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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은 자들/레미제러블을 보고....

素彬여옥 2013. 1. 26. 23:22

이안삼카페에서 보내는 " 피러한 목사 글

구원받은 자들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가진 <레 미제라블>영화는 작년 대선 일에 개봉한 이래 이미 관객 수가 500만 명을 넘어선지 오래다. 심지어 책에서 OST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인기몰이 중이다. <레 미제라블>영화는 새삼스런 스토리도 아니었기에 더 의아해 하고 있다. 그것은 빅토르 위고 작품으로 노동자와 농민들의 피 끊는 혁명정신과 가난한 이들의 대한 인간애를 다룬 오페라형 뮤지컬을 영화로 만든 것인데, 왜 사람들은 이토록 <레 미제라블>에 열광한단 말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그 영화는 원래 뮤지컬답게 노래로 대사가 이어져 자칫하면 지루해 하지 않을까 염려도 되었지만 왠지 모르게 음악에 문외한 사람까지 가사 하나하나가 자신들의 이야기로 들리기에 우린 화면에서 눈을 떼려야 뗄 수 없었다. 빅토르 위고가 원작 서문에서 밝혔듯이, 지상에 무지와 빈곤이 존재하는 한 꿈을 잃고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기에 그 책이 무익하지 않은 것처럼 영화 또한 관람객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면서 관객 수는 계속 늘어만 가고 있다. 휴 잭맨이 연기한 장발장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빵을 훔쳐 감옥에서 죄 값을 충분히 치루었음에도 배고파 또 성당에서 은촛대를 훔치지만 신부의 도움으로 새 삶을 살아가면서 진정한 사랑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사람들의 관심은 사랑에 있다. 레미제라블에서 가장 하고 싶은 메시지는 삶은 고단하고 부당하며 도무지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상황일지라도 사랑은 인생의 모든 것을 극복하게하고 사랑 안에서만 새로운 내일이 온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었다. 민중의 가난과 고통은 결국 평등한 사회를 꿈꾸며 혁명을 일으키는 현장 속에서도 장발장의 끝없는 사랑은 자신의 딸을 사랑하는 마리우스의 목숨을 구하게 하고, 평생 악연이었던 자베르 경감마저 변화시켰다. 가난에서 비롯된 죄, 낙인찍힌 인생의 수 없는 굴레들, 또한 각자가 내면에서 일어난 수없는 혁명들은 어디서 무엇으로 비롯되었단 말인가. 그것은 다만 사랑을 실천함으로 나타난 능력들이었다. 장발장의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였지만 그는 감사하게도 자신의 인생을 사랑했기에 한 개인의 회심 속에 내면의 혁명과 한 나라의 혁명까지 가능하게 했던 원동력이었음을 모두에게 전율을 느끼게 했던 것이다. 이렇게 사랑은 인생의 가장 큰 능력이 되고 있지만 현실적인 갈등(葛藤)이 있다. <라보엠>에서 미미는 죽는 순간에까지 로돌포를 보기 위해 그의 방을 찾아 와 그의 품 안을 그리워하며 눈을 감았다. 그것은 돈은 필요한 것이지만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이 인간의 운명임을 보여주고 있다는 <라보엠>의 결론과 같은 장면이었다. 사랑은 분명 차가운 겨울날에 따스한 햇빛이 되어주고 인생을 살만하게 만들어주는 가장 좋은 친구지만 사랑엔 수없는 갈등과 고통이 연약한 인간을 고뇌하게 만든다. 양심과 인간애를 두고 갈등하며 스스로 잡혀 들어가는 장발장, 의무감과 양심 앞에 격렬한 갈등을 느끼는 자베르 경감, 혁명과 사랑사이에서 갈등하던 마리우스, 모두가 사랑했기에 사랑이 갈등하게 만들었다. 사랑이 없다면 아니 사랑을 느낄 수 없었다면 그들은 갈등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비록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사고의 차이와 이기심의 발로로 인해 인간은 갈등을 벗어 날수 없을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우리는 다시 한 번 세대 갈등을 확실히 보았다. 20대,30대와 50대,60대가 서로에 대한 편견과 오해 그리고 피해의식들을 사회통합위원회에서 어찌 풀 수 있겠는가. 인간은 연약한 존재이기에 나와 다름은 나쁘다고 평가하면서 무조건 거부한다. 우리는 날마다 다시 한 번 다름과 틀림을 되새겨 봐야한다. 마치 같게 느끼는 동감과 함께 느끼는 공감은 엄연히 다르듯이, 동일성이 아니라 차이성을 인정하는 공감대가 갈등을 해소할 열쇠라는 점이다. 갈등은 해소한다는 차원보다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의식으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가장 적정한 해법을 찾아 발전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갈등 해결은 솔직함에서 시작 된다. 진실은 마음의 창이기 때문이다. 갈등 해결은 사랑함에서 시작 된다. 용납은 열린 마음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갈등 해결은 교통함에서 시작 된다. 하나 됨으로 비로써 형제애와 더불어 인생의 지혜를 얻게 된다. 그러다보면 갈등은 서로를 알 수 있는 기회요 자신의 잠재력이 개발될 수 있는 기회가 되기에 갈등은 모두가 싫어하지만 때론 인생에서 그것이 약이 될 때가 많음을 알고 있다. 불쌍한 사람들은 고단한 삶을 살아가지만 마음만은 순수하다. 적어도 사랑이 무엇인지 화목이 무엇인지를 알기에 내일에 대한 담대한 마음을 갖게 되면서 인생의 섭리를 알게 된다. 죽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닌데 진정 무서운 것은 제대로 살지 못한 것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던 기억이 난다. 인간은 갈등 속에 자신을 알아간다. 아니 신의 뜻을 알아가면서 욕망에 의한 삶이 아니라 사명에 의한 생을 살아가려고 부단히도 애를 쓴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함께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결국 북받치는 감동의 물결은 눈시울을 붉게 하고 말았다. “오늘 우리가 죽으면 다른 이들이 일어서리. 다른 이들이 일어서리. 이 땅에 자유가 찾아올 때까지” 이것이 사랑을 깨달고 사명을 깨달은 인간의 자세다. 이것이 짐승과 다른 인간만이 갖는 거룩한 영혼의 부르짖음이다. 만약에 인생의 사명을 알고 사명을 위해 살다가 죽는다면 그가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 구원받은 자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레 미제라블> 영화 제목은 ‘불쌍한 자들’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들’이라고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원은 불쌍한 자들이 받는 신의 선물이요, 이 땅에서 가장 행복한 삶의 기본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사랑을 통해 구원은 시작된다. 갈등을 통해 사명은 구체화된다. 진리를 통해 내일은 확고하면서 나로 인해 또 다른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한다. 주여, 내가 불쌍한 사람이요 내가 비참한 사람이요 내가 장발장임을 압니다. 당신의 구원이 없었다면 내가 어찌 사랑을 알며 사명을 알았으며 진리를 알았겠습니까. 이제 구원받은 자로 베품과 용서를 통해 내일을 더 확신하게 하소서. 2013년 1월 26일 강릉에서 피러한(한억만)드립니다. ◆클릭<호수와 세상사이에서>안내◆
사진허락작가ꁾ이요셉님, 투가리님, 포남님
^경포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