자리가 소란스럽다

      어떤 모양새로 난 살아가고 있는가?  

      육체의 장애가 아닌 내 영혼의 장애로 

      내것이 아닌 것에 욕慾을 내지는 않고 있는지,

      하릴없이 理想(모든것의)을 쫒는 허구는 들이고 있지는 않는지,

      원願 들이는 이 마음짓은 무엇을 잡고자 하는 것인지,

      성찰로 고요함을 놓지 못하고 늘 지어대는 마음자리를 하고서

      그저 안위하고 작게 마음쓰고 스스로 가진 것의 자존을 모르고 살아감이라,

      재작년 오월에 우리들이 만난 그녀의 아름다운 깊이에 눈물겹다  

      더욱 많은 이들이 그녀를 알고

      그녀를 사랑하였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이 글을 써본다.

      

 


                                         

 

 

     앨리슨 래퍼 (Alison Lapper)는,

      1965년 영국에서 팔다리가 기형인 질병(선천성 희귀 염색체이상)을 안고 태어나

      생후 6주만에 친부모에게 버려져 보호시설에서 성장했다

      22세때 결혼생활을 시작했으나 남편의 폭력으로 9개월만에 파경을 맞았다

      그러나 그녀는 장애와 고난을 극복하고 어릴때부터 관심이 있었던 미술을 뒤늦게 시작해

      해덜리 예술종합학교와 브라이튼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였고

      1994년에 First Class Honours (최고 우등학위)로 졸업하며 예술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입과 발로 그림을 그리는 구족화가이자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신체적 결함을 작품에 적극적으로 담아내 장애인에 대한 편견에 도전해 왔다

      아들을 출산한 후에는 임신한 여성의 몸과 모성애를 주제로 작품을 펼쳐 왔으며,

      이 같은 작품 활동은 장애인과 여성들에게 희망을 준 공로로 인정돼 독일에서 열린

     '워민스 월드 어워즈 (Women's World Awards)' 에서 '세계여성 성취상'을 수여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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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슨 래퍼 삶의 감동 전한 세계적인 구족화가
삶의 감동 전한 세계적인 구족화가 앨리슨 래퍼
“장애는 마음속에 있는 것, 마음의 장애를 이겨내고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면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어요”

기획·이남희 기자 / 글·서윤재‘자유기고가’ / 사진ㆍ박해윤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살아있는 비너스’라 불리는 구족화가 앨리슨 래퍼가 여섯 살배기 아들과 함께 방한, 8박9일간 머물렀다. “극복할 수 없는 장애는 없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는 그가 들려준 감동적인 삶의 메시지 & 예술세계.

양팔이 없고 다리가 기형적으로 짧은 선천적 장애를 딛고, 세계적인 구족화가 겸 사진작가가 된 영국 출신 예술가 앨리슨 래퍼(41)가 지난 4월23일, 8박9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그는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경기도 영어마을 파주캠프에서 열린 ‘제1회 영 챌린저 포럼’에서 자신의 인생을 주제로 강연한 것을 비롯,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한국 구족화가협회 회원들과 만남을 가졌다. 또한 장애아 보호시설 및 국회, 국가인권위원회를 방문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

래퍼는 ‘인간승리’라는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악조건 속에서 험난한 인생을 살아야 했지만 불굴의 의지로 우뚝 섰다.

“극복할 수 없는 장애는 없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며 말문을 연 그는 “장애는 마음속에 있는 것일 뿐 마음의 장애를 이겨내고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면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목숨을 건 출산은 편견에 맞선 또 하나의 도전

