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七步詩 (일곱 걸음에 지은 시)/조식(曹植, 192~232)

素彬여옥 2013. 12. 1. 21:48



七步詩 (일곱 걸음에 지은 시)
- 조식(曹植, 192~232) -


煮豆持作羹 (자두지작갱) 콩 삶아서 국 만들고

漉豉以爲汁 (녹시이위즙) 메주 걸러서 장 만든다.

萁向釜下然 (기향부하연) 콩깍지는 솥 아래에서 타고

豆在釜中泣 (두재부중읍) 콩은 솥 안에서 흐느낀다.

本是同根生 (본시동근생) 본래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거늘

上煎何太急 (상전하태급) 서로 지지는 것이 어찌 그리 급한가?


< 해 설>

너무도 유명한 고사이다.
동서양 고대사를 보면 공통점이 매우 많다.

특히 궁중 비사(秘事), 권력 암투, 황제나 왕들의 애정 행각,

온갖 박해를 딛고 승리한 자가 펼치는 처절한 복수 등의

스토리는 아주 흡사하다. 한마디로 왕조의 역사는 권력투쟁에

승리함으로써 이루어지는 동시에, 그 권력 투쟁 때문에 국력이

고갈되어 급작스럽게 무너져 내렸다. 황제, 왕,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운명은 선악(善惡)과 생사(生死)를 같이 한다.

승리한 자는 바로 선(善)이요 삶을 뜻하고, 패한 자는 악(惡)이요 죽음을 뜻한다.

어쨌거나 일곱 걸음 안에 시를 지어야하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이런 뛰어난 시를 지어낸 조식이야말로 대단한 인물이 아닌가 싶다.

그의 뛰어난 문학적 소양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가 문학적 소양이 뛰어나지 않았다면, 또 그렇게 술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조비 대신 조식이 황제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역시 문학과 정치는 양립할 수 없는 모양이다.

하기야 권모술수, 모략, 눈치, 암투 같은 것들과 문학이 어울릴 수는 없지 않은가.

조조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가지이지만, 자식이 단명(短命)한 것으로 봐서

아무래도 악행을 많이 한 모양이다. 큰아들 조앙은 전쟁터에서 잃고,

둘째 조비와 셋째 조식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마흔 한 살에 세상을 떴으니,

아버지 대(代)에서 저지른 업보를 그 아들 대에서 받은 듯하다.

*조식(曹植, 192~232)은 중국 삼국시대(220~280) 위(魏)나라

시인으로 조조(曹操, 155~220)의 아들이다.

조조는 재기가 넘치는 조식을 사랑했지만,

절도가 없다는 점에서 실망하여 217년 둘째아들인

조비(曹丕, 186~226, 재위 220~226)를 후계자로 정했다.

맏아들 조앙(曹昻, ? ~197)은 일찍 전쟁터에서 죽었다.

조비가 위나라 황제로 즉위한 이래 조식은 늘 감시를 받고,

유폐생활을 하는 등 불우하게 지내다가 41세에 죽었다.

이 시는 <세설신어(世說新語)>에 의하면 조조의 뒤를 이은

문제(文帝) 조비가 동생 조식을 일곱 걸음 안에 시를 지어내지

못하면 처형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바람에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형제간의 갈등을 호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