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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위한 서시(序詩)-김춘수(金春洙)

素彬여옥 2010. 7. 9. 19:31

꽃을 위한 서시(序詩)   
                        -김춘수(金春洙)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存在)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 드는 이 무명의 어둠에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金)이 될 것이다.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여.


작품해제

   갈래   자유시, 서정시, 상징시, 순수시

   성격   주지적, 상징적, 관념적, 철학적, 명상적, 존재론적

   심상   비유적, 상징적 심상

   운율   내재율

   어조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남자의 목소리, 명상적 어조

   제재   꽃

   주제   꽃(사물)에 내재하는 본질적인 의미 추구, 포착되지 않는 존재의 본질 추구(존재의 참모습을 인식하지 못하는 안타까움)

 

시상 전개

1연

미지(未知)의 자각

2연

존재의 불안정성

3연

존재 탐구에의 몸부림

4연

존재의 본질 인식

5연

대상의 미지성(未知性)

 

시어·시구 연구 및 분석

 #. ·시방-지금. 위험한 짐승-무지한 존재의 상징어(사물의 본질적 의미를 알지 못하는 무지한 존재). ·까마득한 어둠-'무지의 상태'를 상징하는 말. ·추억의 한 접시 불-자신이 쌓아온 삶의 경험 전체와 지각을 총동원한 노력(무지를 몰아 내려는 노력). ·무명-인식되지 않은. ·얼굴을 가린 나의 신부-본질적인 의미를 드러내지 않은 채 피상적인 모습만을 보여 주는 사물의 존재.

 #. 나는 시방 위험(危險)한 짐승이다 ; 나는 지금 사물의 본질적인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무지한 존재이다. '나'는 사물의 본질적인 의미가 아니라 표면적인 모습에 대한 파괴적이고 동물적인 충동만을 지닌 존재이다.

 #. 까마득한 어둠 ; '무지의 상태', '너'의 존재를 알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 존재(存在)의 흔들리는 가지 끝 ; 삶이라는 불안정한 상태. 동물적인 충동 앞에서 사물은 언제 파괴될지 모르는 불안과 위기감 속에서 존재한다. 사물 자체에 대한 인식에 회의(懷疑)를 드러낸 표현.

 #. 추억(追憶)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 자신의 의식을 깨우기 위한 자세로 지난 추억을 일깨우고. 이성의 불을 켜 들고 사물의 본질을 은폐하고 있는 미지의 어둠 속을 탐험한다는 의미. '추억의 한 접시 불'-자신의 존재 전체, 즉 자신의 쌓아 온 삶의 경험 전체와 지각을 총동원하여 켠 이성의 불.

 #. 나의 울음 ; 존재의 의미를 밝히려는 시적 자아의 노력

 #. 돌에까지 스미면 금(金)이 될 것이다 ; 존재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한 나의 고심어린 노력이 사물의 겉모습을 지나 그 핵심에 이르게 되면. 돌-탑을 구성하고 있는 재료, 탑-사물의 겉모습, 돌-그 겉모습을 규정하는 핵심적 본질, 금-소중함.

 #.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新婦)여 ; 본질적인 의미를 가리운 채 피상적인 것으로만 드러나는 사물의 존재로 존재의 본질을 밝히기 위한 노력이 끝없이 계속되어야 할 것임을 암시하는 부분이다. 꽃-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꽃.

 