앨리슨 래퍼를 보고 우리가 놀라는 점은 비단 그가 일궈낸 사회적인 성과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그토록 심한 장애와 주위의 편견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고 훌륭하게 키우고 있는 ‘어머니’라는 점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래퍼가 처음 한국 땅을 밟았을 때, 경쾌한 청재킷 차림으로 전동 휠체어를 탄 그의 옆에는 여섯 살배기 아들 패리스가 엄마의 옷깃을 꼭 잡은 채 그림자처럼 에스코트하고 있었다. 불편한 몸임에도 밝고 당당한 래퍼와 천진난만한 패리스 모자의 다정한 모습은 취재진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장애를 안고 태어났지만 긍정적이고 밝은 성격이었던 래퍼는 비장애인 남자와 사랑에 빠져 22세에 결혼을 했다. 그러나 남편의 지속적인 폭력에 시달려야 했던 그는 결국 2년 만에 이혼을 선택했다. 그 후 몇 번의 연애와 유산을 경험하고, 34세에 다시 아이를 갖게 된 래퍼. 그에게 있어 임신과 출산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선택이었다. 아이가 점점 커지면서 척추와 다른 신체기관에 무리가 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주변의 많은 이들이 ‘아이가 어머니와 같은 장애를 가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들어 그의 출산을 극구 만류했다.

“사람들은 장애인은 아이를 출산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직접 찾아와 나같은 사람이 아이를 낳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충고해주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죠.”

사람들의 싸늘한 편견만으로도 버거웠던 당시 설상가상으로 아이의 아버지마저 등을 돌리고 떠났다. 그의 인생에 있어 가장 힘든 시기였다. 하지만 그는 주저 없이 엄마의 길을 선택, 건강한 사내아이를 낳았다. 비록 두 팔로 아이를 안을 수는 없었지만 그에게 출산의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축복이자 벅찬 감동이었다고 한다.

임신과 출산 후에도 래퍼가 넘어야 할 벽은 또 있었다. 바로 육아문제. 아이를 안아줄 수도 없는 그가 온전한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아이 키우는 법을 터득해야 했다. 입으로 젖병을 물리고, 아이옷을 입으로 물어 안전하게 들어 옮기는 연습을 해야 했다. 그는 모유수유도 했다.

두 팔이 없는 래퍼가 숟가락을 입에 물어 아들에게 음식을 먹이고, 자동차에 아이를 태워 짧은 두 다리로 운전하며 학교에 보내는 래퍼의 일상을 소개한 TV 프로그램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감동을 넘어 경이로움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임신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이를 키우는 동안에도 주위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장애는 마음속에 있는 것, 마음의 장애를 이겨내고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면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어요”

자신과 아들이 모델이 된 사진을 관람하고 있는 앨리슨 래퍼(좌).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앨리슨 래퍼와 패리스 모자(우).

“사회복지사들은 내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를 들어 아이를 양육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는 패리스를 복지시설로 보내라고 명령했어요. 하지만 난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제 아이니까요.”

래퍼는 자신의 장애를 꿋꿋이 이겨냈던 것처럼 세상의 편견으로부터 아들을 지켜냈다. 그는 평소 자신의 장애에 대해 아들과 터놓고 얘기해왔고, 아들 패리스 역시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엄마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앨리슨 래퍼는 1965년 임신부가 수면제나 신경안정제를 복용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해표지증(팔다리가 바다표범처럼 짧은 증세)’을 안고 태어났다. 헬렌 켈러와 오토다케 등 장애를 극복한 이들의 경우를 살펴보면, 부모의 지극한 정성으로 성장한 데 반해 그는 친부모에게조차 철저히 외면당한 채 살아왔다.

“어머니는 저를 낳고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생긴 것도 끔찍한데다 곧 죽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아요.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았다는 것을 무슨 괴물이나 외계인을 낳은 것처럼 일종의 저주라고 생각해 부끄러워했겠죠.”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모에게 버림받은 래퍼는 영국 정부로부터 일반 가정에서는 양육할 수 없다는 판단을 받고 복지시설로 보내졌다. 어린 시절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래퍼는 “제 어린 시절 사진이라곤 모두 의료기관에서 찍은 자료 사진뿐인데, 하나같이 의수와 의족을 착용하고 있죠. 당시 사람들은 이런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 가짜 팔다리를 만들어줘야 조금이라도 정상인처럼 보일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에요. 하지만 전 무겁고 불편한 그것들이 정말 싫었어요”라며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하지만 친가족조차 래퍼를 외면했던 그 시절, 그에게 따뜻한 애정을 준 또 다른 가족이 있었다. 그에게 각별한 애정을 쏟았던 수잔나라는 간호사의 오빠 가족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래퍼가 네 살 때 정식으로 입양하려 했으나 래퍼의 어머니가 반대하는 바람에 무산되고 말았다.

