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쾌하고 거침없는 서술,
세대초월 사랑받은 국민작가
2011/1/24 <조선일보>
"6·25전쟁 통에 오빠와 삼촌을 잃고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로부터
온갖 수모를 겪을 때, 그걸 견딜 수 있게 하는 힘은 언젠가는
저 자들을 악인(惡人)으로 등장시켜 마음껏 징벌하는
소설을 쓰리라는 복수심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20년이 지나도록 증오와 복수심만으로는
소설이 써지지 않았습니다. '나목'으로 나이 마흔에
등단해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지요."
-
- ▲ 박완서씨가 지난해‘현대문학’2월호에 마지막 단편‘석양을
-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를 발표한 직후 자택 서재에서의
- 모습. 박씨는“나는‘영원한 현역작가’로 불러줄 때 기분이
- 가장 좋다”고 말했다. /주완중기자 wjjoo@chosun.com
- ▲ 박완서씨가 지난해‘현대문학’2월호에 마지막 단편‘석양을
22일 영면한 소설가 박완서는 1970년 '나목'으로 등단한 이후
여성의 몸에 새겨진 전쟁의 상흔을 쉼 없이 되새김질하면서도
사랑과 용서·화해의 높은 세계를 노래하며
한국 문학의 찬란한 봉우리로 우뚝 섰다.
6·25전쟁 체험과 분단이라는 역사적 소재를 다룬
'엄마의 말뚝' 연작과 '그 남자의 집'은 남성 작가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여성의 체험이라는
새로운 프리즘으로 해석했다는 점에서
큰 문학적 의미를 지닌다.
박완서는 인간의 내면을 손바닥처럼 들여다보는 데 능했으며,
이를 명쾌하고 거침없는 서사로 표현한 탁월한 이야기꾼이었다.
'휘청거리는 오후' '도시의 청년' 등에서 그녀는 1970년대 이후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등장한 중산층의 속물화된 일상과
허위의식, 세속적 탐욕을 신랄한 문체로 꼬집었다.
작가는 노년에 이르러서는 중산층 도시 여성들의 일상도 즐겨
소재로 선택했다. 이 과정에서 중년 여성의 내면에 들어찬
헛된 욕심과 위선을 놀랍도록 정교하게 포착하면서도
그런 속성 또한 인간의 본질적 모습임을 인정함으로써
복잡하고 다면적인 인간 이해의 경지를 보여줬다.
박완서는 문학적 성취와 독자의 사랑을 동시에 거머쥔
행복한 작가였다. 1992년 출간한 장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1930년대 고향 개풍에서의
어린 시절과 1950년대 전쟁으로 황폐해진 서울에서의
20대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전쟁을 기억한 작품으로
100만부가 넘게 팔렸다.
그녀가 77세의 고령에 발표한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도
30만부나 나가며 그녀가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국민작가임을 증명했다.
노년의 박완서는 '부숭이의 땅힘'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 등 동화집을 쓰며 세상에 태어난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기쁨을 어린이들에게 전하려 애썼다.
지난해 소설가 정이현씨가 엄마가 되자 젊은 부부와
아기가 그려진 엽서에다 "아가야 예쁘고 건강하게
자라서 엄마 아빠의 기쁨이 되거라.
박완서 할머니가"라고 써서 주었다.
김수환 추기경과 나눈 아름다운 교유를 통해서도
그녀의 인간됨을 엿볼 수 있다.
2009년 김 추기경의 선종을 접한 박완서씨는
"그분은 정의를 위해 박해받고 쫓기는 이들을 말없이
그분의 날개로 덮고 품으셨을 뿐, 결코 선동하거나
부추기지는 않으셨다.
만약 그분까지 투쟁적이었다면 그분의 그늘,
그분의 날개 밑이 그렇게 편했을 리가 없다"고 했다.
김 추기경의 너그러운 인품과 넉넉한 포용의 경지는
곧 그녀가 삶에서 추구했던 덕목이었다.
박완서는 고향 방문을 염원했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내 식의 귀향'이란 글에서 그녀는 고향에 가지 못한
원초적 상실감과 지금도 계속되는 분단체제의
모순을 지적하며,
"내가 살아온 세상은 연륜으로도, 머리로도,
사랑으로도, 상식으로도 이해 못할 것 천지였다"고
회고했다.
지난해 펴낸 마지막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는
그토록 이해 못할 고통을 모두 이겨내고 문학의
큰나무로 우뚝 선 삶의 보람을 담고 있다.
"또 책을 낼 수 있게 되어 기쁘다. 내 자식들과 손자들에게도
뽐내고 싶다. 그 애들도 나를 자랑스러워했으면
참 좋겠다."
박완서가 남긴 것
▶소동파는 "글 중에 좋은 글은 쓰지 않을 수 없어 쓴 글"이라고 했다.
▶동인문학상 심사 자리에서는 아무리 가까운 작가 작품이라도
▶작년 8월 나온 그의 생애 마지막 책 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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