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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진열장
어머니의 병명은 폐암입니다.
수술도 할 수 없을 만큼 암세포가 폐 속 깊이
파고든 말기 환자이십니다.
청천벽력 같은 어머니의 병명에 식구들 모두
까마득한 나락에 빠진 듯
아득했습니다.
그런 중에도 아버지만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안경 위에 얼룩진 눈물 자국을 보면서,
나는 이 상황이 우리 가족 그 누구에게보다 아버지에게
가장 가혹한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 곁을 잠시도 떠나지 않고 병시중을
드시던 아버지.
하루하루 시간이 흐를수록 아버지의 얼굴에도
수심의 그늘이 점점 더 깊어졌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부터인가 아버지가 전에 없이 활기를 띠셨습니다.
더욱이 이상한것은 엄마가 드시고 난 빈 약병을
거실 진열장에 열심히 모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암이 발병했을 때 먹은 약병부터
병이 악화되면서 지금 먹는 약병들까지,
일일이 기록까지 해가면서 꼼꼼이
챙기셨습니다.
눈에 띄기만 해도 지긋지긋할 그 약병들을 보면서
흐뭇해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화가 났습니다.
어머니는 몹쓸 병으로 저렇게 힘들어하시는데
아버지는 한날 쓸모도 없는 빈 약병들을
모으면서 웃음을 지으시다니.....
어느 날 나는 아버지께 그 이유를 여쭤봤습니다.
"아버지! 빈 약병은 왜 안 버리고 모으세요?"
무심히 내뱉은 아버지의 대답은
너무도 뜻밖이었습니다.
"엄마 병이 다 나으면,
엄마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물어 볼 것 아니냐.
어떻게 치료했느냐고.
그때 이 빈 약병을들을 보여주려고."
나는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아버지가 웃으시는 이유를,
그리고 빈 약병을 진열장에 정성들여 진열하시는 이유를.
아버지는 엄마가 다 드시는 약병에 독하고 쓰디쓴
약이 아닌 아버지의 사랑과 정성을 담아
진열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언젠가 엄마가 반드시 병을 홀홀 털고
거뜬히 일어나실 거라는 강한 믿음과
함께 말입니다.
====행복한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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