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모음/운문-詩,시조

귀천(歸天) -천상병(千祥炳)

素彬여옥 2010. 7. 9. 19:10

귀천(歸天)   -천상병(千祥炳)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고 돌아가리가.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작품 해제

   갈래   자유시, 서정시, 순수시

   성격   애상적, 환상적, 낙관적, 긍정적

   운율   내재율

   어조   독백적 어조

   표현   감정 이입, 상징법, 반복법

   제재   삶과 죽음

   주제   삶에 대한 긍정적 관조, 죽음의 관조적 수용, 삶을 초극한 죽음의 소망. 순명(順命)과 생의 긍정

시상 전개

1연

이슬과 더불어 하늘로 돌아감

2연

노을빛과 더불어 하늘로 돌아감

3연

삶에 대한 긍정


이해와 감상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죽기 마련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든 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담담한 마음으로 죽음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죽음 그 자체를 두려워하기도 하고, 죽음으로 해서 잃게 될 소유물들을 아까와 하기도 한다. 특히 지금 누리고 있는 세속의 삶에 여러 가지 집착이 많을수록 죽음은 그만큼 더 두려운 것이 된다. 위의 작품에서 우리는 그러한 일반적 태도와는 전혀 다른 한 사람의 모습을 본다. 그는 세 연의 서두에서 똑같은 어조로 말한다.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하늘로 돌아간다는 것은 물론 죽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는 죽는다고 말하지 않고 하늘로 돌아간다고 한다. 셋째 연의 말처럼 이 세상의 삶이 마치 한 차례의 소풍인 것처럼 그는 선선히 '돌아가리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늘로 돌아갈 때 그가 동반하는 것이란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과 '노을빛'같은 것들에 지나지 않는다. 미래의 언젠가 있을 죽음을 선선히 받아들이기로 하였듯이, 그는 이 세상의 삶 속에서 누리는 소유물들에 별로 미련이 없다. 미련이 없으므로 집착이 없고, 집착이 없으므로 죽음을 억지로 피해 보려는 안타까운 몸부림도 없다. 그러나, 이렇게만 읽고 만다면 아직 이 시를 충분하게 음미하지 못한 것이다. 그가 선선한 태도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라고 말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의 삶을 한껏 즐겁게 누렸기 때문일까?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작품 전체의 어조와 분위기는 이와 달리 어떤 애조 땐 빛깔로 덮여 있다. 분명하게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그에게 삶이란 매우 괴로운 것이 아니었던가 한다. 그 속에서 그는 가족. 친구와 더불어 넉넉하다 할 수 없는 삶을 누려 왔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삶의 시간을 짐작하면서 그는 새삼스럽게 그 아쉬운 삶을 돌이켜보게 된다. 그러나 지나온 삶의 자취 속에서 소중한 기억들을 더듬으면서 그래도 자신은 아름다운 한 세상을 살았노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노래하는 간결한 말씨 속에서 우리는 지나온 삶의 괴로움과 회한을 지그시 다스리며 아름다움을 읽어 내는 맑은 눈을 본다. -김흥규 <한국 현대시를 찾아서> 중에서

이해와 감상2

   한국의 전통적인 토종의 시인이자 영원한 자유인으로, 오직 술과 문학만으로 살았던 시인의 삶과 비애를 평이한 말과 형식으로 표현한 아름다운 시이다.

   이 시는 매연의 첫 행을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로 시작하고 있다. 하늘로 돌아간다는 것, 즉 귀천(歸天)은 죽음을 뜻하는 진술이다. 시적 화자는 이 죽음을 새벽 이슬의 손을 잡고, 노을빛과 단둘이서 놀다가 구름이 손짓하면은 하늘나라로 간다고 표현하여 삶에 대한 달관과 죽음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시적 화자에게 이 세상의 삶은 '소풍'으로 인식되었다. '소풍'은 일상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누리고, 어떤 특정한 목적을 지니지 않고 즐기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날이다. 결국 '소풍'은 세속적인 욕망을 초월하여 자유롭게 삶을 즐기는 화자의 삶에 대한 태도가 담겨 있는 말이다.

   이 시의 화자는 출생에서 죽음까지의 삶의 과정을 하늘에서 잠시 지상으로 떠난 소풍의 여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삶에 대한 달관과 관조의 자세를 읽을 수 있으며, 아울러 순진 무구한 마음씨도 읽을 수 있다.

