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姓)과 씨(氏)는 어원의 생성과정이 다르다.
`성(姓)'은 `여자[女]에게서 태어났다[生]'는 뜻으로 옛날 모계제도(母系制度) 하에서 어머니를 중심으로 이어가는 세계(世系)를 부른 데서 유래한다. 따라서 성은 한 어머니의 혈통이라는 것을 밝히고 다른 모계의 혈통과만 결혼할 수 있는 표준이 된다.
옛날의 신령스러운 성인들은 모두 그 어미가 하늘에 감(感)하여 아기를 낳아서 된 것이다.
그러므로 칭하여 하늘의 아들(天子)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늘의 아들이 덕을 세울 때 그 태어난 바를 따라서 성을 받는다.’라고 하였는데(<春秋>隱公8년조에 좌씨가 단 주해)
이것은 생각건대 신농의 어미가 姜水에서 살았고, 黃帝의 어미가 姬水애서 살았고, 舜의 어미가 姚虛에서 살았기 때문에 바로 그 어미가 산 지명을 따서 그 성을 삼았다.
원래 姓은 어떤 한 씨족이 숭배하던 토템이나 혹은 거주지를 나타내었다(熊·姜).
그러므로 성이란 어미로부터 生한 바를 따르는 것으로 중국의 원시적인 성은
모두 `여(女)'자가 붙게 되었던 것이다. 곧 희(姬) ·요(姚) ·강(姜) · 루(婁) 등이 그것이다.
곧 `성'은 혈연을 밝히고 혼인을 구분하는 잣대가 되었다.
동성(同姓)끼리는 혼인을 하지 않아 근친 번식을 막음으로써 우량한 종족을 보존하려 했던 것이다.
오늘날 동성동본 결혼 금지의 요인도 이때부터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씨(氏)'는 원래 `성(姓)의 갈래[分·支]'를 말하는 것으로 `뿌리가 갈라져 나가는 모양'을 그린 상형문자라고도 하고, `바위가 갈라져 나가는 모양'을 본뜬 상형문자라고도 한다.
따라서 `씨(氏)'는 `성(姓)'보다 후에 부계제도(父系制度)가 되면서 여성에서 남성 중심으로 세계를 이루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 `씨(氏)'에서 뻗어 나간 무리를 `씨족(氏族)'이라 하였다.
부계 씨족 사회의 영웅적 아들의 칭호로 `씨'가 쓰였으니 복희씨(伏羲氏) · 신농씨(神農氏) · 헌원씨(軒轅氏) 등이 그 것이다.
氏를 얻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제후는 분봉 받은 국명을 자신의 氏로 했다(夏氏·周氏). 卿大夫는 하사 받은 采邑을 氏로 했다(제나라의 崔씨·鮑씨).
官職을 氏로 하는 경우도 있었다(司馬氏·司空氏). 이 외에 祖父나 父의 字(孟孫氏·叔孫氏), 諡號(文氏·武氏·昭氏), 爵位(王氏·侯氏), 居處(南宮氏·百里氏)를 氏로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최초에는 `성'은 `씨'에 비하여 훨씬 큰 개념으로 대부족(大部族)의 표지(標識)였으며, `씨'는 `성'에 속한 비교적 작게 파생된 씨족(氏族)이었다. 곧 신농씨는 강(姜)성 이요, 헌원씨는 희(姬)성에 속하는 분이었다.
계급사회에 들어와서 氏는 貴賤을 구별하는 의미가 있었으며 귀족 남자만이 가질 수 있었다.
부계씨족사회에 이르러 인구가 증가하고 활동 지역이 확대됨에 따라 姓의 지파는 더욱 많아지게 되었다.
이에 각 지파마다 하나의 특수한 칭호를 갖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氏이다.
또한 氏는 귀족남자 만을 일컽는 전문적인 호칭이었다.
귀족 여자들은 姓을 칭했으며, 이것은 족외혼이 가능하게 했다.
결혼 전의 여자는 姓 앞에 순서 등을 나타내는 이름을 붙였고(孟姜·叔 ), 출가하면 姓 앞에 국명을 붙이기도 했다(秦姬). 卿大夫에게 시집갈 경우 대부의 氏를 姓 앞에 붙이기도 했다(趙姬).
춘추시기에 귀족 남자들이 姓을 칭하지 않았던 것은 姓은 태어나면서 얻는 것으로 氏만 말하면 곧 姓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始祖의 姓이 이미 오래 되어 단지 始祖의 姓만 말해서는 현재 자신의 신분을 나타낼 방법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에게 그 祖父가 어떤 사람인지 알릴 필요가 있었다. 이것이 氏를 칭하게 된 중요한 이유이다.
氏는 신분을 나타내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변화가 심했다.
특히 제후와 卿大夫의 경우 1대 사이에 氏가 바뀌기도 하였으며, 동일한 사람이 서로 다른 氏를 갖기도 했다.
재래에는 `성은 시조로부터의 계통을 뜻하고, 씨는 자손이 갈라져 나가는 중시조를 말한다'고 하였다.
하(夏) · 은(殷) · 주(周) 삼대(三代) 이전에는 `성'과 `씨'가 나누어져 남자는 `씨'라 칭했고 여자는 `성'이라 불렀다. 그리고 `씨'는 귀천을 구별하는 표준이 되어 귀한 사람은 `씨'가 있었고, 천한 사람은 `씨'는 없이 `이름'만 있었다.
전국시대에 이르러 사회의 변화에 따라 姓氏制度 역시 혼란이 발생하였다 그것은 귀족이 몰락하여 천민이 되기도 하였다.
한편, 여러 가지 이유로 姓氏가 바뀌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賜姓, 避諱, 소수 민족의 改姓, 音訛, 劃數나 글자의 생략 등.
