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lcome to Chosun(Corea) ere -- 더보기
![]() ![]() 대한제국 황궁인 덕수궁 석조전에서 촬영한 황실 가족 사진. 왼쪽부터 영친왕, 순종, 고종황제, 순정효황후, 덕혜옹주 ![]() 라스트 프린세스 덕혜옹주(1912∼1989) ![]() 1897년10월12일 고종의 황제 즉위를 축하하는 덕수궁 대한문(대안문) 앞은 백성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 고종황제의 장례행렬 1919년 1월21일 덕수궁 함녕전에서 고종황제가 승하했다. 갑작스런 그의 죽음을 둘러싼 독살설은 전국으로 퍼져 3.1운동의 기폭제가 된다. KBS 1TV '역사스페셜'은 15일 오후 8시 광복절 특집 '고종황제, 그 죽음의 진실'을 통해 고종황제 독살설의 진실을 파헤친다. 최근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에 의해 고종 독살에 관한 새로운 자료가 제시되었다. 그가 찾은 것은 당시 일본 궁내성 관리 구라토미의 일기. 거기에는 고종황제의 죽음이 일본의 지시에 의한 독살이었음을 암시하는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다. 기록에 의하면 고종의 시신 상태는 처참했다. 팔다리가 심하게 부어올라 바지를 찢어야만 했고, 이가 빠져 있고 혀가 닳아져 있었다. 또한, 30㎝가량의 검은 줄이 목에서 복부까지 나 있었다. 제작진은 "고종이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은 식�熏�알려져 왔는데, 고종은 정말 식혜를 마시고 죽은 것일까"라며 "현대 법의학을 통해 고종황제의 구체적 사인을 추적한다"고 밝혔다. 1919년은 한일강제병합이 일어난 지 10년 뒤이고, 고종도 이미 퇴위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고종 독살설이 강력하게 떠오른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구라토미의 일기는 일본이 고종황제가 해외에 독립을 호소하려는 것을 미리 알고 막으려다 여의치 않자 독살을 감행하였음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고종은 이회영을 통해 중국으로 망명할 계획을 진행하고 있었다. ![]() 2009년 08월 14일(금) 오전 11:21 ![]() 1919년 19살의 영친왕비 이방자(1901~1989) 여사와 진왕자가 탄생했을 때의 영친왕 부부. ![]() 덕수궁 석조전에서 영친왕(가운데)의 모습 ![]() 영친왕비 이방자(1901~1989) 여사의 일본친정 가족 사진 Archive : 한일 친선에 생애를 바친 일본 황족 출신 이방자(李方子) 여사 -- 대담했던 한국 아낙네들 -- 톱레스 치마 저고리 ![]() ![]() ![]() ![]() ![]() ![]() 문명사회에 있으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원시적이었던 조선시대 아낙네들의 대담한 모습 ![]() ![]() ![]() ![]() ![]() ![]() ![]() ![]() ![]() ![]() ![]() ![]() ![]() ![]()
땅바닥에 사람의 그림을 그린 다음 그 복부에 칼을 꽂아 두어 말라리아를 퇴치했다. 장티부스를 예방하기 위해 소머리와 마늘을 문앞에 둔다. 경기도 전라남도에서는 말라리아 퇴치 방법으로 자기 아버지의 이름을 환자의 발바닥에에 쓴다. 맥주병으로 황담 치료 환자의 옷이나 모자를 나뭇가지에 걸어두면 홍역이 낫는다고 믿었다. 평안남도 설사퇴치 고추를 처마밑에 걸어 두면 콜레라를 퇴치할 수 있다고 믿었다. 볏짚으로 만든 허수아비를 - 액운을 짊어진 - 강이나 갈버닥에 버리면
|
'좋은글 모음 > 자유게시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우리 모두를 울린 TV의 이 장면... (0) | 2011.01.20 |
---|---|
아마존의 여인들! (0) | 2011.01.20 |
어느 노인의 유언장 (0) | 2011.01.20 |
허블이 담은 우주속의 지구 (0) | 2011.01.20 |
[스크랩] 감동 스토리 ㅡ자살에서 천상으로 (0) | 2011.0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