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 천양희
잠실 롯데백화점 계단을 오르면서
문득 괴테를 생각한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생각한다.
베르테르가 그토록 사랑한 롯데가
백화점이 되어 있다.
그 백화점에서 바겐세일하는 실크옷 한벌을 샀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친구의 승용차 소나타Ⅲ를 타면서
문득 베토벤을 생각한다
베토벤의 '월광소나타' 3악장을
생각한다.
그가 그토록 사랑한 소나타가
자동차가 되어 있다.
그 자동차로 강변을 달렸다.
비가 오고 있었다.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얼굴을 묻은 여자
고흐의 그림 '슬픔'을 생각한다.
내가 그토록 사랑한 '슬픔'이
어느새 내 슬픔이 되어 있다
그 슬픔으로 하루를 견뎠다
비가 오고 있었다.
천양희시인
(천양희 시인 약력)
출생 1942년 부산 출생
경남여중고, 이화여자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65년 현대문학 '정원 한때'외 발표(박두진 시인 추천)
1996년 소월시문학상
1998년 현대문학상
2005년 제13회 공초문학상
2007년 제2회 박두진문학상
2011 제26회 만해문학상
시집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83), ‘사람 그리운 도시’(88), ’하루치의 희망‘(92)
‘마음의 수수밭’(94), ‘오래된 골목’(98), ’너무 많은 입‘(2005)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2011)
산문집 ‘시의 숲을 거닐다’, ‘직소포에 들다’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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