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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夕 節祀 省墓 墓祀의 意義와 現實化 方案 -달아달아 밝은 달아-

素彬여옥 2010. 9. 19. 21:45

 


 

秋夕 節祀 省墓 墓祀의 意義와 現實化 方案

                                                                                               金 時 晃

 

1 머리말

 

설이나 秋夕 名節이 되면 우리나라 대부분의 家庭에서는 조상에게 차례를 지낸다. 秋夕에 지내는 祭祀는 節祀라고 하여 名節에 지내는 제사를 말하며, 茶禮, 차사라 하기도 한다, 이러한 祖上에 대한 제사는 수천 년 전부터 美風良俗으로 전해오고 있다. 그래서 이 명절이 가까와 오면 新聞사나 放送局에서는 차례에 대한 意義, 節次, 方法 등에 대해 반드시 言及하여 왔다.

그런데 우리나라 固有의 禮節이 日帝 植民 統治에 의해 破壞, 抹殺된 후, 아직까지 그 禮節을 回復, 蘇生시키지 못했으므로, 이것을 옳게 이해하고 아는 이가 매우 드물다. 그러므로 統一된 禮節이 없이, 집집마다 제각기 다르고, 또, 無秩序하게 행해지고 있는 형편이다.

더구나 오랫동안 政府의 一貫性 없는 政策 때문에 아직도 新正을 설로 하느냐 舊正을 설로 하느냐 하는 문제가 국민들의 머리 속에 확실히 定着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 있다. 그러므로 국민들 대부분이 陰曆 정월 초하루가 옳은 설인 것으로만 여겨오면서 그럭저럭 數十 年을 지내왔다.

이에 따라 陰曆 8월 보름인 秋夕은 아무런 異議가 없이 當然히 年中 큰 名節로서 자리를 굳혀 오고 있으며,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祖上 代代로 내려오던 名節 祭祀를 踏襲해 왔다. 그러나 일부 젊은이들, 특히 女性 쪽에서는 힘들고 귀찮다는 생각을 점점 굳게 하면서 忌避와 拒否感마저 가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현실임과 동시에 그 意義와 節次 形式 등을 根本的으로 再檢討하여야 하는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에, 그 방법과 절차를 살펴보고, 몇 가지 문제점과 是正할 점을 提示하여 본다.

 

2 秋夕 節祀 (茶禮)

1) 神主와 紙榜 (神位)

 

神主나 紙榜은 북쪽에 南向으로 모신다. 방안의 構造가 不適當하여 실제 방향과 다르더라도 神主나 紙榜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향한 것으로 본다. 神位에는 밤나무로 만든 神主를 모신다. 옛날에는 塑像으로 했을 때도 있었으나, 後代에 와서 塑像 制度는 廢止된 듯하다. 神主는 祭床 위에 모시지 않고 따로 交椅를 마련하여 모신다.

神主가 없으면 紙榜으로 대신한다. 이 神主나 紙榜에 祖上의 神이 와 계신다고 생각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紙榜은 제사가 끝나면 불에 태워 버린다. 지방은 아래와 같이 써 왔다.

 

高祖父 : 顯高祖考處士府君神位

顯高祖考學生府君神位

高祖母 : 顯高祖妣孺人金海金氏神位

顯高祖妣孺人密陽朴氏神位

祖父母 : 顯祖考書記官靑松郡守府君神位

顯祖妣永川高等學校長密陽朴氏神位

父母 : 顯考東國貿易株式會社長府君神位

顯妣大邱女性儒道會長烏川鄭氏神位

顯字는 ‘훌륭한’ ‘빛나는’의 뜻이고, 考는 돌아가신 아버지, 妣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뜻이다. 學生이란 말과 處士라는 말은 모두 벼슬하지 않은 선비의 뜻인데, 대개 家門의 傳統에 따라 달리 쓰는 것이다. 日帝時代에 한 벼슬은 쓰지 않는다 하더라도 大韓民國이 樹立된 후, 現在까지의 職銜을 쓰는 것은 옳다고 생각한다.

