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고개
曙 鄕 작사 / 李興烈 작곡 (1934년)
노래 : 백남옥
바위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 님이 그리워 눈물납니다
고개 위에 숨어서 기다리던 님
그리워 그리워
눈물납니다
바위고개 핀 꽃 진달래꽃은
우리 님이 즐겨즐겨 꺾어주던 꽃
님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님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바위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 님이 그리워 하도 그리워
십여년 간 머슴살이 하도 서러워
진달래꽃 안고서 눈물집니다
가곡
'바우고개'(원래 곡명) 작사자는 내
남편
- 2001년 12월 11일 오마이뉴스 정운현 기자
한국인들이 애창하는 대표적인 가곡 가운데 <바우고개>는 그동안 작곡가 이흥렬(작고)이 작사,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왔다. 그러나 실제는 월북한 극작가 겸 연출가 李曙鄕(1915~ )이 작사한 것으로 최근
밝혀졌다.
이서향의 아내 백난영(86)씨는 최근 발행된 以文學會 회보 <以文會友> 제5호에 기고한 글을 통하여
"<바우고개>는 남편이 14세이던 중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돌아오다 지은 것으로, 훗날 남편의 친구인 이흥렬씨가 작곡해주었다는
얘기를 남편으로부터 들었다"고 밝혔다. 이서향과 이흥렬 두 사람은 원래 同鄕(함남 원산) 출신으로 어릴 적
친구였다.
<바우고개>의 작사자가 이서향에서 이흥렬로 뒤바뀐 것은 이서향이 월북한 이후부터다. 이후 출간된 모든
음악서적에는 <바우고개> 작사자가 이흥렬로 둔갑되어있다. 그러나 해방전에 출간된 각종 자료에는 <바우고개>의 작사자가
엄연히 이서향으로 나와있다.
한 예로 1934년 東京 桑文社에서 간행한 <이흥렬 작곡집(제1집)>에는 <바우고개>의 작사자가
曙鄕으로 나와 있으며, 또 1939년 부민관에서 개최된 동아일보사 주체 제1회 <전조선 창작작곡발표 대음악제> 팜플릿에도 마찬가지로
나와있다. 음악계의 한 인사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던 얘기였으나 아무도 이를 내놓고 거론하기를 꺼려했던 사안>이라고 털어놨다.
일본 日本大에 유학하여 예술학과를 졸업한 이서향은 귀국 후 연출가로 활동하면서 당대 최고의 연출가로 이름을 날렸다.
1948년 '남북협상' 때 월북한 이서향은 6.25 당시 서울에 내려와 부인 백여사를 만나기도 했는데 이 일로 백여사는 나중에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백여사는 '한동안 월북작가들의 이름조차 거명할 수 없었던 시대여서 이같은 사실을 밝힐 수 없었다'며 '그동안 빨갱이
마누라라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발벗고 나서지 못했다'고 말했다. 백병원 설립자인 백인제 박사의 맏딸로 경기여고,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한
백여사는 미군정 시절부터 통역(영어) 실력을 인정 받아온 재원으로 숙명여고 교사를 지냈다. 슬하에 1남(미국 LA 거주)을 두고 있는 백여사는
자신의 회한의 인생회고기를 <以文會友>에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