따라서 귀족 신분을 표시하는 氏는 존재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또 `성'은 `씨'로 부를 수 가 있었으나 漢 이후 姓과 氏가 점차 하나로 합쳐져, 성'과 `씨'가 같은 개념으로 쓰여 지금은 구별없이 통용한다.
漢代에는 姓이라고 通稱되었다.또 ` 성씨'로 굳어진 말이 되기도 했다.
한대에 이르러 점차로 평민들도 姓氏를 갖게 되었다.
중국에는 姓氏가 몇 개나 있었을까? 後漢의 應가 지은 風俗通義 에는 고대 姓氏가 대략 500개정도 보인다.
宋代 鄭樵의 통계를 보면 당시에는 약 1,745개가 있었다.
淸代 張澍는 5,129개를 나열하였다. 현재에도 여전히 3,000여 개가 있다.
우리민족의 성씨에 대하여!
우리 나라는 처음에 성이 없다가 통치자 곧 귀족부터 성이 있게 되었는데, 문자가 없었으므로 자연 중국 한자(漢字)로 표기하게 되었다. 삼국시대 인명을 보면 을지문덕,연개소문,계백과 같이 을지,연,계는 성이 아니고 씨였다.
씨는 별명,관직,봉읍지 등을 씨로 삼았으며 삼국시대까지 사용하였으나 주로 봉작을 받은 지역이
씨가 되었다, 신라 삼국통일 이후 씨가 성에 통합되어 고려 중기 이후 성씨로 통합되었다.
그 잔재로 남은 것이 본관이다.
중국 한족들은 조적 혹은 적관이 있고 우리민족은 본관이 있는데 개념이 다르다.
한족들이 말하는 조적 혹은 적관은 조상들의 고향을 의미할 뿐 우리처럼 ‘밀양 박씨’ ‘김해 김씨’ 식으로 ‘무슨 왕씨’ ‘무슨 진씨’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한족은 한 고향이라는 향토의식이 뿌리 깊다.
우리민족은 초면인데도 본이 같으면 항열을 따져보고 아저씨벌이나 형님벌이 되고 친척을 만났다고 기뻐한다.
본관이 같은 종친끼리 모임을 갖고 유대를 강화 해가고 있다.
본관이라는 개념이 있어 씨를 붙이기를 좋아하며 성문화를 성씨문화라 하거나 상대의 성을 물을 경우 ‘성씨가 무엇인가?’ ‘성씨를 어떻게 쓰는가?’하면서 씨를 붙인다.
한족은 상대의 성을 물을 경우 씨를 붙이지 않으며 대답하는 사람도 자신의 성에 씨를 붙이지 않는다.
우리민족이 성에다 씨를 붙여 ‘최씨’ ‘김씨’라 부르거나 본관에 씨를 붙여 ‘밀양 박씨’ ‘김해 김씨’라고 부를 경우 씨는 상대를 높이기 위해 붙이는 것이지 결코 씨가 성을 대체하거나 본관을 대체하지 않는다.
씨는 상대를 높이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성 혹은 본에다 씨를 붙이는 것은 대단히 실례이다.
그래서 자신을 말할 때 절대 씨를 붙이지 않고 ‘김가’ ‘최가’ 혹은 ‘밀양 박가’ ‘전주 이가’라 말해야 한다.
<참고>
현재 우리 나라 이씨의 본관은 237본인데, 그전의 「증보문헌비고」에서는 451본으로, 「조선씨족통보」에서는 546본으로 나타났던 일이 있다. 이를 견주어 보면 오늘날 이씨의 본은 과거보다 많이 줄어든 셈이다.
이 237본의 이씨는 대체로 한국계(韓國系)와 중국계(中國系)와 기타계(其他系)로 분류할 수 있다.
한국계는 신라 6성의 하나인 경주이씨(慶州李氏)에서 갈라져 나간 것으로, 가평이씨(加平李氏) · 금구이씨(金溝李氏) · 덕은이씨(德恩李氏) · 아산이씨(牙山李氏) · 영천이씨(永川李氏) · 우계이씨(羽溪李氏) · 원주이씨(原州李氏) · 재령이씨(載寧李氏) · 진위이씨(振威李氏) · 진주이씨(晋州李氏) · 평창이씨(平昌李氏) · 합천이씨(陜川李氏) 등이 이에 속한다.
중국계로는 다음과 같은 성씨들이 있다.
고성이씨(固城李氏) · 상산이씨(商山李氏) · 안성이씨(安城李氏) · 연안이씨(延安李氏) · 원주이씨(原州李氏) · 정선이씨(旌善李氏) · 청해이씨(靑海李氏) · 태안이씨(泰安李氏) · 태원이씨(太原李氏) · 평산이씨(平山李氏) 등이 이에 속한다.
기타계로는 안남국(安南國 : 현재의 越南)의 왕 이천조(李天祚)의 아들로 나라가 망할 것을 예견하고 우리 나라로 망명, 옹진반도 화산(花山)에 정착하여 산 화산이씨(花山李氏), 김알지 후손인 경주김씨(慶州金氏)에서 분적한 광산이씨(光山李氏)와 김해허씨(金海許氏)에서 분적한 인천이씨(仁川李氏) 등이 있다.
우리 나라의 이씨는 한국 자생(自生)의 이씨와 외국에서 귀화한 외래(外來)의 이씨로 나눌 수가 있다. 이 중에서 역사가 제일 오랜 성은 경주이씨이고, 중국에서 귀화한 대표적인 이씨는 연안이씨(延安李氏)이며, 월남에서 귀화한 화산이씨(花山李氏)도 있다.(끝)
세상은 넓지만,인생은 원하는 만큼 길지 않다는 유용원님의 글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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