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 인생
어느 순간부터
누구나 아는 화려한 꽃보다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들꽃들이
더 순수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나이가 들었다는 현상의
하나일까.
아니면 이제야
인생의 도리를 알아 가는 것일까.
나는 왜
들꽃에 마음이 더 갈까.
원리는 단순했다.
그것은 오래 전부터 들꽃처럼
남 신경 쓰지 않고
살아온
모습도 유사하고
꾸밀 필요 없이
작고 소박하게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
자연과 어울림의 아름다움 속에
강한 생명력은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모습이
후반에 들어선
내 자신이 추구해야 할
미션임을 알았기에
나는 들풀을
더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들풀이란
들에서 나는 풀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누가 그들을 알겠는가.
이곳저곳 아무렇게나
남을 의식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자리를 지킬 뿐이다.
우리 역시 그들의 이름을 모른다.
이름이 없어서가 아니라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들풀 자신도
스스로 누구에게도 이름이
불려 지길 원하지도 않은 채
존재하는 것만으로
만족하며
살다가
계절이 지나면
시들어버리지만 넓은 들판은
또 다른 들풀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무엇 가를 기다리는
반복이
자연을 만들었고
그 안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의
큰 언덕이 되어 왔던
것이다.
새벽마다
이슬을 머금고 생명을
품는 들풀들,
바람이 불 때마다
사랑하는 이의 속삭임과
상처받는 이의 사연을
전해주다가
어느 순간
화장기 없는 아낙네 얼굴처럼
희끄무레하게 변해가는
그들을 보며
나는
속절없는 인생의 겨울을
생각해 보곤 한다.
적어도
들풀을 보고 있노라면,
실수투성이요
내세울 것이 없기에
기를 펴지 못하고
주눅 들며
살아가는 내 자신임에도
그들은 적어도
나를 받아줄 것 같기에
안심하고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겨울과
사명을 되새겨 본다.
누구도 그들을
장미로 봐주지도 않고
라플레시아라 불러 주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쓸모없는 풀이요,
유실수들의 앞길을 막는 방해꾼
정도로만 생각할 뿐,
단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들풀의 존재 이유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있었던가.
우리가 원하는 가치란
당장이라도 상품화 할 수 있도록
외적으로 아름답던지
열매가 있던지
뭔가가 구비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들은
어느 것 하나 충족시켜 주지 못한 채
존재하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듯
그렇게
추수 이후 아무도 없는 빈 들판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보니
내 삶이 그래왔었다.
남이 알아줄만한 어떤 것도
간직하지 않은 채,
아빠나 남편이라는
역할만으로도
역부족을 느끼며,
평범한 들풀처럼 그냥 살아갈
뿐이다.
젊었을 때 가졌던
거창한 이상은 먼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고,
평소 속물근성이라 여겼던
이 땅의 낮고 하찮은 것들에 붙들려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보며
진지하게
인생의 사명을 새겨본다.
이제
자연의 하나로
호흡하고 있다는 것이
더 숭고하게 느껴지고 있는
나는
타락한 것인지
아니면
자연에 순응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이 외적인 사명보다
더 중요한 섭리였는지에
대해
고민하며 수긍할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하지만
이젠 나는 분명히 알고 있다.
겉으론
뭔가를 이룬 것 같지 않지만,
가시적인 성과보다
더 중요한
들풀의 생명력이
미래의 희망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더 마음이 가고
있나보다.
주는 물만 먹고 자란 하우스의
화초보다는
들판에서 빗물을 먹고
천둥번개
비바람도 감당하며
견딘
그들이야말로 내일의 꿈이
되는 것은 당연하기에,
화려하지 않아도
수 많은 소소한 아름다움을
소유한 그들은
어떤 비주얼보다
더 아름답고
풍성하다는 것을 알기에
내일이 있다.
아무리 밟혀도 뜯겨도
다시 고물거리며 올라오는 질긴
생명력은
광야의 삶에서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에서
‘그럴 수도 있지’로
바뀌면서
스스로에게
자유와 행복지수를 조절할 줄
아는 능력이 있기에
내일이 두렵지가 않다.
과거에
매이지 않고
미래에
마음 두지 않고
그냥
지금 이 순간에
어떤 일이든 서둘지 않고
함부로 나서지 않고
외로운 영혼에게
기쁨과
꿈을 안겨준다.
주여,
세상이 날
잡초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저는
잡초입니다.
잡초만큼
향기만 있어도
잡초만큼
남 의식하지 않고
잡초만큼
자유롭게 살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홀로 존재하나
혼자가 아니기에
무소유한 존재나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기에
오늘도
하늘을 바라보며
꿈을
꾸어봅니다.
2013년 7월 8일 강릉에서 피러한(한억만)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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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허락작가ꁾ우기자님, 포남님
^경포호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