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갈 때 보았네>
해마나 연말이 되면 세계의 관심과 이목(耳目)이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쏠린다. 노밸상 수상자의 명단이 발표되기 때문이다. 여러 해 째, 노벨문학상 수상자 후보 명단에 오르고 있는 우리나라의 고은(高銀: 1933~) 시인이 쓴 시 중에 모두 열다섯 글자로 된 <그 꽃>이라는 제목의 아주 짧은 시가 있다.
이 시를 무심코 읽어보면 아주 평범한 내용이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음미해보면 시인 자신의 삶에 대한 의미심장한 간증적 고백이 들어있음을 빌견하게 된다. 그 짧은 "석줄, 열다섯 글자" 속에 들어있는 응축(凝縮)된 의미가 참으로 새삼 놀랍다. 뿐만 아니라, 시인의 고백이 우리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이 시에서 고은 시인이 표현한 <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의 시간개념을 인생의 때와 비유한다면 <올라갈 때>란 삶의 의욕이 왕성해서 열심히 일하던 <청년기>로 볼 수 있을 것이고 <내려갈 때>란 인생의 하강곡선을 그리는 <노년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젊은 시절에는 정상(=목표)을 향해 앞만 바라보고 오르막길을 오르다 보면 우리가 정작 주변 길섶의 소중한 것들을 보지 못하고 지나치게 마련이다. 올라갈 때 정신없이 앞만 보고 걷느라 무심코 지나쳤던 것을 같은 길로 내려오면서 보게 되는 사물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무튼 언덕길을 오르기에 바빠 주변을 살펴 볼 겨를이 없었던 우리네들이었다.
올라갈 때 걸어갔던 꼭 같은 길을 걸어 내려오면서 시야에 들어온 바위가 그렇게 아름다운 줄, 오를 때는 미처 볼 수 없었다. 곱게 물든 단풍잎이 그렇게 고운 줄 알지 못하였다. 나뭇가지에서 재롱을 떠는 다람쥐 한 마리가, 또 길섶에 핀 한 송이 야생화가 그렇게 귀엽고 예쁜 줄도 눈치 채지 못했었다.
그래도 한 가지 감사한 것은 비록 올라갈 때는 못 보았지만 내려올 때 보게 된 것만도 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인가! 내려올 때조차도 허둥대느라 끝내 길섶 주변의 아름다운 것들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므로.
고은 선생의 짧은 시 한편 속에 이렇게 소중한 교훈이 들어 있으니 정말 놀랍고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오늘 나는 고은 선생의 한 편의 시 "그 꽃"이 참으로 맘에 든다. 시의 내용이 쉬워서 좋고 시의 길이가 짧아서 더욱 좋다. 또 시가 외우기 쉽고 그 시가 주는 의미가 매우 교훈적이어서 늘그막에 인생의 여정을 걸어가는 우리네들에게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 주니 더더욱 좋다.
엊그제 우연히 훑어보던 <스포츠조선>에 난 한 기사를 읽다가 한 곳에 나의 시선이 딱 머물러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여러 차례 그 부분을 반복해 읽었었다. 배우 장동건과 함께 <신사의 품격>이라는 안방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으로 열연(熱演)했던 여배우 김하늘양에 대한 기사였다. 주부들에게 인기가 대단했던 그 안방극장이 종영이 되고 난 직후라서 기자가 그녀에게 묻는다.
―앞으로 목표가 뭐예요? ―저는 배우로서 특별한 목표가 없어요. 목표를 정하면 그것만을 향해 달려갈 것 같아요. 그러면 주변을 놓치게 되지 않아요? 최근에 화보촬영차 프랑스에 다녀왔는데 그때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동안 내가 스스로를 돌아볼 여유를 갖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제 서른넷의 아직 젊은 아가씨 김하늘 양에게 고은 시인의 시 <그 꽃>을 읽고 감격스러워하고 있는 내 마음을 마치 들켜버린 것만 같아 피식 웃음이 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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