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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주민등록증/ 행복 바이러스 수록글 중에서

素彬여옥 2015. 5. 22. 10:59

 


    할아버지의 주민등록증 시아버님께서 돌아가신지 몇 달 안 되었을 때였습니다 아들인 의묵이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자기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전에는 할아버지와 같이 쓰던 방이었지요 한참 후 나온 아들의 눈이 붉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니? 왜 그러니?" 조심스레 말을 걸자 아들은 오늘 담임선생님과 이런저런 면담을 하는 중간에 "참 너희 할아버지 돌아가셨지."하시면서 환경 조사서 가족란의 할아버지 이름을 두 줄로 죽 긋더랍니다 순간 가슴 한쪽이 찌르듯이 저리고 아팠다고... '이제는 정말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구나'라는 것을 실감하면서 눈물을 참느라고 힘들었다면서 눈가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시어머님께서 의묵이가 태어나자마자 돌아가시면서 홀로 되신 시아버님께서 의묵이와 같이 방을 쓰기 시작한 것은 아들이 5살 때부터 입니다 그때부터 아들과 할아버지는 각별한 정을 쌓으면서 14년을 살았습니다 아들이 어릴 적에는 걷어 차내는 이불을 할아버지가 주무시다가 덮어주셨고 세월이 흘러서는 아들이 대신 할아버지의 이불을 덮어 주면서 지내왔습니다 다투기도 했습니다 컴퓨터 게임을 많이 좋아하는 손자녀석의 공부가 걱정이 돼 직장 다녀 오는 저나 남편에게 고자질을 해서 아들을 혼나게 만드십니다 아들은 약이 올라 할아버지를 등 뒤에서 번쩍 안아 들어올리면서 꼼짝 못하게 하고는 "제 편이 돼주셔야죠! 할아버지가 고자질 하시면 어떻게 해요 에잇, 나 할아버지랑 안 잘 거야." 평소에는 엄한 할아버지도 "아이고, 이놈아 어지럽다" 하시면서도 손자의 장난에 껄껄 웃으시며 고자질한 미안함을 푸십니다 아들이 점점 커서 사춘기가 되면서 홀로 되신 할아버지와 안 자겠다고 하면 어떡하나 했는데 우려일 뿐이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잠이 안 오시면 불을 켜고 라디오를 틀어놓아서 아들이 잠을 설칩니다 그 다음날 할아버지때문에 잠 못 잤다고 투덜거리는 아들을 보며 한참 자랄 아이 푹 자지 못해 안쓰러운 마음에 "그러면 이제 네 방에서 자려므나."하면 아들은 단호히 "어떻게 그렇게 해요? 할아버지 외롭게...." 말한 내가 무색할 정도로 아들의 할아버지에 대한 정이 각별했습니다 작년 봄에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하셨을 때 간호사에게 부탁하시기 쑥스러우신지 손자에게 "네가 할아버지 것을 대신 치워 줄래?"하셨을 때 아들은 쾌히 승낙하면서 싫은 내색 한번 안 하고 치우고 닦아드렸습니다 아버님이 입원하신지 하루만에 돌아가셨을 때 어느 누구보다 섧게 울며 슬퍼한 사람은 아들이었습니다 아들은 울면서 "할아버지,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시면 어떻게 해요 너무 하셨어요." 그러더니 생각나는 게 있는지 할아버지 물건을 뒤지더니 오래된 고장난 시계와 주민등록증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는 책상 앞 눈높이에 맞춰 붙여 놓았습니다 지금은 고3입니다 공부하다가 잘 안 될 때면 할아버지 주민등록증을 보며 대화를 나눕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버님과 아들이 같은 방에서 자면서 느껴진 따스한 숨결이 지금까지도 느껴지는 듯 했습니다 아버님은 정말 행복한 분이셨습니다 *행복 바이러스 수록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