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상하게 생긴 사람이 방송에 나와서
서울대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떠든다.
니가 뭔 대? 서울대가 아무 것도 아니라카는데?
서울대에 피멍이 든 놈이 얼마나 많은데 . .
97년2월 학교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찮다.
근래 우리학교가 선생님들 분위기는 좋은데, 학교 성적이 저조하다나 . ..
한 번 씩 전화로 학교 입시 성적을 둘러 물어올 때가 있다.
하기사, 지놈들이 S.K.Y대학과는 전혀 상관없는 늠도 학교를 이야기할 때,
“서울대 작년에 몇 명 갔는데?” 라고 물으면서
학교를 저울질한다.
배아리가 확 뒤틀리면서도 우예, 대답을 아니 할 수 없다.
작년에는 없었는데 그 전 해 나 지난 5년 간은 어떠고 저쩌고 . . .
“아~, 예, 예, 됐습니다.”
“학교 별 볼 일 없구만 . . ..” 하는 소리가 뒤통수를 친다.
정말 자존심과 교사로서의 사명감이고 뭐고,
확 때려 쳐 버리고 싶은 맘이 굴뚝이었다.
당시, 그저 과학과 중견으로 학교의 기계나 방송 일을 주로 맡으며
중요 보직은 요행히도 잘 피해 다녔다.
하루는 동료 선배님 어른 돌아가신 상가에 가서,
학교 성적이야기가 나와 한 잔 들이키다가
학교 추락된 이미지에 자존심이 상해, 꺼이꺼이 울어버린 적이 있었다.
며칠 후 신학기 보직을 발표하는데, 아닌 밤에 홍두깨도 분수가 있지,
그 동안 보직이라고는 하나도 안 맡아 본 놈한테
사전 조율 하나 없이 밤 새 작당하여,
입시의 최 첨병 3학년 부장이 떨어져 버렸다.
그래도 3학년 부장은 1, 2학년 부장을 몇 번 거쳐, 걸러 하는 보직인데.
하도 황당한 깜짝 쇼 같은 발표에 도저히 인정할 수 없노라는 항변과 함께
그 엄숙한 교무회의 자리를 말없이 일어나 울림통 좋은 교무실 문짝을
구두발로 쌔리 차고 나가 버렸다.
지금도 그 때의 그 무례한 행동에 때문에 죽일 놈이라는 소리를 듣지만
똑똑하고 유능한 후배 하나를 기획으로 두고,
그저 잘 생긴 얼굴로 얼굴 마담이나 하면서 어려운 시국들을 해쳐나갔다.
그리고 지옥과 같았던 팽팽한 긴장의 1년을 마무리 했다.
12월 크리스마스 지난 어느 날 서울대학교 발표 날,
인터넷을 통해 합격자를 검색하는데 우째든동 인해 전술이라고
10명 넘는 학생들을 갖다 부어 놓고 한 명, 한 명 합격, 불합격
소식의 희비가 엇갈릴 때 마다, 만세와 한 숨이 교차하는 순간의 결과는
서울대 7명, 추가 1명, 이건 비수성구의 일반학교에서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그날 오후 1시부터 마신 술은 다음 날 새벽까지 연결되었고,
유능한 후배들의 등을 타고 이룬 나의 영문도 모르는 업적이지만
학교의 역사에 새겨지는 날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몇 년 간은 우리 학교의 빛나는 입시성적이 시작되는 해가 되기도 했다.
교감한테 신신 당부했다.
이제 제가 할 일을 다 했으니 핀치힛타의 역할에서 내려 달라고 하니
묘한 웃음을 웃으시면서 그래 수고했다고 좀 있다가 보잔다.
기분이 찝찌리 하다.
거의 매일 축하 술판이 벌어지고 있는 어느 날
교감이 좀 보잔다.
그래 수고 많이 했는데 여새를 몰아
올해는 학생부장을 좀 맡아 주었으면 좋겠다는 청천벽력 같은 부탁이다.
사실 저는 그저 조용히 평교사로 평생을 지내면서 열심히 장난치고
그저 좋은 선생으로 사는 게 가장 체질에 맞는 것이라고 주문처럼 외고 있었다.
학생부장 이 건 학교 제도권 속에 들어가서 권력의 대열에 줄을 서는 것이리라.
이 건 아닌데, 내가 왜?
아무리 발버둥을 해도 인사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다.
사표를 쓰지 않는 이상은 . . .
그렇게 또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유능한 후배를 학생기획의 적토마로 삼아 하루 이틀 조마조마 흘러가고 있었다.
