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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더 이상 1등을 하지 마라[뉴욕 중앙일보]

素彬여옥 2013. 1. 21. 23:28

[이 아침에] 더 이상 1등을 하지 마라

[뉴욕 중앙일보]

얼마 전 텔레비전을 보다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1등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한 소개를 보고 시선이 멈췄다. 다양한 경제, 기술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그 날의 소개는 주로 사회적인 것에 초점이 있었다.

원래부터 알고 있는 것도 있었지만, 참담한 내용들이 많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한숨부터 나오는 '1등'이 줄줄이 소개되고 있었다. 물론 세계 1위라고 소개된 것들 중에는 OECD 국가 중 1위인 것도 있어서 저개발 국가와 경쟁이 안 되는 것도 있었음은 참고로 해야 할 것 같다.

가장 아픈 1등을 보자면 이혼율과 자살률이다. 삶의 근간은 가정이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이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가정도 있을 것이다. 허나 이혼율이 1등이라는 이야기는 사회분위기가 그렇다는 것이다.

쉽게 결혼하고 쉽게 이혼한다. 가정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옅어졌다. 아이들에게 부모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서 더 고민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혼율보다 심각한 것은 자살률이다. 목숨을 끊는 게 쉬워진 것이다. 인터넷에 자살 관련 사이트들이 있어서 자살의 방법을 논의하고 함께 모여서 자살을 시도한다. 참으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문명의 이기가 이렇게 엉뚱하게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연예인들의 자살이 또 다른 자살을 부르고 있다. 자살이 많아진다는 것은 희망이 없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살아야 할 이유가 없고, 살아서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없는 것이다. 답답함을 금할 수 없다.

고령화 속도도 우리나라가 1등이라고 한다. 그런데 노인의 자살률이 급증한다고 하니 노인의 답답함과 허망함이 느껴진다. 고령화에 따른 사회적 대책이 단순히 경제적인 것뿐 아니라 감정의 문제에도 있어야 함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예상했겠지만 인터넷 속도나 와이파이 보급률, 모바일 뱅킹도 세계 1위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빠른 것을 좋아하고, 변화를 좋아한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빠른 것에도 문제점은 있다.

여전히 노동시간이 가장 긴 나라가 한국이고, 여전히 도로 교통사고 사망률이 가장 높은 나라가 한국이다. 급하게 성장하려 하고, 빨리 해결하려는 마음들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좀더 쉬어 가면서 차분히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이 많아지기 바란다. 최근 '힐링'이 유행하고, 한옥에 살고 싶어 하고, 걷기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무엇보다도 문제가 되는 것은 '청소년 불행지수'가 세계 1위라는 것이다. 이것은 대학 진학률이 70%를 넘어서 1위인 것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누구나 대학을 가야 하는 구조에서 행복을 찾기가 어렵다.

적성에 맞지 않는 공부를 해야 하는 수많은 청소년은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일까? 청소년 흡연율도 한국이 1위이다. OECD 국가 중에서 담배 값도 제일 싸다고 하니 흡연율을 여러 측면에서 돕고 있는 듯하다.

초ㆍ중등학생의 수학ㆍ화학 성적이 세계 1위라는 결과가 그다지 기쁘지 않은 것은 불행지수가 1위라는 것이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미래가 불행하지 않게 도와야 한다.

위의 1위들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이혼율과 자살률이 꼴찌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들의 행복지수가 1등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단순히 우리나라뿐 아니라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가정이 소중해지고, 사는 것이 기쁘고, 아이들이 행복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부끄럽고 가슴 아픈 1등은 더 이상 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세상이 살 맛 나는 곳이 되기 바란다. 더 이상 1등을 하지 마라.

조현용 경희대 교수ㆍ한국어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