이해와 감상

   릴케의 영향을 받아 존재론의 입장에서 사물의 내면적 깊이를 추구한 김춘수의 초기시에 해당한다. '꽃'이 인식의 대상으로서의 존재가 남에게 바르게 인식되고 싶어하는 소망을 노래한 것이라면, 이 시는 반대로 인식의 주체로서의 화자가 존재의 본질을 인식하고자 하는 욕망을 읊은 것이다. 사물의 본질적 의미를 파악할 능력이 없는 내(위험한 짐승)가 너(꽃)를 인식하려고 시도하면 너는 더욱 미지의 세계로 숨어 버린다. 그리하여 꽃은 아무런 의미도 부여받지 못한 채, 불안정한 상태에서 무의미하게 존재하고 있다. 무명(無名)의 상태를 보다 못한 나는 의식을 일깨우는 불을 밝히고 인식을 위하여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다. 나의 이러한 노력이 돌개바람처럼 큰 힘으로 변하여 사물의 본질을 꿰뚫기만 한다면 나는 드디어 꽃을 똑바로 인식하고 알맞은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꽃은 수줍은 신부처럼 너울을 드리운 채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이 시는 사물의 존재와 본질을 밝혀 내려는 시인의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1연에서 시적 화자인 '나'는 사물에 내재된 본질을 탐구하려는 노력의 일단을 보인다. 그러나 '나'는 사물에 내재하는 의미를 모르는 '위험한 짐승'일 뿐이고, 내 앞에 꽃은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어둠으로만 존재한다. 2연에서 내가 찾고 있는 존재는 흔들리는 가지 끝의 꽃처럼 불안한 상태에 있으며 나는 아직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3연에서는 존재의 본질을 찾기 위해서 불꽃을 밝혀가면서 어둠 속의 존재를 찾고자 노력한다. 4연은 꽃의 의미를 추구하는 노력을 서정적으로 형상화한 연이다. 내가 존재를 찾는 일을 성공하면 돌개바람처럼 큰 힘이 되어 드디어는 도달하기 어려운 본질인 돌을 꿰뚫고, 내가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존재의 상징인 금처럼 소중한 일이 될 것이다. 5연에서 '신부'는 꽃을 가리키는 말로, 아무리 내가 추구해도 꽃은 얼굴을 가린 채 그 의미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시는 '꽃'의 전편(前篇)에 해당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에서 '너'와 '얼굴을 가린 나의 신부'는 모두 시적 자아가 추구하는 존재의 본질을 상징한다. 그러나 '너'와 '신부'는 '나'의 접근을 완강히 거부한다. '무명(無名)의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존재의 비밀을 탐구하기 위한 '나'의 고뇌에 찬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너'는 여전히 미지의 어둠 속에 있고 얼굴을 가린 '신부'의 모습으로 내 앞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향한 나의 탐구를 그칠 수는 없다. 왜냐 하면, 바로 그러한 탐구의 과정 속에서 '나'는 비로소 인간화되어 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시가 첫머리에서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라고 진술하고 있는 것은 대단히 의미 심장한 말이다. 짐승에게 있어서 사물의 본질이란 전혀 관심이 대상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사물은 오직 욕망의 관점에서 파악될 뿐이고 동물적인 욕망의 충족을 위해서 파괴되고 부정되어야 할 대상이다. 그러므로 사물은 오직 파악될 뿐이다. 그렇게 때문에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 앞에 서 있는 '나'는 사물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위험한 짐승'일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동물적 충동 앞에서 사물의 본질은 영영 미지의 어둠 속으로 숨어 버리고 그 존재를 충분히 드러내지 못한 채 부정되고 만다. 따라서 사물의 본질을 밝혀 내서 그것을 인간적인 사물, 혹은 인간을 위한 사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무분별한 동물적 충동을 억제하고, '나'의 전존재를 기울이고, 이성(理性)의 불을 밝혀서 그것에 접근하는 수밖에 없다.

    이 때 '울음'은 사물의 본질에 접근해 가기 위한 인간의 고뇌 어린 노력을 상징한다. 이 '울음'이 본질을 감추고 있는 사물의 완강한 겉모습을 상징하는 '탑'을 지나 그것이 감추어진 본질인 '돌'에까지 이르게 될 때 그것은 비로소 찬란한 '금'이 된다. 이 때 '금'은 사물의 존재 자체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그것의 숨겨진 본질에 도달한 인식의 상태, 혹은 인간의 인식이 사물의 본질과 합치된 행복한 상태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물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면 될수록 미지의 영역은 또다시 확장되므로 이와 같은 고뇌 어린 노력은 영원히 계속될 수밖에 없다.

   다 알았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에 사물은 또다시 인간의 인식을 벗어나서 미지의 어둠으로 도망을 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얼굴을 가린 신부'의 얼굴을 보기 위한 노력은 계속될 수밖에 없고, 바로 이 지속적인 존재 탐구의 노력 속에서 인간은 '위험한 짐승'의 상태에서 벗어나 인간이 되어가는 것이다. 이 시는 이처럼 시를 통해 사물의 존재와 본질을 밝혀 내려는 시인의 노력을 보여 준다.

생각해 봅시다.  

 1. 이 시에서 사물에 내재해 있는 본질적인 의미를 부여한 시어를 찾아보자.

  ▶ 꽃

 2. 이 시에서 자신의 의식을 일깨우는 행위가 드러나고 있는 연을 찾아보자.

  ▶ 자신의 의식에 '불'을 켜는 행위로 3연이다.

 3. 이 시에서 '한밤내' 우는 시적 자아의 울음의 의미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 존재의 의미를 밝히려는 시적 자아의 노력을 의미한다.

