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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전혜린 에세이를 모닥불 배경음악으로-

素彬여옥 2011. 1. 16. 10:14

       

      일정 나이를 넘으면 인생이란

      무언가를 잃어가는 과정의 연속에 지나지 않아요.

      당신의 소중한 것들이 빗살 빠지듯이

      하나하나 당신 손에서 새어나갑니다.

      그리고 그 대신 손에 들어오는 건

      하잘것없는 모조품뿐이지요.

      육체적인 능력, 희망이며 꿈이며

      이상, 확신이며 의미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

      그런 것이 예고 없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번 그렇게 잃어버리면

      당신은 다시는 그것들을 되찾을 수 없어요.

      대신해 줄 것을 찾아내기도 여의치 않습니다...


      1Q84 / 무라카미 하루키



      금빛 햇빛이 가득 쪼이는 건조하고

      맑디 맑은 한국의 가을 속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

      가끔 나에게 미칠 듯한 환희의 느낌을 준다.

      산다는 일,

      호흡하고 말하고 미소할 수 있다는 일, 귀중한 일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닌가.

      지금 나는 아주 작은 것으로 만족한다.

      한 권의 책이 맘에 들 때

      또 내 맘에 드는 음악이 들려올 때,

      또 마당에 핀 늦장미의 복잡하고도

      엷은 색깔과 향기에 매혹될 때,

      또 비가 조금씩 오는 거리를 혼자서 걸었을 때,

      나는 완전히 행복하다.

      맛있는 음식, 진한 커피, 향기로운 포도주.

      생각해 보면 나를 기쁘게 해주는 것들이 너무 많다.

      햇빛이 금빛으로 사치스럽게

      그러나 숭고하게 쏟아지는 길을 걷는다는 일,

      살고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전혜린에세이 /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늘 행복 했으면 좋겠습니다  

모닥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