漢文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어려운 한문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한글로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쉬운 한글 紙榜을 硏究 創案해 내는 것도 생각해야 할 일이며, 앞으로의 중요한 課題이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며, 또 가르치면 어렵지 않게 해 낼 수 있는 것이다.

紙榜은 一定한 規格이 없지만 대략 神主와 같게 하거나 조금 크게 하면 된다. 신주의 모양은 위가 둥글고 아래는 모나지만 지방은 위를 둥글게 하지 않고 四角形 그대로 둔다. 받침을 除外하고 높이는 대략 23 센치미터 정도이고 가로 6.5 센치미터 정도이다.

節祀를 지낼 때는 평소에 忌祭祀를 지내는 祖上은 모두 함께 모신다. 그러므로 不遷位를 모시고 있는 집에서는 最大限 五代까지가 될 수 있다. 五代를 모시면 考妣位를 합해 최소한 10位이다. 婦人이 한 사람이 아니고, 여럿일 수도 있으므로 10위 이상일 수도 있다. 맏 집이 아니고 其次인 경우에는 曾祖父母부터, 또는 祖父母부터 지내거나, 아버지와 어머니, 두 位만 지내는 집도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사진은 옛날에 쓰지 않았다. 없어서 쓰지 않은 것이 아니다. 畵工이 그린 肖像이 많이 있었지만, 쓰지 않은 까닭은 ‘우리 할아버지의 본 모습이 아니라’는 이유, 또는 죽은 이의 얼굴을 똑 바로 쳐다보기 어려운 점이 있기 때문이라 하는데, 確實하지는 않다. 不遷位나 高祖父, 曾祖父, 祖父의 寫眞이 남아 있기가 어려운 점도 있지만 있다 하더라도 神位에 모시지는 않았다.

 

2) 祭床의 設置

 

不遷位가 있고, 高祖父母, 曾祖父母, 祖父母, 父母 등 5대 奉祀를 하는 宗家이면, 代數에 따라 考位와 妣位를 合設하되, 각각 따로 祭床을 設置해야 하므로 다섯 개의 祭床이 필요하게 된다. 祭床은 屛風을 친 다음에 윗대부터 서쪽에서 동쪽으로 제상을 차례대로 놓는다. 조부모와 부모만 奉事하는 경우는 두 개의 제상, 또는 하나의 큰 제상을 祖父母 床과 父母 床으로 區分해서 차리면 될 것이고 부모만 봉사하는 집에서는 물론 한 상만 차리면 될 것이다.

父子間이나 舅婦間을 한 상에 차리는 것은 禮儀가 아니다. 지금 사람들이 民主的이라 해서,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밥을 한 상에 차려 놓고 먹는 경우가 있지만, 마음이 불편하고 거북한 점이 더 많은 것이다. 더구나 뷔폐식이라고 해서 飮食을 종류별로 다른 그릇에 담지 않고, 모두 한 그릇에 담아 여러 代 조상을 함께 모시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禮節이란 節度에 맞는 秩序이다. 몸이 편하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몸이 편한 것보다는 마음이 편하고 즐거워야 하는 것이다. 몸의 편함을 위해 秩序를 破壞시키면 마음이 편하고 즐거울 수가 없는 것이다. 옛 사람들은 禮를 重視하여 마음이 서로 편하도록 한 것이다. 현대의 우리들도 이를 따라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3) 祭需의 마련

 

祭需는 아주 간소하게 마련하는 것이다. 그래서 儉素節約 정신을 살려야 한다. 新正(설) 차례에 떡국, 肉炙(고기적), 魚炙(생선적), 蔬炙(두부 및 채소적), 煎, 湯, 脯, 나박김치, 나물 류, 간장, 식혜, 과일, 닭, 시루떡 등을 들고 있는데, 이렇게 여러 가지를 다 각 위마다 마련하여 차릴 수는 없는 것이다.