“어머니는 태어나자마자 저를 버렸고, 저를 사랑해줄 다른 가족을 가질 기회조차 빼앗았어요. 지금도 도무지 그 이유를 모르겠어요. 장애아를 낳아 제대로 기르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스스로를 밝고 긍정적인 성격이라 말하는 래퍼지만 그런 그에게도 사춘기는 견디기 힘든 고통의 시기였다. 정상인과는 다른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기에 한때는 조금이나마 ‘덜 다르게’ 보이려고 의수와 의족에 집착하기도 했다.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 예쁘지 않다. 장애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혐오감을 준다”는 말을 들으며 자라왔기 때문에 쉽지는 않았지만 래퍼는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거추장스러운 의수와 의족을 벗어던지면서 비로소 자유를 얻었다. 17세에 복지시설을 떠나면서 그는 본격적으로 독립을 준비했다.

“당시 모든 걸 혼자서 해나가야 한다는 것이 무척 겁이 났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절대 독립적으로 살 수 없을 거라 생각했죠. 전 그런 편견을 깨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했어요.”

“장애는 예술적이고 아름답게 보일 수 있어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그는 뒤늦게 브라이튼대에서 미술을 전공하며 장애인이 아닌 ‘예술가’로서 자신의 삶을 개척했다. 팔 대신 입과 발로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재능을 키워 나갔다. 주로 자신의 나신을 모델 삼아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래퍼. 그가 회화작품에 전념해오다 사진작업을 하게 된 것도 자기 몸을 사랑하지 않고는 진정한 예술을 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사춘기 시절까지 장애를 가진 자신의 모습을 사랑할 수 없었지만 ‘밀로의 비너스’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고.

“그림을 보는 순간 ‘오! 세상에 저건 바로 나잖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팔다리 없이 몸체만 있는 조각작품 토르소는 예술 작품으로 감상하면서 팔다리가 없는 장애인은 차별 혹은 동정의 대상으로 여기잖아요. 이런 편견을 넘어 장애가 예술적이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앨리슨 래퍼는 “팔 없이 태어났다는 이유로 나를 기형이라고 여기는 사회 속에서 육체적 정상성과 미의 개념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싶었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의 삶에 또 한 번 변화를 가져온 것은 바로 ‘임신한 래퍼의 조각상’이다. 영국 현대미술가 마크 퀸이 임신 9개월의 래퍼를 모델로 만든 5m 높이의 조각작품이 영국 런던 중심 트라팔가 광장에 전시되면서 세계적으로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 그 덕분에 래퍼는 ‘살아있는 비너스’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지난 2003년에는 버킹엄궁에서 여왕으로부터 대영제국 국민훈장을 수여받았고, 독일에서 열린 ‘2005 세계여성상’ 시상식에서는 장애에 대한 편견에 도전하는 예술작품으로 사회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세계여성 성취상’을 수상해 국제적인 명성까지 얻었다.

래퍼는 “장애인도 모두 하나의 존재로서 중요하다”며 “한국인들이 장애에 대한 생각을 바꾸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그는 자신이 예술가로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본인의 의지 외에도 영국 정부의 많은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장애인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래퍼는 한국에서도 장애인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끝)

살아있는 비너스 앨리슨 래퍼

2006년 4월 26일 런던여행길에 버킹엄궁, 대영박물관, Tower Bridge를 거쳐서 간 곳이 트라팔카광장인데, 여기서 그저께 저녁 즉 24일밤 여행 봇따리 싸는 중에 잠깐 보았던 어느 한 사람의 조각상을 보았다.
이름하여 "살아있는 비너스" 앨리슨 래퍼 (Alison Lapper)!
이번 여행은 "살아있는 비너스"의 누드상과 루브르박물관의 "밀로의 비너스"를 동시에 볼 수 있었던 것 만으로도 너무나 값지다. 그것도 출국직전에 TV화면으로 얼핏 보았던 앨리슨 래퍼였기에 더욱 감명이 깊었다.

