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모음/감동 글,그림 모음

◆ 제주도와 60년 동고동락… 푸른 눈의 '돼지 神父님'◆

素彬여옥 2014. 3. 24. 09:09

 

제주 양돈업의 씨앗을 뿌리다… 아일랜드 신부 맥그린치

 

아일랜드 출신인 벽안(碧眼)의 가톨릭 선교사 패트릭 맥그린치 신부는
1954년 4월 제주 서쪽 한림읍에 내렸다.
그리고 오늘까지 60년을 머물렀다.
 
그는 제주 사람들에게 ‘그거 안 됩니다’라는 말을 수없이 들으면서
황무지를 개척해 돼지와 양을 기르고
제주도민 자립을 위한 일자리를 계속 만들어냈다.
 
그는 지난 4일 제주에서의 60년을 돌아보면서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이를 아는가.
 좋아함은 기분이지만 사랑하는 것은 초월과 의지더라”고 말했다.
 /사진작가 준초이

맥그린치 神父와 正具司

 

대한민국에서 신부로 사는 길은

크게 두 가지가 있어 보이는데

하나는 신부 本然의 賤職을 다하는 司祭들이고

다른 하나는 정부가 하는 일에 事事件件 是非를 걸고 트집을 잡아

길거리에까지 뛰쳐나와 蠻行을 저지르는 部類의 신부들이라네.

 

15일에 조선일보에 실린

제주도와 60년 同苦同樂 푸른 눈의 돼지 신부님이란 題下의

主人公인

아일랜드 출신의 Patcick James Mcglinchey(1928- ) 신부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더욱 가슴을 뭉클하게하는 感動 그 自體였다네!

 

아일랜드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일은

바다를 가운데두고 영국 서쪽에 위치해서

영국에 부대끼면서 산 세월이

韓半島가 中國과 日本에 부대끼며 산 세월과 참으로

恰似하다는 생각이라네. 이런 이유에서였는지는 몰라도

아일랜드는 북쪽 땅 일부를 영국에 띄어주어

Northern Ireland라는 이름으로 Great Britain

편입된 역사는 高句麗의 滿洲와 遼東半島가 중국에 편입된 

대한민국 역사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소설가 James Joyce의 고향이기도 한

Dublin Ireland의 首都인데

1941 12 7일 일본의 珍珠灣 奇襲攻擊을 배경으로 제작된

50년 대의 黑白映畵인

From Here to Eternity<지상에서 영원으로>에서

하루는 士兵들의 私物函을 檢閱하는데

한 兵士의 사물함에서 조이스의 대표작인 "Ulysses"가 나오니

檢閱官은 怒發大發하며 그 사병을 몹시 혼내주더군.

아일랜드에는 1850년 대 중반에

전 국민의 거의 1/3을 굶어 죽게하는 감자 *마름병이 창궐猖獗하였는데

이 때에 미국의 44대 대통령을 지낸 John F. Kennedy家門의 先代들도

배고픔을 덜어보려고 미국으로 이민을 갔었다네.

*감자 마름병이란 감자 줄기와 잎이 말라 시들어 죽는 병.

 

부자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가난을 잘 알 듯

逆境을 이겨내서 극복한 민족이 역경에 처한 나라를 잘 아는 법

苦難을 昇華시킨 아일랜드를 祖國으로 둔 신부님은

戰爭의 廢墟에서 배고픔과 굶주림에 허덕이던

제주도 翰林읍에 1954년에 첫 발을 내디디며, 시작한

제주도 생활이 어느 덧 60년을 맞으니

60년 동안 신부님이 이룩한

제주도민을 위한 제주도민에게 베푼 사랑과 봉사는

하늘에 닿을 만치 까마득하다네.

 

60년을 사시면서

碧眼<파란 눈>의 老신부님은

하신 일 하나 하나가 오로지

異國人을 위한 사랑과 奉仕였으며

처음으로 시작한 돼지 사육은

제주도에서 傳統的으로 在來式 化粧室에서 人糞분을 먹고 크는 

제주도 돼지에서 비롯되었다는데

전통적으로 기르는 돼지를 보고는 차마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여

飼料를 주며 기르는 돼지 사육으로 바뀌어졌다고하네.

 

엎어지고 자빠지며 겪은 試行錯誤가 어디 한 두 가지였겠으며,

엎어지고 자빠지며 겪은 시행착오가 어디 한 두 번이였겠는가?