설 차사에는 떡국을 주로 하고, 그밖에 약간의 실과와 고기 나물 등을 쓰면 되는 것이고, 秋夕 차사에는 햇 쌀밥과 송편을 주로 하며, 나물과 고기 등을 추가한다. 추석 차사에는 밥이 있기 때문에 국이 있어야 하고 따라서 밥반찬이 따르게 마련이다. 밥을 놓지 않으면 반찬이 필요 없는 것이다.

七夕 차사에는 국수와 여름 실과인 참외 수박을 주로 하고, 冬至 차사에는 팥죽과 몇 가지 실과 및 고기 나물 등을 주로 쓴다. 이것이 時食 인 것이다. 祭祀에 반드시 무슨 음식을 꼭 써야 한다는 법은 없다. 제사 지낼 그 時節에 生産되는 일반적인 음식물을 깨끗하게 마련하여 쓰면 되는 것이다. 시루떡을 쓸 수도 있지만 차례에 일부러 시루떡을 쓸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옛날에는 바다와 먼 곳에서 생선을 쓰기 어려웠으므로 脯(말린 고기)를 쓸 수밖에 없었고, 여름철에는 곶감과 밤 대추 등을 구할 수 없으므로, 참외나 수박을 주로 썼던 것이다. 그러므로 조기를 반드시 써야 하는 것이 아니며, 상어 토막 고기가 꼭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옛 制度에는 三湯은 大夫 以上이라야 쓸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一般人은 湯 한 가지만 쓰거나, 없을 수도 있었다. 벼슬에 따라 差等을 둔 것은 奢侈와 浪費를 피하고 儉素하게 하라는 뜻이다. 차례에는 湯이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물 三色을 마련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두 가지 정도면 충분하다. 반드시 三色을 갖추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魚 肉 炙과 함께 곁들여 한 접시에 쓸 수도 있다. 각각 다른 접시에 담으면 좋겠지만 접시가 많으면 제상이 비좁아서 다 놓을 수가 없게 된다. 祭床을 작게 한 것과 祭器 접시가 작은 것은 가난하고 돈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儉素하고 節約하는 精神을 살리라는 것이다.

차사에 實果는 모두 합하여 한 접시나 두 접시에 담는다. 實果가 흔하니까 여러 가지를 마련할 수는 있지만, 여러 가지를 여러 位에 모두 다 차리기는 어렵고 번거로우므로, 당시에 生産 되는 것으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을 마련하여 簡素하게 차리는 것이 좋겠다.

사과나 배 감 밀감 같이 껍질이 있는 것은 반드시 깎아서 슨다. 아래위만 조금씩 깎거나, 위쪽만 도려내는 것은 옳지 않다. 父母 祖上 드리는 음식을 껍질 채로 드리는 것은 자손의 도리라고 할 수 없다. 그냥 드실 수 있도록 깍든가 썰어서 드리는 것이 당연하다 하겠다.

4) 祭需의 陳設

 

祭需는 가급적 굽이 달린 접시나 받침이 있는 것을 사용한다. 같은 종류의 음식은 한 접시에 괴어서 접시 수를 줄인다. 굽이 없는 쟁반에 여러 가지 음식을 각각 羅列하면 제상이 비좁아서 차릴 수 없다. 祭床과 접시가 작은 것은 가난해서가 아니라 검소하고 절약하는 유가의 근본 정신을 나타낸 것이다. 祖上의 恩惠에 報答하려는 至極한 精誠이 깃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祭器에 담을 때는 정성 들여 그릇에 따라 둥글게, 또는 네모나게 整列하여 괸다. 반드시 여러 불 많이 괴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淨潔하고 깔끔하게 해야한다.

祭需를 陳設하는 데는 여러 가지 설이 많다. 大祭나 忌祭祀의 경우는 제수가 조금 많으므로 진설이 복잡하지만 차례의 경우는 간단하다. 陳設은 地方에 따라 門中이나 家庭에 따라 다르다. 4열 또는 5열로 놓는 것으로 알지만 차례는 차린 음식이 많지 않으므로, 3렬 정도가 알맞을 것이다.

