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만나고 싶은 사람
박원자
이 가을에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부르기만 하면 달려가서 두 손을 깍지 끼고 은행잎이 바람에 날리는 그 숲을 걷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가녀린 허리 동여매고 산들바람에 고개숙여 인사하는 코스모스를 보면 그 길을 함께 걷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국화향 가득한 꽃집 앞을 지날 땐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울었던 소쩍새를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빨간 단풍나무숲을 지날 때는 그 단풍 한 잎 입에 물고 내 마음이 단풍처럼 붉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가을 햇살에 은빛 물결을 이루는 억새 옆을 지날 땐 내 마음은 솜털처럼 부드럽고 미풍에도 흔들리는 가녀린 마음의 나약한 여인이라고 고백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지붕이 하얀 까페를 보면 향기가 진한 커피 한 잔에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그 음악 속에 릴케는 바로 당신이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코발트빛처럼 푸른 하늘을 보면 내 그리움이 그렇게 푸르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멀리 바라보이는 가을산 끝자락을 보면 당신을 그리워하는 그리움이 그 산 끝자락에 있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스산한 바람이 불고 낙엽이 우수수 지면 내 그리움도 사라질까 그 바람을 온몸으로 함께 막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내 마음 속의 그대가 몹시도 보고 싶은 가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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