 

어느 핸가 고등학교 친구들과 제주도를 여행하는데

旅行 案內員이 제주도 처녀들이 뭍으로 시집을 가기 전에

쌀 서 말을 먹고 가는 적이 거의 없다라고 했을만치

그 시절 제주도는 더더욱 먹거리가 태 부족했을 터에

돼지까지 사료로 기른다는 게 있을법한 일이 였겠는가.

 

신부님은 제주에만 꼬박 60년을 사셨지만

젊었을 때는 일이 너무 바빠서

漢拏山의 頂上인 白鹿潭에는 한 번도 오르지 못했는데

이제 시간의 여유가 좀 생기니 너무 늙어서 오르지 못하신다고하네!

 

國益을 위하고 國歌安保를 위해

한림읍의 이웃인 강정마을에는 오늘도

海軍基地 建設工事가 한창이지만, 이 건설현장에는 지금도 

正義를 具顯한다는 美名과 僞善을 앞세운

정구사<정의구현사제단>을 비롯한 좌파들은 한 마음 한 뜻으로

온갖 방법을 죄다 동원하여 공사를 방해하는데

이런 工事妨害로 늘어나는 工事費는 고스란히 국민 몫으로 돌아간다네!

 

더구나

저들은 25일에 취임 일 주 년을 맞은 朴槿惠 大統領을

부정선거로 당선되었다며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있는대로 높이는데

극소수는 박수를 칠지 몰라도

절대 다수는 이런 짓거리에 진저리를 친다네!

이런 沒常識하고 不道德한 해서는 안될 妄動에는

정치권조차 禁忌時하는 不問律인데

하물며 自稱 司祭들이란 사람들이 앞장서서야 되겠는가?

 

옛 일에 埋沒되어

오늘이 변하는 내일을 보기를 두려워하지 마시게!

인간이란

어제를 敎訓삼아 오늘을 살며 내일을 준비하는 동물이라네!

 

부산에서 이어도까지는 해군함정으로 대략 24시간이 걸리지만

제주도에서 이어도까지는 해군함정으로 대략 8시간이 걸리고

중국의 浙江省 닝보<寧波>에서 이어도까지는 대략 14시간이 걸린다는데

이어도에 문제가 일어났을 경우

부산에서 출발하는 게 이익이겠는가? 아니면

제주도에서 출발하는 게 이익이겠는가?

더하여

제주도는 대한민국의 南方航路의 前進基地며 生命線으로

原油輸入의 通路며, 船舶輸出入貨物의 90% 이상이 이용하는

唯一한 海上 高速道路인데

이런 해상 고속도로를 무방비상태로 내버려 두어야 하겠는가?

 

중국의 해군력은 몇 년 전 까지만해도 보잘 것 없었으나

G2로 올라선 경제력에 힘입어

航空母艦을 자체 제작할 수준에 이를 정도로

刮目할만한 성장을 거듭한다는데

이런 중국의 해군력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없는 것이 우리의 해군력인데

이런 해군력을 補完할 내 나라 땅덩어리를 國家安保를 위해 활용하자는 데

무엇이 그렇게 잘못되었다는가?

 

언젠가

가톨릭 신자에게

왜 로마교황청은 이런 못된 짓거리를 즐기는 사제들을

敎會에서 追放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교회법으로 어찌저찌해서 할 수 없다나 어쩐다나

특수한 사정을 감안하다하더라도

敎會法은 人類 普遍的 價値인 常識을 뛰어넘는단 말인가? 

 

정구사 사제 여러분!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권위주의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며

産業化를 바탕으로 民主化를 꽃피워

세계에서 유일하게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탈바꿈한  

민주와 자유가 철철넘쳐 흐르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時代의 變化에 順應하는 正義를 위한 具顯을 具現하는 게

합당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신자들이 사제들을 걱정하는 교회가 더 이상 되지 않도록 말이네.

 

아니면

지난 2013년 1월 21 여기에 올렸던 글

울지마, Tonj (이태석 신부 이야기)에서 처럼

구원과 도움을 필요로하는 세계 곳곳에 엄청나게 널려있는

방황하는 양들을 돌보는 일에

해군기지 건설을 방해하는 마음가짐과 熱情으로 임해서

태석 신부가 남수단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그렇게 殉名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1954 4월에 스물네 살의 파란 눈의 젊은이가

제주도 한림읍에 이르니

고향이 아일랜드인 맥그린치 宣敎師였다네!

주님이 인도하는대로 오긴 왔어도

낯 설고 물 설은 곳에 정을 주고 살기가 어디 그리 쉬웠겠는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는 이런저런 일들이 숱하게 많고 많았겠지만

제주도의 똥돼지는 이 젊은 異邦人의 눈에는 참으로 낯설고 또 낯설어

이의 飼育方法 改良에 優先 뛰어들기로 했다네!