고기는 보통 以尾爲上이라 해서 꼬리를 서쪽으로 놓는다. 魚東肉西라 해서 생선은 동쪽에, 고기는 서쪽으로 놓는다. 左脯右醢(西脯東醢)라 해서 포는 왼쪽에 젓갈은 오른 쪽에 놓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飮食物을 어느 곳에 놓아야 꼭 옳다는 規定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棗栗梨柿(대추 밤 배 감), 紅東白西(붉은 것은 동쪽에, 흰 것은 서쪽에), 棗東栗西(대추는 동쪽에, 밤은 서쪽에)의 原則이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嶺南 地方의 南人 系統 사람들은 ‘棗栗梨柿’를 주로 해 왔고, 畿湖 地方의 老論 系統 사람들은 ‘紅東白西’를 주로 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가지고 이렇게 해야 된다고 固執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가장 간단한 秋夕 節祀의 祭需와 진설을 아래 표로 보인다. 이 표는 한 代의 考妣位를 한 床에 차린 것이다. 여러 代를 奉祀할 경우는 물론 제상이 따로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은 앞에서 이미 말하였다.

 

曾祖考位 曾祖妣位 祖考位 祖妣位 考位 妣位

盞臺 匙箸 盞臺 盞臺 匙箸 盞臺 盞臺 匙箸 盞臺

밥 국 밥 국 밥 국 밥 국 밥 국 밥 국

生鮮 炙 송편 生鮮 炙 송편 生鮮 炙 송편

白菜 醬 靑菜 (沈采) 白菜 醬 靑菜 (沈采) 白菜 醬 靑菜 (沈采)

實果 實果 (實果) 實果 實果 (實果) 實果 實果 (實果)

香床 茅沙 酒煎子

 

수저는 가운데 놓지 않고 왼쪽 가에 놓아도 좋다. 밥과 떡은 햅쌀로 짓는다. 생선은 접시에 담을 수 있는 것 두 마리 정도로 하고 적은 菜蔬적 위에 生鮮炙이나 고기적 또는 고기를 놓을 수도 있다. 菜蔬는 靑色 白色으로 나누어 두 접시 정도로 하고, 脯나 김치를 곁들일 수 있다. 실과는 두세 접시 정도로 한다.

다만 이것이 반드시 標準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至極한 精誠을 가진 자손들은 제사를 이것 보다 훨씬 더 잘 지낼 수 있으리라 본다. 그러나 祭祀 때문에 子孫들이 苦痛을 겪는다든가, 특히 主婦가 제사 때문에 精神的, 物質的으로 괴로워하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될 것이다.

 

5) 節祀의 절차와 방법

 

(1) 陳設 : 執事者는 마련한 음식물을 祭床 위에 모두 다 차린다. 祭祀에 參席한 모든 사람들은 祭服을 입고, 남자는 동쪽에 여자는 서쪽에 늘어선다. 여자는 祭祀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祭祀는 반드시 夫婦가<內外> 함께 지내는 것이다.

(2) 題紙榜 : 차례대로 紙榜을 써서 붙인다. 지방을 붙이는 제상의 북쪽 병풍 앞에 지방 붙일 곳<椅>을 마련한다. 板子를 세우거나 두꺼운 책을 세워 놓고 그 위에 깨끗한 흰 종이를 바른 다음 지방을 붙일 수도 있다. 병풍이나 벽에 붙이지 않는다.

(3) 焚香 : 主祭者(主人)가 향 세 까치 정도로 불을 피우고 再拜한다.

(4) 酹酒 : 주제자가 술 한잔을 茅沙 그릇에 세 번 나누어 따르고 再拜한다. 焚香과 酹酒를 합하여 降神이라고 한다.

(5) 參神 : 主祭者 이하 모두 재배한다. 강신과 참신은 신주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순서를 달리 한다. 신주가 있으면 참신을 먼저 하고, 신주 없이 지방으로 行事할 때는 降神을 먼저 한다.

