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group/나의 한 시절

매일신문 2012년 2월 11일 토요일 1면 기사내용

素彬여옥 2012. 2. 11. 16:55

♬♪ 중·장년 아마츄어들 성악 열풍 왜?
노래 부른다, 고로 존재한다
 
 
 
최근 성악을 배우는 일반인들이 늘고 있다. 대구에는 많은 성악가들이 성악 교실을 운영하며 성악 전파에 힘쓰고 있다. 사진은 박범철 우리 가곡교실 수업의 한 장면.
 
아마추어 성악가들은 정기적으로 무대에 오르며 실력을 쌓아간다. 사진은 최덕술 성악 아카데미 발표회 장면.
“소프라노는 좀 더 탄력 있게 불러야 해요. 갈수록 처지는 경향이 있어요. 우렁차게 불러야 절정에 이르러 힘이 달리지 않지요. 이걸 꼭 기억하고 다시 해봅시다.”

6일 오전 11시, 대구 수성구 시지노인전문병원 지하 강당에서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강당 안에는 중·노년 30여 명이 모여 노래 부르기 삼매경에 빠져 있다.

‘박범철 우리 가곡교실’을 진행하는 성악가 박범철 씨가 고쳐야 할 점을 지적하자 초로의 학생들은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삶이란 지평선이 끝이 보이는듯해도 가까이 가면 갈수록 끝이 없이 이어지고 바람에 실려가듯 또 계절이 흘러가고 눈사람이 녹은 자리 코스모스 피어 있네. 그리움이라는 이름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하여 서로를 간직하며 영원히 기억하며….’(가곡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하여')

노년기에 접어든 이들의 노랫가락은 특별한 감흥을 준다. 학창 시절, 햇볕이 나른하게 내려앉은 교실에서 울려 퍼지던 노래들이다. 백발이 되어 그 의미를 음미하는 이들의 환한 표정은 학창 시절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전공자가 아니라도 성악을 배우는 사람이 최근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성악 교실도 곳곳에서 생겨나 성악을 일상 생활에서 즐기는 아마추어들이 늘고 있다. 평범한 삶을 살다 일약 세계적 성악 스타가 된 폴 포츠, 수잔 보일의 영향에다 중노년층으로 구성된 합창단을 다룬 TV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성악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추세다.

어릴 적부터 음악을 좋아했다는 조정희(54) 씨는 “갈수록 정서가 메말라 가는데, 우리 시로 만든 가곡을 부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스트레스가 해소된다”고 말했다.  

늦깎이로 배운 노래를 통해 봉사활동을 하는 이들도 있다. 가곡을 좋아하는 사람 6명과 치매노인병원에서 노래 봉사를 하기도 했다는 여옥자(70) 씨는 가곡 예찬론자다. “하루에 서정 가곡 10곡을 부르면 하루 서정시 10편을 읽은 것과 마찬가지에요. 그만한 위로와 활력소가 없지요.”

그렇다고 반드시 음악을 잘 알고, 노래를 잘해야 가곡교실을 찾는 건 아니다. 스스로 ‘음치에 박치였다’는 곽동환(71) 씨는 10년간 가곡을 배우고 부르면서 가곡 콩쿠르에 나가기도 했다. 함께 가곡 수업을 듣는 부인 홍영희(68) 씨와 부부음악회를 열기도 하는 등 후반기 인생에서 가곡은 큰 의미를 갖는다. 홍 씨는 “가곡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묻는다면, 삶의 전부”라고 말했다.

가곡을 배운지 2주일 된 성규징(56) 씨는 목표가 꽤 크다. 언젠가 개인 콘서트를 열기 위해 가곡을 배우고 있다. “학교 다닐 때 노래 자랑에서 1등을 자주 했어요. 가요를 좋아하는데, 가곡은 소리부터 창법, 발성까지 다 다르네요. 나를 좀 더 발전시키기 위해 가곡 교실을 찾았어요. 언젠가 제 이름을 내건 콘서트를 여는 게 꿈입니다.”

1998년 가곡교실을 열어 시민들에게 성악을 전파하면서 ‘우리 가곡 전도사’로 널리 알려진 성악가 박범철 씨는 대구에서 처음 가곡교실을 열었다. “독창회가 끝나고, 누군가 농담처럼 우리는 왜 성악 배울 곳이 없느냐고 물었어요. 그래서 가곡교실을 시작했는데 20대부터 80대까지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요. 지금까지 거쳐 간 사람이 1천, 2천 명은 될 겁니다.”

그는 시간대별로 다양한 사람들에게 가곡을 전파한다. 특히 50대 이후 가곡의 깊은맛을 느낄 수 있다고 전한다.

6년째 아마추어를 대상으로 한 ‘최덕술 가곡 아카데미’를 열고 있는 성악가 최덕술 씨는 “평균수명이 연장되면서 은퇴 후 건전하고 재미있는 삶을 사는 방법으로 성악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반의 경우, 여러 가지 이유로 클래식 음악을 배워요. 어릴 적 부모 반대로 음악을 하지 못한 사람, 클래식을 좋아하긴 하는데 배울 기회가 없었던 사람, 교회나 성당의 성가대원으로 좀 더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 등 부류가 다양해요. 클래식 음악은 가요처럼 금방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서 노후를 위해 투자하듯 배우는 사람도 많고요.”

건전한 파티 문화가 생겨나면서 사람들 앞에서 ‘폼 나게 한 곡 뽑기 위해’ 클래식 음악을 배우는 사람들도 있다. 송년회, 동창회에서 좋은 곡을 부르면, 감동으로 울음바다가 되는 사례도 있다는 것.

그렇다면 비전공자의 경우 얼마나 노래 연습을 해야 성악의 맛을 낼 수 있을까.

최 씨는 “사람마다 다르다”고 전제하면서 “재능이 있는 사람은 빠르게는 3개월 만에 가능할 수도 있지만 평균 1년은 넘어야 성악 발성법을 제대로 익힐 수 있다”고 말했다.

아마추어 연주자들은 정기적으로 무대에 오르는 뜻 깊은 경험도 한다. 턱시도,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올라 그동안 동경하기만 한 연주자의 기분을 만끽한다는 것. 최 씨는 “성악은 몸이 악기인 만큼 좋은 연주를 마쳤을 때 몸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대단하다”면서 “가요는 한번 들으면 좋지만 클래식 음악은 횟수가 더할수록 깊은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한번 공부하기 시작하면 수년간 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대구는 특히 성악가들이 많아서인지 가곡 교실이 매우 활성화돼 있다.

최승욱 대구음악협회 회장은 “요즘 파티 문화가 많아지면서 모임에서 자신을 가장 잘 나타내는 방법의 하나로 성악이 인기가 있는데, 가요교실보다 적지 않을 것”이라면서 “미디어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이 많은 것도 자기 도전의식을 주는 거 같다”고 덧붙였다.

대구음악협회는 이런 트렌드를 반영해 6월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아마추어 콩쿠르를 개최할 예정이다. 최 회장은 “아마추어들의 음악에 대한 관심이 음악 발전의 밑거름이 되는 만큼 아마추어들의 무대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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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월(Bar 김승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