 4.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의 의미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 이 시의 화자는 사물에 내재하는 존재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나 결국 사물의 본질적 의미는 언제나 미지의 상태로 남는다는 인식에 도달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꽃(본질적인 의미를 드러내지 않는 존재)로 볼 수 있다.

 5. '까마득한 어둠'이 상징하는 의미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 무지의 상태

 6. 이 작품에 나타난 '나'와 '너'의 관계를 살펴보자.

  ▶ 나 : 시적 자아로서 존재의 본질에 대한 인식의 주체를 표상함.·너 : '꽃'을 가리키는 말로 인식의 객체인 존재의 본질적 의미를 표상함.

 7. 이 시에 주로 사용된 심상 제시 방법을 살펴보자.

  ▶ 상징

 8. 이 시의 표현상의 특징을 살펴보자.

  ▶ 관념적이고 명상적인 남성의 어조로 말하고 있으며, 인식론과 존재론을 바탕으로 비유적이고 상징적인 이미지를 드러내었다.

비교해 봅시다.  

 1. 이 시에서 다음 작품의 밑줄 그은 부분과 같은 의미를 가진 시어를 찾아보자.

  ▷ 우리들은 모두 / 무엇이 되고 싶다. /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금(金)

 2. 다음은 박봉우의 '휴전선' 중 일부이다. 이 시에 드러난 시적 화자의 정서와 어떤 점에서 유사한지 살펴보자.

  ▷ 모든 유혈은 꿈같이 가고 지금은 나무 하나 안심하고 서 있지 못할 광장, 아직도 정맥은 끊어진 채 휴식인가 야위어 가는 이야기뿐인가.

  ▶ 안타까움의 정서. 본문은 존재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의 정서, 보기는 분단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의 정서가 드러난다.

이것만은 알아야   

 1. 이 시에서 자신의 본질을 은폐하고 있는 사물의 겉모습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시구를 찾아보자.

  ▶ 얼굴을 가린 나의 신부여

 2. 시적 자아가 추구하는 것은 대상의 본질을 의식하는 것이다. 인식은 무엇을 가짐으로써 가능하다고 시적 자아는 말하고 있는가?

  ▶ 이름

 3. 이 시에서 '너'가 가리키는 것을 밝히고, 그것과 같은 의미로 쓰인 시어를 찾아 그 상징적 의미를 생각해 보자. 그리고 '나'는 '너'에 대해 어떠한 존재인지를 이 시의 주제와 관련하여 생각해 보자.

  ▶ '너'는 '꽃'을 가리키며, 같은 의미로 쓰인 시어는 '신부'로서 존재의 본질을 상징한다. 시적 화자인 '나'는 존재의 본질을 끊임없이 탐구하나 본질 규명을 이루지 못하는 존재이다.

 4. 존재의 본질 규명이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시구를 찾아보자.

  ▶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여

이해와 감상2
 존재론적 입장에서 사물에 내재하는 본질적 의미를 추구하는 이 시는 앞에서 설명한 시 <꽃>에 대한 '서시(序詩)'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꽃>이 인식의 대상으로서의 화자가 남에게 바르게 인식되고 싶어하는 소망을 노래한 것이라면, 이 시는 그와 반대로 인식의 주체로서의 화자가 존재의 본질을 인식하고자 하는 소망을 읊은 작품이다.

 이 시에서 '꽃'이 사물의 본질을 상징한다면, '미지'·'어둠'·'무명' 등은 사물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뜻하며, 화자는 그 무명의 세계에서 벗어나 사물의 본질, 즉 꽃의 의미를 파악하려고 몸부림치는 존재이다.

 1연에서 화자는 사물의 본질을 모르는 자신을 '위험한 짐승'이라 하여 무지에 대한 자각을 보여 주고 있으며, 2연에서는 자신의 자각 없이는 '꽃' 역시 불완전한 상태임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3연에서는 '추억의 한 접시 불'이라는 모든 지적 능력과 체험을 다하여 존재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한 화자의 몸부림과 절망을 '나는 한밤내 운다'로 표현하고 있으며, 4연에서는 비록 존재의 본질을 깨닫지는 못했어도 그것을 추구하기 위한 노력 ― '나의 울음'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라는 역설적 깨달음을 보여 주는 한편, 마지막 연에서는 결국 존재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만 자신의 안타까움을 '얼굴을 가리운 신부' - 꽃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양승준 외 - 한국현대시 400선 중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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