(6) 獻爵 : 주제자가 각 位마다 헌작하고 재배한다. 忌祭祀는 祝이 있고, 三獻을 하지만, 차례에는 無祝 單獻이다. 따라서 添爵도 하지 않는다. 여러 位를 함께 제사 지내기 때문에 三獻을 다 할 수 없는 것이다. 主祭者 혼자서 모든 家族들과 男女老少 參祭者를 代身한 것이다. 獻爵할 때 술잔을 들고 절대로 돌리지 않는 것이다.

主祭者의 아내인 主婦나 주제자의 동생에게 獻爵할 機會를 주지 않았다고 해서 疎外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혀 둔다. 특히 오래 만에 온 사람, 멀리서 온 사람, 직위가 높은 사람이라고 해서 獻爵을 시키는 것은 家庭의 秩序를 紊亂하게 하는 것이며, 不睦의 素地를 마련하는 것이므로 지극히 삼가야 하는 것이다.

(7) 扱匙正箸 : 숫가락을 밥그릇에 꽂고, 젓가락을 제자리에 바로 놓는다. 젓가락을 제상에 세 번 소리가 나도록 간추리거나, 고기 접시 위에 얹어서 고기를 많이 드시라고 하는 것은 俗된 것이다.

(8) 闔門 : 문을 닫거나, 屛風 등으로 가린다.

(9) 俯伏 : 주제자 이하 문 밖이나 가린 병풍 앞에 잠시 동안 엎드려 다 드실 동안을 기다린다.

(10) 啓門 : 세 번 기침을 하고 문이나, 병풍을 연다. 기침은 사람이 와서 문을 열려고 함을 뜻한다. 忌祭祀와는 달리 侑食과 鞠躬의 순서가 없다. 이것도 번거로움을 피한 것이다.

(11) 下匙箸 : 수저를 제자리에 내려놓는다.

(12) 辭神 : 주제자 이하 모두 재배한다. 祖上神과의 이별이다.

(13) 退爵 : 執事者는 술잔을 제상 아래로 내려놓는다.

(14) 焚紙榜 : 지방을 불사른다. 禮를 모두 마친다.

(15) 撤床 : 제상에 차려 놓은 음식물을 걷어치운다.

(16) 飮福 : 主祭者에게 먼저 福酒 잔을 드린다. 그리고, 차렸던 술과 음식물을 제사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나누어 먹는다.

 

이 제사는 짧은 시간 안에 다 지내야 한다. 時間을 오래 끄는 것은 잘못이라 생각된다. 嚴肅하고 鄭重하게 하면서 動作을 빨리 하여 길어도 30분 정도 이내에 끝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3 省墓와 墓祀

 

1) 省墓

 

省墓는 직접 산에 사서 묘를 살펴보는 것이다. 省墓는 隨時로 할 수 있지만 형편에 따라 봄이나 가을에 한다. 봄에 하는 것은 추운 겨울을 지나는 동안 별 變故가 있지나 않았는가를 살피면서 問安을 하는 뜻이고, 가을에는 여름 더위와 장마를 겪었으니까 그와 같이 하는 것이다. 설이나 추석에 반드시 省墓를 해야하는 것은 아니고, 다만 산소 가까이 고향에 왔을 때 하는 것이 좋고, 자손들이 함께 모였을 때 같이 한다는 것뿐이다.

省墓의 방법은 山所(墓) 앞에 도착하면 모두 두 번 철한다. 뵈오러 왔다는 인사이다. 다음 묘를 둘러보면서 異狀有無를 살펴본다. 가져 온 술이나 음식물이 있으면 간단히 차려 놓고 두 번 절한다. 돌아 올 때 작별의 인사로 두 번 절한다.

墓祀는 산소에 가서 지내는 祭祀이다. 墓祭라고도 한다. 墓祀가 언제부터 施行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朱子家禮 이후부터가 아닌가 한다. 일년에 한번 정도 가을에 지내는데, 대상은 모든 조상 산소에 다 지내는 경우, 또는 忌祭祀를 받들지 않는 먼 조상에게만 지내는 경우가 있다. 먼 조상들의 山所는 失墓를 하여 山所가어딘지 모를 때는 祭壇을 마련하여 지내기도 한다.