학교의 농땡이들과는 한 친분을 하는지라
학생들 지도에는 관심이 있었다.
입학식 다음 날,
벌써 사건이 터졌다. 당시 중학교에서 놀던 일진들에 활동에 언론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시기,
첩보에 의하면 인근 ㅅ 여중과 ㅇ 중학교의 일진이 싸그리 우리 학교로
몰렸다는 정보와 함께 긴장을 하고 있는데,
여고생들이 담장 넘어 패거리 싸움을 하다가 내 손에 걸려들었다.
모두 11명, 오냐, 우리 학교가 10반이니까 너희들은 모두 11반이다.
그 때 부터 요놈들 특별 관리에 들어갔다.
역시 문제 학생들 가정에는 또한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거기서 제일 센 놈 잡아 내가 11반 실장이다. 라고 임명하고
주말을 이용해 국제재활원과 들꽃마을들을 다니면서
나도 이해 못 할 말들을 동원해서 교육을 했다.
근데 정말 그 자슥들 머리가 참 좋다.
나도 내가 했던 말, 잘 이해를 못 하겠는데,
그저 모두 다 이해하겠다고 고개를 끄덕거려 준다.
1학년 캠핑에서도 아슬 아슬 잘 넘어갔다.
담배 피는 놈까지 무사히 잘 잘 넘어갔다.
결국은 방학을 지내고, 한 놈이 학교를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비춘다.
억지로 억지로 설득해서 겨우 새 학기를 맞이하지만
당근과 채찍, 말이 쉽지 보편적 잣대를 가지고
학생들을 지도해야 하는 입장에서 참으로 어렵다.
쉽게 이야기하면 각양각색의 환경과 품성을 가진 학생들을
각양각색으로 지도해야하는데,
규범이라는 보편성은 이 사실과 너무 선명하게 상충이 된다.
방학이 지나고 2학기 시작과 함께 농구 시즌이 돌아왔다.
우리 학교의 교기가 농구였다.
우수한 선수들이 많이 나오기도 하고
학교 교기로서 학교의 자랑이기도 했지만
관리자 입장에서는 계륵이다.
교기인 운동부라는 게 학교 임의로 운영이 어렵다가 없앨 수도
그렇다고 넉넉히 보조도 없으면서 운영하기도 정말 어려운 게 학교 운동부이다.
우짜다가 그것도 학생부 소속의 운동부이다 보니
본이 아니게 감독 코치와 대면 시간이 많다.
항상 듣는 소리,
학교를 위해 우리는 이렇게 쌔빠지게 땀 흘리는데
도대체 학교에서는 무엇을 해 주느냐이다.
학교에서는, 학교대로, 체육발전기금 너희들이 다 쓰면서
어디 특별히 보조가 있는 것도 아닌데 뭐가 그리 불만이냐는 것이다.
그 사이에 학생부장이야 그저 만만한 게 술상무이다.
9월초 추계고교학생농구대회 출전,
농구부 감독, 코치 부원들을 교장 선생님께 인사를 시킨다.
선전을 부탁하면서 항상 하는 소리
“우승만 하면 내 가만히 안 있겠다.”라는 소리다.
우승 가능성이 희박하니까 부담 없이 하는 소리다.
2학기를 시작하고 대구시교육청 주관으로 학생간부수련회가
팔공산 청소년 수련원에서 있었다.
3학년 빼고 1, 2학년 반장 부반장 모두 40여 명이 들어갔다.
교실에서 수업시작과 마침 인사도
반장 부반장이 빠진 썰렁한 인사 분위기다.
그 날이 금요일이었나?
7교시 3학년 수업을 하고 있는데, 교장실로 급히 호출이다.
수업을 하다 말고 뛰어 내려갔다.
교장 선생님 왈 “이 부장 농구가 결승 올라 가버렸다. 우짜마 좋겠노?
숙명여고랑 결승인데, 서울서는 당연 학생들 동원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내일 아침 새벽에 한 학년 동원해서 서울 가능하겠나?
버스도 열두 대는 되어야 하는데 주말이라 예약도 힘들 텐데,
그리고 각 반의 간부들이 모두 수련을 들어 가버려서 통제가 되겠나?”
하는 사이 또 따르릉 전화 가 바리 바리 온다. 양감독이다.
“교장 선생님, 숙명여고 학생들 전교생 45학급 학생 모두 동원 된다 카는데,
그 자슥들 소리 한 번 질렀뿌마 우리는 그냥 깨갱이라요.
우리는 대구서 올라와야하니까 한 학년 정도만이라도 동원시켜 주이소.
