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둘째 손녀의 집을 찾기 위해 수소문을 했다.
『그집 말예요, 부자집이긴 하지만 아예 들어갈 생각은 하질
마세요. 얼마나 구두쇠인지 모른답니다.
사내놈이나 계집이나 똑 같아요.』
마을 사람에게 그 집의 근황을 물으니 이런 답변이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실망을 하지 않았다.
『잘 사는 사람은 그래야지. 구두쇠 노릇 하지 않고
어디 잘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할머니는 큼직한 대문밑에서 둘째 손녀의 이름을 불렀다.
안채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또 어떤 거지가 찾아왔나 보다. 뭣들하고 있느냐!
빨리 쫓아 버리지 않고 응!』
하는 여인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문지기가 나와서 할머니의 아래위를 훑어 보더니
『여기는 그런 집이 아닙니다. 딴 집에 가서 동냥을 얻으슈.』
하고는 퉁명스럽게 쫓아내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문지기에게
『다름이 아니라 이 집은 내 둘째 손녀의 집이외다.
모처럼 찾아왔으니 만나게 해 주십시오.』
하고, 사정을 했다.
『그럼 잠깐 기다려 보슈.』
하고, 문지기가 안으로 들어간 후 한참만에 둘째 손녀가 나왔다.
둘째 손녀는 얼굴에 잔뜩 화를 내가지고서 할머니에게
『찾아오시는 것도 좋지만 옷이라도 깨끗이 입고 찾아오셔야지
그 꼴이 뭡니까. 남들이 보면 거지인 줄 알지 않아요.
제 체면도 있고 하니 우선 안으로 들어오세요.』
하며, 마치 할머니를 거지 취급을 하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안채로 들어갔다.
안채라야 어느 구석진 골방으로 안내되었다.
할머니는 곰곰이 생각했다.
『여기도 내가 있을 곳이 못 되는구나...... 떠나자.』
하고, 푸대접을 받으며 이틀을 지낸 후 할머니는
이제 세상이 싫어졌다.
그날 밤 손녀의 목소리가 우연히 들려왔다.
『저 할머니는 우리가 살 때 우리 집에서 밥을 해 주던 할머니야.』
하인에게 하는 소리였다.
할머니는 그 이튿날 잠깐 어디를 좀 들릴
데가 있다고 한 후 집을 나섰다.
이제 남은 건 셋째 손녀의 집이었다.
『셋째 손녀 만큼은 그렇지 않겠지.』
할머니는 셋째 손녀에게 모든 희망을 걸고 또다시 길을 떠났다.
그러나 셋째 손녀의 집은 멀 뿐만 아니라 길도 험했다.
가까스로 셋째 손녀의 집이 바라보이는 언덕까지 왔다.
지금 막 그 집에선 저녁을 짓는 모양으로 한 줄기의 연기가
모락모락 피고 있었다.
할머니는 그 집을 내려다 보았다.
셋째 손녀의 집은 조그만한 초가집이었다.
이 때 할머니는 너무도 피곤하여 그만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미 온갖 기력이 쇠잔한 할머니는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몸이 되고 말았다.
한편 아무것도 모르는 셋째 손녀는 그날 밤에 꿈을 꾸었다.
꿈에 할머니가 나타나 울면서
『이놈들아, 너희들이 나를 박대해서 이렇게 나는 죽는다.』
하고, 말하고 할머니의 모습이 어디론지 사라졌다.
셋째 손녀는 꿈에서 깨어나자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할머니가 둘째 언니 첫째 언니에게 구박을 받으셨다면
이제 우리 집으로 오실지 모른다. 그러니 나가서 마중을 해야지.』
하고, 생각하고 남편과 함께 그 이튿날 아침에 뒷동산으로 올라가
보니 뜻밖에도 할머니의 시체가 눈에 띄었다.
셋째 손녀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소리쳐 울기 시작했다.
『할머니, 용서해 주세요! 할머니......』
셋째 손녀 내외는 그 자리에 엎드려서 서럽게 울었다.
그리고 할머니를 양지 바른 곳에 묻어드렸다.
그 이듬해 봄, 할머니의 무덤위에서는 이상한 꽃 한 송이가 피어나왔다.
그 꽃은 셋째 손녀의 집을 향해 허리가 굽어진 할머니처럼 피어 있었다.
손녀 내외는 할머니의 산소를 가꾸기 위해 산소에 올라갔다가
그 꽃을 발견했다.
『이꽃은 처음 보는 꽃이에요. 이 꽃은 반드시 할머니의 넋이 담긴
꽃일 거에요. 하얀 머리카락같이 생긴 꽃송이를 보세요.
또 허리가 우리 집으로 향해서 굽어 있고요.』
하고, 손녀는 남편에게 말했다.
이리하여 그 후 이 꽃을 <할미꽃>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할미꽃의 꽃말이 <사랑의 배신>이다.
봄소식을 전하는 식물로 동화나 시에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민간에서는 할미꽃 뿌리를 술 속에 담가서 류마티스 관절염, 신경통,
임파선염, 월경곤란 등에 쓰이며, 할미꽃 줄기와 잎은 허리와
무릎 사지 관절의 풍통, 부종 및 심장통, 심장병, 시력증진,
코피 나는 것을 치료하며, 꽃은 학질, 대머리,
두창을 치료하고, 말린 열매는 강장제로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