2) 祖上 墓(山所) 보존의 意味와 對象

 

父母 祖上의 墓를 保存하여 그 큰 恩惠에 보답하고 사랑을 느끼면서 子孫으로서의 道理를 다하고 그들의 훌륭한 삶을 배우고 본받으며, 나아가 그러한 마음과 行爲가 子孫들에게 본보기가 됨으로써 그들을 올바르게 가르치고 착하고 즐겁게 살아가도록 하는 것은 부모조상으로서 너무나 當然하고 또 高貴한 責任과 任務임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흘러가고 보면 가까운 祖上과 먼 祖上, 그리고 훌륭한 祖上과 그렇지 못한 祖上은 자연히 다르게 認識되지 않을 수 없다. 이 세상에 적어도 有史以來 四千餘年 동안 聖人과 賢人들이 수없이 살아 왔는 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平民으로 이름이 남지 않고 후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것은 自然現象이다. 조상들도 이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인간 생활과 자연의 이치이다.

그러므로 조상의 墓를 모두 다 無酌定 保存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또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빛나게 살았던 聖賢들의 山所는 文化遺産으로 永遠히 잘 保存하여 後世 사람들의 삶의 標本으로 삼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훌륭한 祖上들의 삶과 가르침은 길이 길이 이어받아야 나가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그렇지 않은 조상들의 墓는 모두 다 保存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또 그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자연의 이치에 合當하다고 할 수 업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나 생물은 죽으면 썩어서 흙이 되어, 자연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祭祀는 모든 조상들에게 다 지내야 하는 것이 아니다. 職位에 따라서 天子는 七廟, 諸侯인 王은 五廟, 대부는 三廟, 士와 庶人는 二廟 곧 祖父母와 父母의 祭祀만 받들도록 禮制를 마련하여 施行하도록 한 것이 先王과 聖賢들이 뜻이고 가르침이었다. 새로 祭壇을 만들어 번거롭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 바른 도리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3) 墓祀와 神主 및 位牌 奉安

 

墓祀는 봄이나 가을에 墓앞에서 지내는 제사이며 墓祭라고도 한다. 이 제사는 언제부터 施行되기 시작했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朱子家禮 이후가 아닌가 斟酌된다. 省墓할 때 그냥 省墓만 하기에는 너무 허전한 感이 있기 때문에 若干의 飮食物을 마련했던 것이 祭祀로 發展했을 것이다.

奉祀 對象은 墓가 保存되어 있는 모든 祖上이지만 忌祭祀를 지내고 있는 祖上 墓에는 지내지 않는 경우가 있고, 失墓 했을 경우 앞에서 論한 것처럼 設壇을 해서 지내기도 한다. 그러나 大部分의 現代人들은 墓祀에 대한 觀念이 매우 稀薄해 져서, 앞으로는 조상에 대한 向念이 極盡한 일부 사람들을 除外하고는 없어져버릴 可能性이 높다.

祖上墓에 대한 子孫들의 向念이 많이 줄어 든 탓도 있지만 祖上 墓가 있는 시골에는 젊은 子孫들이 거의 없고, 일부 老人들만 살고 있는 實情이기 때문에 墓祀를 지낼 사람이 없게 된 것이 그 큰 이유이다. 그리고, 비바람과 추위로 墓에앞에서 墓祀를 지내기 어려운 때도 있고, 산이 높고 험하며 나무가 너무 울창하여 墓에까지 접근이 不可能한 경우가 없지 않다.

그래서 墓祀制度가 엉뚱한 방향으로 變遷해 가고 있는 것이다. 墓 아래 齋室이 있으면 齋室에서 지내기도 하지만 齋室이 없는 곳이 많으므로, 山所 아래 산기슭에 祭需를 陳設하여 지내기도 하는데 이렇게 하는 것이 果然 合當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壯談하지 못한다.

