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처럼 무서운 건 없다
결혼을 결심하고
나에게 주례를 부탁하는
젊은 남녀에게
“앞으로 50년 동안
꾸준하게 사랑할 수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물론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예”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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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50년이라는
긴 세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변함없이
사랑하며 건강하게
사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중국 송대의 대학자
주희가 어느 해의
가을을 맞아 이렇게
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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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 늙기 쉽고
학문 대성하기
어려우니 일분일초도
가볍게 여기지 말라
연못가의 봄풀은
아직도 꿈속인데
계단 앞 오동나무
잎에는 가을바람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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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계곡을 흐르는 물 같고
시위를 떠난 화살같이
빨리 달려갑니다.
세월 앞에 힘 센
사람이 누구입니까?
70년 전에 해방을
맞았습니다.
그 때 나이가
열여덟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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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전에 청운의
꿈을 안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50년 전에는
연세대학교의
교무처장 이었습니다.
50년 전에는 어머님,
아버님이 다 살아계셨고
나의 누님도
건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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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에는 친구
이근섭과 저녁 먹고
나서는 함께 꼭
산책하였고, 제자
최영순은 건강하고
공부 잘 하는
대학생이었는데,
나만 두고 다들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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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을 밟으며”
돌아오지 않는 그들을
나는 이 가을에
그리워합니다.
산다는 것이 몹시
서글프게 느껴집니다.
찰스 램(Charles Lamb)과
함께 이렇게 읊조립니다.
“All, all are gone,
old familiar fa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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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
살아있지만 내일은
이곳을 떠날 겁니다.
그래서 나는 내 가까이
있는 소수의 사람들을
오늘 최선을 다해
사랑하리라
마음먹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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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이렇게
빠르다는 것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정말 무서운 건
세월입니다.
- 김동길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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