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지밀은 정재원 회장이 의사로서의 소명의식을 바탕으로 30년간의 연구활동과 경험을 통해 콩의 영양적 가치를 발견하고 콩으로 만든 식품개발에 시간과 열성을 바쳐 탄생시킨 건강 식품입니다. 소년은 급사(給仕)였다. 모자가게 점원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용어가 어려워 옥편을 뒤져가면서 독학을 하다 보니 ‘나도 한 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갓난아기 환자가 병원에 온 것이었다. 아이를 업고 꼬박 하루 걸려 왔다고 했어요. 설사만 하다가 무력하게 죽어갔다. ‘원인 모를 병으로 죽어가는
당시 43세였던 그는 의사 초년병 시절에 접했던, 소화불량에 걸린 신생아들을 고칠 방법을 찾기 위해 의학 선진국으로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의사로서의 안정된 삶도 보장돼 있었다. 의사로서의 사명감을 떨칠 수 없었다. 곧장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UC메디컬센터로 건너가 미국에도 비슷한 증상이 있나 샅샅이 뒤져봤지요.” 소개된 대목이었다.
유당불내증은 우유나 모유의 유당을 분해하는 효소가 부족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이다. 이 증상을 가진 신생아는 모유나 우유를 소화하지 못해 영양실조로 죽고 만다.
아내와 함께 우유 대용식 개발에 매달렸다. 그는 콩국의 영양이 충분한지 분석했다. 콩국을 먹인 쥐에게 유당불내증이 나타나는지 등을 실험했다. “정소아과 원장이 미국에 다녀오더니 이상해졌다” 고 수군댔다.
이것을 설사병에 걸린 신생아들에게 줬다. 들어 있지만 유당은 들어 있지 않다. “인생에서 최고로 기뻤던 순간”이었다. ‘정소아과가 용하다’는 입소문이 났다. 환자가 몰리자 두유 수요가 달렸다. 두유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정식품’이란 회사를 세워 두유 대량 생산에 나섰다. 식물(vegetable)과 우유(milk)의 영문명을 합쳐 ‘베지밀’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당시 56세였던 그는 다시 한번 도전의 길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신생아들을 살리려면 창업 말고는 다른 길이 없었어요.” 지금도 두유업계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다.
정식품의 창업이념으로 정한 그는 “사회적 역할에 대한 충분한 고민과 성찰이 있어야 기업이 무한 경쟁의 시대에서 진정한 성장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올 1월 ‘백수연(白壽宴)’을 치렀다. 백수연을 한자로 쓸 때는 ‘일백 백(百)’에서 ‘한 일(一)’을 뺀 ‘흰 백(白)자’를 쓴다. 99세 생일을 기념하는 자리다.
아내인 고(故) 김금엽 여사와 사이가 각별했다. 의사생활을 하던 시절 아내를 만났다. 성인이 된 뒤 가톨릭 계열인 성모병원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중매가 여러 건 들어왔지만 그는 모두 거절했다. ‘박꽃처럼 예뻤던’ 아내 때문이었다.
그는 아내에게 유학을 권했다. 아내가 일본에서 간호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해인 1942년 두 사람은 부부가 됐다.
“선 봐서 결혼했더라면 처갓집 눈치가 보여 40대에 유학도, 50대에 창업도 선뜻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식품의 ‘각자대표’ (1973∼1987년)를 맡아 사업에서도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줬다. 턱시도를 차려 입고 조문객을 맞이했다. 결혼식 때 입었던 예복이었다.
턱시도와 면사포를 간직했다.
아내의 관(棺) 속에 흰색 면사포를 넣어줬다.
예(禮)를 다해 그렇게 작별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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