최근에 와서 奇拔한 着想이 나와 자손들이 살고 있는 마을 근처에 묘사를 지내기 위한 祠堂을 마련하여 자손들이 거기에 모여서 묘사를 지내는 門中이 생겼으며, 이에 따라 이러한 현상이 점점 늘어나는 趨勢인 것 같다. 祖上 墓가 있는 산아래도 아니고 墓와는 거리가 먼 곳에다가 墓祭를 위한 祠堂을 짓고 거기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을 筆者는 도저히 贊同할 수 없다.

墓祀를 반드시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墓祀를 위하여 祠堂을 따로 짓고 神主인지 位牌 등으로 神位를 새로 마련한다는 것이 이치에 맞는 것인가. 過去에 모셨던 家廟의 神主도 거의 없애고 말았는데 다시 먼 祖上들의 神主나 位牌를 만들어 누가 언제까지 어떻게 保存하며 모실 것인가를 좀 더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忌祭祀와 마찬가지로 祭需를 完全히 갖추어 墓에 가서 제사를 지낸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은 여러 가지 與件으로 보아 누구도 否認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父母 祖上 墓를 그냥 내버려 둘 수 없는 것이다. 古禮를 參酌하여 그 原理를 살리고, 현실 생활에 알맞은 制度를 마련하여 人情과 道理에 疏忽함이 없도록 하는 것이 現代인의 責務이다.

墓祀를 完全히 廢止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먼 조상이라 하더라도 歷史上 큰 人物로서 훌륭한 祖上이라면 물론이고, 가까운 父母祖上의 墓에는 子孫으로서의 最小限의 도리를 다해야 할 것이다. 부모 조상을 爲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자신들의 할 일이며 자기 자손과 이웃 사람들에 대한 본보기로서 敎化 次元의 敎育的인 깊은 意味가 있기 때문이다.

數千 年 내려오면서 聖賢들이 마련하여 가르쳤으며, 우리의 훌륭한 조상들이 行하던 것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不定하거나 無視하는 것은 後生과 後孫들의 도리가 아니다. 可及的 따르고 實踐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우리들의 태도이다. 現實的인 中庸의 道를 다시 發見해야 한다.

옛날에 없었으며 하지 않았던 것을 함부로 만들어서는 안될 것이다. 儀禮와 制度는 아무나 만드는 것이 아니다. 현대와 미래까지를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그 儀禮와 制度가 빛과 생명을 오래 유지하지 못할 것이며 現代人다에게도 도리어 負擔이 되고 거추장스러운 存在가 될 것이다.

4 伊藤博文의 妄靈 家家禮

 

우리나라의 모든 禮法은 古代부터 周禮 儀禮 禮記인 三禮에 根據하여 마련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다가 朱子家禮가 들어와 普及된 뒤부터는 冠婚喪祭를 비롯한 일반 禮節이 모두 이에 따라 행해져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요즈음 禮節을 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가례’란 말을 함부로 써 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가가례란 말은 집집마다 다른 예를 행하고 있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제사나 喪事에 있어서 지방이나 門中마다 약간 달리 시행하고 있는 예절에 대해 가가례란 말이 주로 言及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가례란 말을 이와 같이 아무렇게나 써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래서 가가례란 말의 유래를 한번 고찰해 보기로 한다. 가가례란 말을 대부분의 국어사전들에서는 다음과 같이 풀이하여 놓았다.

 

‘각 집안을 다라 달리 행하는 예법’ <한글학회 큰사전, 1957>

‘집집마다 달리 행하는 예법’ <홍웅선 김민수 편 새사전, 1959>

‘집집마다 달리 행하는 예법 풍속 습관’ <이희승 편 국어대사전, 82>

‘(國)집집마다 달리 행하는 예법 풍속 습관’ <장삼식 대한한사전, 82>

‘집안에 따라 달리 행하는 예법’ <한글학회 편 우리말 큰사전, 91>

몇몇 개의 사전에 이와 같이 풀이해 놓았지만 이 사전들은 다 일제 시대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 외의 사전들에서는 이 말이 없다. 더구나 四書三經은 물론, 조선시대의 그 많은 禮書들에서도 이 말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朝鮮王朝實錄에 찾아보아도 이 말은 발견할 수 없었다.

