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안도(蘆雁圖)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두 마리의 기러기가 막 갈대밭에 날아드는 순간입니다. 뒤에 있는 기러기는 고개를 쭉 뺀 채 날개를 활짝 폈고, 앞의 기러기는 날개를 접고 땅에 내리려는 동작을 하고 있습니다.
기러기 그림에는 으레 갈대가 함께 그려집니다. 원래 기러기는 풀이나 풀씨, 낟알 등을 먹는 초식 조류입니다. 논이나 저수지, 해안이나 습지 주변의 갈대밭에서 주로 생활합니다. 그러니 기러기와 갈대가 잘 어울릴 법도 하지만, 사실 그림에 함께 나오는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갈대는 한자로 ‘노(蘆)’이고, 기러기는 ‘안(雁)’입니다. 이를 함께 붙여 읽으면 ‘노안(蘆雁)’이 되지요. 이는 ‘편안한 노년’이란 뜻의 ‘노안(老安)’과 소리가 같습니다. 노안도(蘆雁圖)는 그러므로, 나이 들어 편안하게 지내라는 의미를 담은 그림이지요.
기러기는 우리 나라에서 겨울을 나는 철새입니다. 가을 저녁이면 무리를 지어 하늘을 나는 기러기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이런 기러기를 보고, 그림을 그릴 뿐만 아니라, 글을 쓰거나 노래를 만들어 부르기를 좋아하였습니다.
달 밝은 가을밤에 기러기들이 찬 서리 맞으면서 어디로들 가나요 고단한 날개 쉬어 가라고 갈대들이 손을 저어 기러기를 부르네 산 넘고 물을 건너 머나먼 길을 훨훨 날아 우리 땅을 다시 찾아왔어요 기러기들이 살러 가는 곳 달아 달아 밝은 달아 너는 알고 있겠지 |
윤석중 선생님이 노랫말을 쓴 ‘기러기’입니다. 이 노래처럼 기러기는 먼 길을 사이좋게 함께 나는 새입니다. 일상 속 여인들의 지혜를 담은 ‘규합총서’라는 옛 책에 따르면, 기러기는 네 가지 덕목을 갖춘 새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첫째는 신(信)입니다. 추위가 다가오면 북쪽에서 남쪽으로 오고, 날이 풀리면 다시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지요. 해마다 어김없이 되풀이되는 기러기의 이동을 보고, 사람들은 믿음을 배웠습니다.
둘째는, 예(禮)입니다. 기러기는 하늘을 날 때 ‘V 자’ 모양을 이룹니다. 맨 앞에서 대열을 이끄는 기러기는 경험 많고 힘이 좋은 우두머리 새입니다. 앞서서 바람을 가르면 뒤따르는 나이 어린 새들이 쉽게 날 수 있습니다.
서로 도우며 질서를 지키는 예절 바른 모습입니다. 오랫동안 기러기를 연구한 학자들에 따르면, 이렇게 차례를 지켜 비행할 때 약 70 % 정도 더 멀리 날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셋째는, 절(節)입니다. 한번 정한 짝과 평생 함께하니, 절개가 있습니다. 홀로 된 신세를 두고, ‘짝 잃은 외기러기’라고 할 만큼 기러기의 사랑은 한결같은 데가 있습니다.
넷째는, 지(智)입니다. 무리 중에 따로 보초를 세워 놓고, 적의 공격을 알리게 합니다. 참 슬기로운 새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런 기러기의 여러 가지 덕성을 본받고자 하였습니다. 혼례식에서 신랑은 기러기와 함께 신부 집에 갔습니다. 이때 기러기 나르는 사람을 ‘기럭아비’라고 하였습니다. 원래는 살아 있는 기러기를 쓰다, 나중에는 나무 기러기로 바뀌었습니다. 이 기러기는 부부의 도리를 다하겠다는 마음을 나타냅니다.
옛날 압록강 근방에 길랑이란 총각과 미월이란 처녀가 살았습니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습니다. 우연히 둘은 다리 다친 기러기 한 마리를 정성껏 돌봤습니다.
그런 어느 날 길랑은 과거를 보러 떠나게 되었고, 미월은 눈물을 흘리며 배웅하였습니다. 미월은 홀로 기러기를 보살피며 살았습니다. 이듬해 단오날, 미월은 그네를 타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고을 수령이 미월의 미모에 반해 첩으로 삼으려 하였습니다. 미월은 수령의 청을 거절하여 옥에 갇혔습니다. 미월은 이 사연을 편지로 써서 기러기 다리에 묶고 간절하게 말했습니다.
“기럭아, 부디 이 사연을 길랑에게 알려다오!”
기러기는 먼 하늘을 날아 길랑에게 갔습니다. 마침내 암행어사가 된 길랑은 미월을 구하고, 수령을 혼내 주게 됩니다. 압록강 유역에 전해 오는 옛 이야기로 춘향전과 비슷한 내용입니다. 혼례식에 기러기를 전하는 아름다운 풍습은 이런 사연으로 더욱 뜻이 깊습니다. /박영대 (광주교육대학교 교수·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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