똥돼지는 사람들의 똥 이외에는 이렇다할 먹거리를 줄 형편이 못되어

그렇게 기를 수 밖에 없었지만 말이네!

 

당시 제주도에서

이 똥돼지는 慶弔事나 急錢이 필요할 때에 要緊하게 쓰이는

財産이기도했다네!

 

파란 눈의 신부님은

어느 해에 인천에 와서 *끼새 밴 암퇘지를 사서

버스에 같이 타고, 배를 갈아타고 한림에 와서

*끼새 열두 마리를 낳자

아이들에게는 나중에 크면 갚는 조건으로 *끼새 두 마리를

무상으로 分讓하고

미국에서 無償으로 援助한 옥수수를 빻아

보릿겨와 섞어 配合飼料를 만들어 養豚農家에 주었더니

돼지가 크지 않아 알아보니 배합사료에 섞은 옥수수를 따로

골라 술공장에 팔고 보릿겨로 만 기르니

돼지가 크지 않더라네.

그 시절은, 그런 형편이였었다네!

 *끼새는 꺼꾸로 읽으십시요. 이 홈 페이지는 청교도?가

작성을 해서 우리말로

saeggi 라고 적으면  올릴 수가 없답니다. 양해바랍니다.

 

지금은 너무나 널리 잘 알려진 제주도 이시돌 목장

아일랜드의 성 콜롬반 외방선교회의 도움과

선진국의 선교회단체와, 가끔은 부모님의 도움으로

물을 자체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해발 200-600m의 제주도의 中山間의 不毛地 땅 165,000m2를 사서

우선 開墾한 결과로 소, 돼지, , , 등을 기를뿐만아니라

養老院, 聖堂, 병원, 어린이 집, 修女院, 호스피스병원

등이 들어섰다고하네.

 

한 달에 5-6%의 이자를 감당해야하는 제주사람들을 보며

신부님은 제주도에서는 처음으로 翰林信用協同組合을 만들었으며

제주대 행정학과의 양영철 교수의 지적처럼

제주도에는 이를 본떠

28개의 신협이 생겨나서 零細民들이

高利貸金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가난 때문에 제주도를 떠나는 여성들을 위해서는

아일랜드의 가족과 친지들의 도움으로

35마리를 사서 翰林手織을 설립하여

한 때는 1300여 명의 여성들이 일할만치 번창하기도 했는데 

처음에는 실의 굵기가 일정하지 않아

아일랜드의 선교회소속 織造專門 修女 두 명을 초청해서 가르쳤더니

물건이 없어서 못 팔만큼 인기가 爆發했었고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는 婚需감으로 인기 필수품이였다고.

 

양승문(71) 전 제주도의원은

신부님이 돼지를 나누어 준 일을 계기로

한림읍에 養豚業이 盛業하게 되었고

신부삼(73) 씨는 그때

돼지를 잘 기르면 우리도 10년 후에는

외국인처럼 자가용을 몰고 다닐 수 있다라고 했던 신부님의 거짓말?

현실이 되어, 본인은 4500頭의 돼지를 기르며

기아자동차의 소렌토를 몰고 나니는 巨大 農場主가 되었다고.

 

맥그린치 신부님이 돼지신부로 불리우는 배경에는

이런 이야기가 숨어 있다고하네!

 

60년 동안 異國땅에서 이국인들을 위해

自助, 自立, 協同을 가르치고 이끌어주신

한국인 보다 한국민을 더 사랑하시는

파란 눈의 맥그린치 신부님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당신이 있어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하답니다!

 

>

제주 양돈업의 씨앗을 뿌리다… 아일랜드 신부 맥그린치

 

①1960년대 제주 한림읍 성당 근처에서 돼지와 놀고 있는 어린이.
②젊은 맥그린치 신부(가운데)가 미국 휴스턴 텍사스에 모금하러 갔을 때 모습.
뒤편에 ‘한국의 돼지 신부’라는 문구가 걸려 있다.
 ③1960년대 말 이시돌 농촌개발협회가 기른 돼지를 홍콩으로 수출하는 모습.
 ④맥그린치 신부가 양털로 짠 옷을 만들던 ‘한림수직’ 직원들에게
 편물 짜는 법을 지도하는 모습.
 ‘제주 젊은이들이 일자리 때문에 고향을 떠나는 일이 없게 하자’는
목표로 세운 이 회사엔 한때 1300여명이 근무했다.
/임피제(맥그린치) 신부 기념사업회, 제주도청 제공

2014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