이로 미루어 보면 이 ‘가가례’란 말은 예절 용어가 아님이 분명하다. 옛 문헌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현대 사전에만 나타나는 이 말이 巷間에 그렇게 유행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이란 말인가. 의심이 없을 수 없는 일이다.

‘가가례’란 말은 일본의 伊藤博文이 만들어 퍼뜨린 것이라는 설이 있다. 또 이등박문이 植民地 政策上 우리 고유의 禮를 破壞하려는 策動에서 나온 것이라는 말이 있어 왔다. 우리나라 朝鮮時代의 禮는 朱子家禮에 따라 행해 왔는데, 이 家禮를 家家禮로 하도록 한 것이다. 가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두 한 가지 통일된 예를 따르는 것이고, 가가례는 제 각기 집집마다 따로따로 달리 행하는 것이다.

가례대로 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협동 단결을 해 왔던 것인데, 가가례로 하게 함으로써 禮法, 風俗, 習慣을 달리하도록 하여, 分離 鬪爭을 助長시키려는 것이다. 한 民族이, 한 門中이, 어찌 禮法, 風俗, 習慣을 달리할 수 있는 것인가. 그렇게 하면 결과는 뻔하다. 서로 다투고 疾視와 反目을 하며, 스스로 허물어지게 되는 것이 아닌가.

喪禮를 행할 때나, 祭祀를 지낼 때, 우리나라의 훌륭한 선비들이나 옛 어른들이, 가가례란 말씀을 하는 것을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전혀 없는 것이다. 禮를 옳게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서서 가가례라 하며, 이래도 할 수 있고 저래도 할 수 있다고 主張하는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우리 고유 문화를 크게 그르치는 한 例라 하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單一民族으로서, 古代부터 모든 文物制度를 같이 해 왔다. 온 나라가 같은 문화를 가지고, 그것을 계승 발전시키면서 살아 왔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 전통 문화를 굳건히 유지하고 이어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 무서운 가가례의 妄靈을, 우리 생활 속에서 하루 빨리 말끔히 몰아내고 씻어버려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4 맺는 말

 

한 해 봄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하여 햇곡식을 먹으려 할 때, 祖上에게 祭祀를 지내는 것은 참으로 뜻 있는 일이다. 조상의 은혜에 報答하려는 마음을 잊지 않는 것은 사람의 基本的인 道理이다. 恩惠를 알지 못한다거나 잊어버리는 것은 사람다운 사람이 못되는 것이다.

子孫들이 祖上으로부터 福을 받겠다고 祭祀를 지내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큰사랑과 은혜를 잊지 않고, 그 가르침을 되새겨 보자는 것이다. 조상들의 아름답고 훌륭한 삶을 본받고 이어 가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사는 조상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들의 潤澤한 삶을 위하는 것이며, 나아가서는 子孫들의 올바른 敎育을 바라는 것이다.

제사를 통해 조상에 대한 자신의 도리를 다함으로써 마음이 편하고 즐거우며, 자손들에게 사람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것을 보고 듣고 실천하게 함으로써 참다운 人間性을 길러 가게 하는 것이다. 어른을 恭敬하고 어진 이를 높이며, 恭遜하고 敬虔한 態度와 謙遜하며 辭讓하는 言行을 배우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제사를 소홀히 한다거나 귀찮은 것으로 생각하여 없애야 한다는 主張은 어리석기 그지없는 것이다.

名節인 秋夕의 意義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고 올바르게 인식하여, 秋夕에 절사를 지내고 祖上 山所에 省墓를 하는 것은 우리 固有의 오랜 美風良俗이므로, 그 現代的 價値와 意義를 再確認하여 人間的, 敎育的으로 떳떳하게 施行 發展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