응원만 있으면 이 번이 우승 절호의 찬스입니다. 교장 선생님만 믿습니다!”
우승 후의 뒷감당이 갑자기 목 뒷덜미를 뻣뻣하게 만든다.
속으로 ‘준결승에서 끝나지 뭘 또 올라가서 이렇게 귀찮게 해? 아이 쉬!‘
1, 2학년 부장과 각 부장들 긴급회의가 열렸다.
결론은 ‘한 학년을 동원하는데 1, 2학년 추첨을 해서 결정하기로 하고
추첨을 했는데 1학년 당첨이었다.
2학년 부장은 은근히 안도의 한 숨을 쉰다.
지금 부터는 모두가 내 일이다.
버스 대절은? 응원은? 학생 통제는? 학생들 점심과 저녁은?
500명 가까운 학생들을 버스로 운반한다는 건 생각보다 문제가 복잡하다.
어렵게 올라가서 게임에 지면 이 후의 후유증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가장 문제는 반장 부반장들이 간부수련회로 한 명도 없는
오합지졸의 졸개들을 데리고
무슨 응원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것도 하루 밤 사이 내일 새벽 지각없이 모이는 일만해도 숨이 턱에 멈춘다.
온갖 복잡한 머리가 정리될 틈도 없이 마침 수업 종소리가 울렸다.
방송실 마이크를 잡았다.
8교시 수업 자르고 “내일 아침 6시까지 학교에 교복 차림에 집합!”
방송과 함께 터져 나온 함성에 학교 건물이 내려앉을 뻔 했다.
그 함성 소리가 내 귀에는 서울 숙명여고 학생들 전교생이
강당에서 응원 연습 소리로 여기까지 들리는 듯하다.
겨우 챙길 수 있는 게, 학교 플랫카드 몇 개와 방송실의 부실한 휴대용 앰프
서울까지 올라가야 하는 판에 장비의 호 불호는 아예 엄두도 못 낸다.
멍한 상태에서 교무실에 앉아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하는지 막막했다.
일단 행정실에서 관광버스 12대는 예약했다는 전갈이 왔다.
그럼 점심은? 500명이 먹을 수 있는 점심은? 방법이 없다.
재경동창회장을 연락해 무조건 해결해 달라고 하고
믿는다고 짧게 전화를 끊어 버렸다.
담임들이 바리 바리 전화가 온다. 이건는 우야까요? 저거는 우야까요?
야, 나한테 묻지 말고 알아서 좀 해요! 괜히 짜증이 난다.
버스도, 점심도 빵과 우유로, 학부형들의 협조도, 하나 하나 해결되어 갔다.
아무리 해도 해결되지 않는 이 것,
하루 밤 사이에 무슨 계획을 어떻게 해서
반장 부반장 하나 없는 이 오합지졸의 졸병들을 데리고
응원을 해야 할지 교장실에 갔다.
답답은 놈은 내 밖에 없는가?
교장도 퇴근해버리고 빈 교무실에서 멍하니 있다가
휴대용 앰프랑 마이크, 그런데 장충체육관에 이 조그마한 휴대용 앰프가
통하기나 할까?
장충체육관이라는 데를 TV화면에서나 봤지 어디 감이 잡히지도 않는다.
갑자기 뭔가 하나가 생각이 났다.
그렇다 일단 사물놀이를 동원시키자 . ..
사물놀이반 담당 이상길 선생님께 전화를 해서
내일 아침 일찍 장비 좀 챙기라고 부탁을 했다.
잠시 후에 전화가 다시 왔는데 사물놀이반 반장이나 부반장
모두 팔공산 간부수련 들어가 버렸는데 어떻하냐는 것이다.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니 있는 대로 그냥 끌어 모아 달라고 하고,
또 멍청히 있는데 번쩍! 그렇다.
학생부장인 내가 특별 관리하는 11반 놈들의 실장
김경희(가명, 퍼라이버시 이해 부탁) 전화를 했다.
엄마가 대나무 깃대를 집에 꽂아 놓고 뭐를 하는데 짐작만 하시라
주먹도 세고, 한 농땡이 하는 놈이다.
전화를 했다.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
“여보시요?”
“아, 예! 저는 효성여고 학생 부장 이동균 이라고 합니다.
입학하고 얼마 안 되어 한 번 뵈었지요?”
“아 . .. 예! 근데 그 가시나가 또 사고를 쳤습니까?”
“아 . . . . 아니요. 그냥 제가 뭐 좀 부탁 할라꼬요.”
“아니 선생님이 뭔 일이 있어 가한테 부탁 할끼 있습니까?