"복도에서 아이 우는 소리가 들리세요? 방금 태어난 아기예요. 그런데 상태가 끔찍해요. 팔다리가 없고 커다란 붉은 점이 얼굴을 온통 뒤덮고 있어요. 차라리 작은 괴물이라고 해야 할 판이예요"
2005년 대영제국 국민훈장과 세계여성성취상을 받은 여성 구족화가 겸 사진작가 앨리슨 래퍼의 자서전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녀는 1965년 태어날 때부터 양쪽 팔이 모두 없고 다리는 무릎 아래가 없이 넓적다리 뼈에 발이 달려 있는 형상의 `해표지증`(海豹脂症 Phocomeliaㆍ팔다리가 바다표범처럼 짧은 증세)이라는 기형을 갖고 태어났다.
(사진은 런던 트라팔카광장에 세워진 앨리슨 래퍼의 만삭 누드상)

생후 6주만에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장애인 보호시설에 맡겨져 차별과 편견과 학대를 받으며 자랐다.
22세에 결혼했지만 결혼 이후 돌변한 남편의 폭력과 학대에 시달리다 2년만에 이혼했다.
1999년 임신한 그녀는 장애아를 낳을지도 모른다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출산, 아들 패리스를 건강하게 키워냈다.
그는 “내게 아들은 세상의 전부이고 내 자랑이자 기쁨이다. 패리스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정말 많이 사랑하고 아주 특별한 아이”라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던 미술공부를 시작해 영국의 해덜리 미술학교와 브라이튼대를 졸업하고 예술가로서 새 인생을 개척했다.
(사진은 2006년 4월 23일 인천공항에 사랑하는 그의 아들 패리스와 함께 도착하는 앨리슨 래퍼)

래퍼는 신체의 장애를 작품의 소재로 삼는 적극적인 방식으로 극복해 왔다.
자신의 작품을 두고 “팔 없이 태어났다는 이유로 나를 기형이라고 여기는 사회 속에서 육체적 정상 상태와 미의 개념에 물음을 던진다”고 했다.
또한, 그녀는 모성(母性) 및 장애에 대한 편견에 도전하는 예술작품으로 사회에 기여했다는 점이 수상 이유였다. 그녀는 열정으로 예술혼을 불태운 의지의 화신이다.
불행한 어린 시절과 장애를 극복하고, 팔 대신에 입과 발로 멋진 그림을 그리는 구족화가요 사진작가로 성공한 앨리슨 래퍼는 그 어떤 고난에 힘들어 하는 사람에게라도 희망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 것이며 앞날에 대한 방황과 막연한 기대만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강인한 도전의식과 비젼을 심어 줄 최적의 멘토가 될 것이다.


2003년 스페인은 ‘올해의 여성’상을, 영국 왕실은 대영제국국민훈장(MBE)을 각각 수여했고, 드디어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2005년도 세계여성상’ 수상식에서 ‘성취부문' 수상자로 선정, '2005년도 세계여성상' (성취상)을 수상했다.
2005년 9월 펴낸 자서전 ‘내 손 안의 인생’은 한국어를 비롯, 독일·스페인·이탈리아·일본어 등으로 번역됐다.
이 책에서 그녀는 “나 같은 장애인들이 다른 사람에게 우리 삶이 어떤 것인지 알리려 하지 않는다면, 이들은 우리의 어려움들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썼다.
(29일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세계여성상’ 수상식에서 ‘성취’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장애인 예술가 앨리슨 래퍼가 이 상의 운영위원장인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트로피를 받고 있다.)