시어·시구 연구 및 분석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죽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시인의 순명(順命)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러한 순명의 태도는 '하늘'이 자기 존재가 비롯된 곳이라는 생각에서 기인한다. 그가 '죽음'을 하늘로 돌아가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 이 점을 말해 준다. 그는 죽음을 모든 것을 종말로 이끄는 돌발적인 사건으로 파악하는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 즉, 자기 존재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가 죽음을 노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둡고 절망적인 색채가 아니라 밝고 건강한 색채를 띠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 '이슬'과 '노을빛'은 모두 잠깐 동안 이 세상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소멸해 버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그러나 시인이 '이슬과 더불어', '노을빛과 함께' 하늘로 돌아가겠노라고 말한 것은 삶의 덧없음이나 허무를 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처럼 맑고 깨끗하고 아름답게 살고 싶다는 시인의 소망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태도가 문자 그대로 무욕(無慾)과 무사심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말해 준다. 무욕과 무사심의 경지에 도달했기 때문에 굳이 삶에 대해 집착할 필요도 없고, 닥쳐 올 죽음에 대해서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므로, 이처럼 담담하게 삶과 죽음을 노래할 수 있는 것이다.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시인은 자신의 삶을 즐거운 '소풍'으로 파악하고 있다. 자신이 천상의 세계에서 세속의 세계로 '소풍'을 나왔다가 다시 천상의 세계로 돌아가는 어린아이(천사)와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구절은 자신의 맑고 깨끗한 삶에 대한 자족감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아름다움'의 주체는 이 세상이라고 할 수도 있고 시인 자신의 삶이라고 할 수도 있다. 비록 가난과 슬픔과 고통의 연속인 삶이요, 그에게 오욕(汚辱)과 가난을 강요한 세상이지만, 적어도 시인에게 있어서 자신의 삶과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전술은 시인이 세속적인 욕망이나 더러움에 오염되지 않은 순결한 영혼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말해 준다. 시인이 삶과 죽음에 대해 초탈한 자세를 지닐 수 있는 것 또한 이와 같은 청정한 삶의 자세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해 봅시다.  

 1. '소풍'의 함축적 의미를 생각해 보자.

  ▶ 물질적 가치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삶을 의미한다.

 2. 서정적 자아의 마음 상태를 나타낼 수 있는 한자성어를 생각해 보자.

  ▶ 순진 무구(純眞無垢). 서정적 자아의 맑고 깨끗한 시심(詩心)을 읽을 수 있다. 특히 죽음을 '아름다운 소풍의 끝'이라는 표현에서 화자의 순진 무구성이 드러난다.

 3. 시인이 지향하는 삶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시어를 찾아보자.

  ▶ 이슬, 노을빛 - '이슬', '노을빛'은 유한한 것이지만, 그 자체의 말고 순결함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사물들이다.

 4. '이슬'이 지닌 내표적 의미를 생각해 보자.

  ▶ 이 시에서 이슬이 지닌 내포적 의미는 유한함과 깨끗함이다.

비교해 봅시다.  

 1. 이 시에서 '하늘'의 내포적 의미와 다음 시들의 '하늘'의 내포적 의미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자.

  ▷ 하늘이 내게로 온다. / 여릿여릿 멀리서 온다.<박두진, '하늘'>

   ▶ 자연 현상으로서의 하늘

  ▷ 죽는 날까지 하늘을 /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윤동주, '서시'>

   ▶ 절대적 윤리 기준으로서의 하늘

  ▷ 추위 가득한 저녁 하늘에 /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황동규, '조그만 사랑 노래>

   ▶ 시대적 상황을 암시하는 하늘

  ▷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에 /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김춘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 환상적인 세계로서의 하늘을 의미한다.

  ▷ <이 작품>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저승의 의미를 지닌 하늘

이것만은 알아야   

 1. 서정적 자아의 죽음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자.

  ▶ 죽음은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로 표현되나, 이 시에서는 죽음에 대한 기존의 인식에 새로운 눈으로 삶을 바라보게 한다. 죽음을 소풍의 여정으로 봄으로써 삶에 대한 관조와 달관적 자세를 드러내고 있다.

 2. 이 작품에서의 '이슬'과 '노을빛'의 의미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 이 시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심상들이다. '이슬'은 햇볕이 비침과 동시에, 그리고 '노을빛'은 어둠이 덮임과 동시에 사라지는 유한한 것이다. 그러나 이 시들에서 그것들은 덧없고 허망한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그 순간까지 그 자체가 지닌 투명함과 아름다움과 신선함으로 이 세상을 아름답게 장식해 주는 그런 것이다. 따라서, 시인이 '이슬과 더불어', 혹은 '노을빛과 함께' 하늘로 돌아가겠노라고 진술한 것은 그 속에 시인 자신의 삶이 바로 그와 같은 것이 되기를 바라는 시인의 소망과 자신의 삶이 실제로 그 같은 경지에 도달했다는 자족감이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좋은글 모음 > 운문-詩,시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의 기도 -김현승-  (0) 2010.07.09
국화(菊花) 옆에 -서정주(徐廷柱)  (0) 2010.07.09
바람꽃-시인 이정규  (0) 2010.07.08
한 세상 산다는 것-이외수  (0) 2010.07.04
기쁨꽃-이해인-  (0) 2010.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