선생님 그러지 말고 내가 가는 꼭 졸업을 시켜야 되거등요.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이소!”
“아 . . . 진짜 아닙니다. 요즈음 경희(가명)가 전에 보다 많이 나아졌습니다.
졸업,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내일 행사가 하나 있는데 부탁 좀 할라꼬요.“
“솅님, 진짜지예?”
“예! 예! 진짭니다.”
“ 경희야, 선생님 전화 왔다! 전화 받아라.
가시나야, 이번에 진짜 사고친 거 아니제?”
“엄마, 뭐라카노 인자 내 잘 하는 거 알잖아?”
“여보시오? 선생님, 우짠 일인데요?”
“오늘 수업 마치고 바로 왔는데요?”
“야 임마, 내가 뭐라 그러더나? 우째 나가 전화하면 전부 사고로만 연결시키나? 우리 그래 살지 말자! 응?”
“선생님이 학생부장이니까 그렇지요. 선생님 그래도 내가 선생님 제일 좋아하는 거 알지요?”
“야 야, 됐다. 이 가시나야, 거두절미하고 본론 이야기할께.
니 한 번씩 시내 놀러 나갈 때 쓰고 다니는 가발 있제?
그거 한 두어 개만 내일 챙겨오고 루즈랑 라이방 좀 챙겨오나!
있잖아 내 다 안다.”
“아니 선생님 저를 우예 보고 아직 그런 줄 아십니까?
저 인자 그 세계 손 싹 씻었는거 아시잖아요?”
“야 야 내 알지 그래도 내일 서울 알잖아?
오직 답잡으마 니 한테 이카겠나? 암 소리 하지 말고, 알았제? 끊는다.”
“솀예, 솀예,솀예!” “야 야 됐데이! 끊어라!”
우째든동 그 놈을 믿어보는 수밖에 없다.
9시가 넘어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이 안 보인다.
하루 밤 새에 무슨 . . .
가장 걱정은 사실 숙명여고가 당시 우승 후보로는
우리 학교와는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객관적인 평가다.
그래 억지로 올라갔다고 치자.
만약에 게임에 지고, 500명 가까운 학생들의 식사를 빵 몇 쪽과 우유로 때우고,
허탈감에 빠져 내려오는 학생들의 패배감은 또 무엇으로 보상할 것인가?
모든 게 내 어깨에 책임 지워져 있고
장이나 감은 지금 어디서 술잔이나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우~~쉬!
사실 응원이란 어디서 하는 거만 봤지 실제 해 보지는 않았으니
이게 열 댓 명 정도 데리고 노는 것도 아니고 . .
조직이 필요하고 대 중 소의 콘티와 치밀한 계획이 없으면
개판은 뻐~~ㄴ 하다. 그래도 뭔 자료가 있는가, 찾아 봤지만
요즈음처럼 인터넷에 ‘응원’ 두드리면 온갖 자료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어둠이 걷히기도 전에 도착한 학교에
조급증 교장이 벌써 와서 이거는 어떻고 저거는 어떠냐?
그러면 대안이 무엇이냐? 차라리 이게 낳을 뻔 했는데 어쩌구 저쩌구 . .
문디 자슥, 그라마 지가 인솔할 끼지 있어야 할 때는 안 뵈디마는
아침에 닦달해 샀고 #랄 이야! 건성으로 예, 예, 아 예! 잘 알았습니다.
다 왔는데 버스 한 대가 안 온다.
지각한 놈 족치고 너 한 넘 때문에 이게 뭐냐고 야단치고 나니
버스를 갑자기 조달하다보니 연락이 꼬인 것이다.
허급지급 달려오는 버스에 욕도 못하고 승차, 일단 출발!
내 속 타는 마음은 모리고 아 자슥들은
어디 수학여행이나 떠나는 모양 들떠서 난리다.
그렇다고 같이 의논할 선생들도 없다.
모두들 부장님만 믿는다는 둥 씰 데 없는 드링크나 안기고 앉았다.
다음 편 계~~~속~~! 기대하시라!
언제 다시 쓸지 모르지만
다음편 맛보기 사진
'좋은글 모음 > 감동 글,그림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제자리가 아니면 잡초가 된다 (0) | 2011.12.01 |
|---|---|
| [스크랩] “우승보다 값진 준우승” 종결편 (0) | 2011.11.30 |
| '나꼼수’란 무엇인가? (0) | 2011.11.30 |
| '감동적인 大韓人論' (0) | 2011.11.30 |
| 退溪先生 "며느리" 改嫁하다. (0) | 2011.1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