영국의 조각가 마크 퀸은 2005년 앨리슨 래퍼를 모델로 트라팔가 광장에 대형 조각상을 세웠다.(맨 위 사진)
“살아있는 비너스”라 칭송 받는 그녀의 모습, 온갖 어려움에도 아름다운 삶의 의지와 예술혼을 불태워 젊은이들과 고난에 빠진 사람들 에게 희망을 준 그녀를 살아있는 조각모델로 세운 것이다.
팔다리가 없는 그녀의 누드를 조각한 이 작품은 넬슨 제독이 굳건히 지켜오던 런던의 대표적인 광장인 트라팔가 광장에 세워졌으며 이 장면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그녀를 영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유명인사로 만들었다.
프랑스 루브르미술관이 소장한 ‘밀로의 비너스’는 양팔이 떨어져 나갔지만(좌측 사진)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현대의 미술사가들은 팔이 온전히 붙어 있었다면
아마도 지금 우리가 느끼는 만큼의 진한 감동을 주지 못했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Alison Lapper.com

Alison Lapper

Alison Lapper, British artist, was born in 1965 without arms and shortened legs, the result of a medical condition called phocomelia. The first 19 years of her life were spent in residential institutions for people with impairments and the story of those years and her subsequent success as an artist and public figure can be found in her autobiography, My Life in My Hands.

Welcome to my new website

August 17th, 2005

Welcome to my home page. This is my new website and it’s the place where I’ll be adding information about upcoming events in my life as an artist and author. In case you missed it I should tell you that Marc Quinn’s statue of me _ Alison Lapper Pregnant – was unveiled in Trafalgar Square on the 15th of September. In spite of the pouring rain the Square was packed with journalists and TV cameras and I found myself whisked from one interview to another. I began the day on breakfast televison at 7 am and finished on Newsnight review at 11.30. It was quite a day!

I know a lot of the media interest was sparked by the controversy over the statue. Should there be a statue of a naked pregnant disabled woman in Trafalgar Square? Surely it wouldn’t fit in. The Square is such a traditional place. But I always thought it was exactly the right place for a statue like this. It makes a powerful statement about where we are trying to go in the 21st century – a future with truly equal opportunities for all.

Just as important to me is the fact that the statue is transcendingly beautiful and suits its place in the Square. I have watched people gazing at it for some minutes at a time and I can see that they are moved by it. Not simply experiencing sympathy for the disability it represents but something beyond that. I think they appreciate it’s beauty as a work of art and are surprised to find themselves liking it, and realising that it works in the Square so well.

If you haven’t been to see it I recommend that you do. It isn’t the same in photographs or on television.

This month my autobiography, My Life in My Hands was published by Simon & Schuster. You can find it in all the major bookshops or you can go to Amazon’s website on the net and order it there. It has been an emotional nine months writing the book. It brought up a lot of painful memories from my childhood as well as new and shocking facts about my life which I had been completely unaware of. I’m glad it’s out there now. I have been as truthful as the publishers would allow and feel relieved that I no longer have to be tight-lipped about the areas of my life I always wanted to keep hidden. I still don’t like talking about some things but at least it’s in the book if people want to know what it was like for me when I was growing up. There’s an extract from the book on my autobiography page.

Since the book came out and the statue went up I have been asked to appear at conferences and a list of those can be found on my events page. The one I’m really looking forward to is being on BBC2’s Steve Wright in the Afternoon. I have been enjoying his programme for so many years now and it’s great to be invited on to chat with him. I’m not sure which day they’ll be broadcasting my appearance so you’ll just have to listen every day.

I will also be exhibiting some of my work with artists like Tracey Emin, Marcia Farquhar and Anat Ben-David at Amnesty International’s Stop Violence Against Women exhibition. Details of dates and venues of upcoming exhibitions will all be on my events page as they are confirm!ed.

I have been working on a new body of work and some of my early ideas can be found on my gallery page. If you want to buy any of my pieces they are for sale in limited editions at Eyestorm/Brit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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