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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菊花) 옆에 -서정주(徐廷柱)

素彬여옥 2010. 7. 9. 19:14

국화(菊花) 옆에 -서정주(徐廷柱)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작품 해제
   갈래   자유시, 서정시, 전통시, 상징시, 순수시

   성격   불교적, 자성적, 전통적

   심상   시각적 심상

   운율   3·4·5조의 가락을 바탕으로 반복법과 각운을 써서 음악성을 살림.

   어조   관조적 어조

   표현   불교 사상과 향토적 정서가 잘 융화됨, 고도의 상징적 수법으로 생명 탄생의 신비감을 효과적으로 형상화, 계절과 인생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생명 형성의 과정과 중년 여성의 원숙미를 아울러 표출함.

   제재   국화

   주제   고뇌와 시련을 통한 생명 탄생의 신비성과 존엄성.

           인고(忍苦)의 세월을 거쳐 도달한 생의 원숙미


시상 전개

기(1연)

소쩍새와의 인연(생명 탄생의 인고. 20대)

승(2연)

천둥과의 인연(고뇌와 시련. 30대)

전(3연)

중년기의 원숙미(자아 발견의 원숙성. 40대)

결(4연)

무서리 및 자아의 인연(깨달음)


이해와 감상
가장 한국적인 시를 쓴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미당의 대표작이자 우리 나라 현대시를 대표하는 명시의 하나이다. 국화의 개화(開花) 과정을 통하여 어떠한 생명체라도 치열한 생명 창조의 역정을 밟고 태어난다는 것을 선명히 보여 주는 이 시는 불교의 연기론(緣起論 因緣設)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어떤 일이 발생한다고 할 때, 그것이 단독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강한 힘을 부여하는 인(因)과 약한 힘을 보태는 연(緣)과의 상호 결합의 결과로 본다. 이 시에서도 국화 자체의 힘과 소쩍새. 천둥. 무서리가 봄부터 가을까지 작용함으로써 국화가 꽃을 피우는 것이다. 여기서 국화는 모든 생명체의 대유이자, 나아가 생명이 그러한 아름다움으로 승화된 상태의 상징이며, 동시에 시적 자아의 '누님'과 같은 40대 중년 여인이 도달할 수 있는 원숙하고 평온한 아름다움의 상지이기도 하다. 원래 국화는 사군자(四君子)의 하나로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는 꽃이지만, 이러한 관습적 상징의 차원을 넘어서서 시인은 생명 탄생의 고귀함과 원숙한 중년 여인의 불혹(不惑)의 미를 상징하는 창조적 상징의 차원으로 국화를 노래하고 있다. 이와 같은 함축미를 지닌 국화의 개화를 위해서 외적(外的)으로는 소쩍새의 울음, 천둥, 무서리 등의 협동이 필요했고 내적(內的)으로는 설움과 번민의 시련과 고통 등을 극복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런 과정을 통하여 국화는 마침내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피우게 되는 것이고, 무수한 괴로움과 역경을 극복한 인간은 거울 앞에 앉아 조용히 자신을 투영, 성찰하는 완전한 모습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양승준 외 <한국 현대시 400선 이해와 감상> 중에서

이해와 감상2

  이 시는 국화 한 송이를 통해서 느끼는 생명의 신비와 그것이 완성되어 꽃으로 피어나는 데 기여한 우주 삼라 만상의 협동 과정을 불교적 인연설(因緣說)에 기초하여 형상화한 작품이다. '소쩍새의 울음'(봄)과 '천둥 소리'(여름), '무서리'(늦가을) 등은 모두 국화의 개화에 참여하는 전 우주의 협동 과정을 상징한다. 이러한 우주적 협동 과정을 통해 태어난 국화는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다. 그 꽃의 모습은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 곧 소쩍새가 울고 천둥이 치는 과거의 시간으로부터 돌아와 지난날을 자성(自省)해 보는 누님 같은 성숙한 아름다움을 지닌 꽃이다. 자아 성찰과 자기 확인을 상징하는 '거울 앞에 선 누님'의 이미지가 그러한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전해 준다. 이처럼 국화는 오랜 인고(忍苦)와 방황의 젊은날을 거치고 난 후의 성숙한 중년 여성의 이미지와 결합하면서 성숙한 자기 인식과 아름다움을 표상하는 시적 상관물로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 연은 국화로 상징되는 생명의 탄생 과정을 형상화하고 있다. 여기서 시적 자아는 우주와의 교감 속에서 하나의 생명이 완성되어 가는 순간을 지켜보는 설레임으로, 불면의 고통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리라는 예감과 기쁨으로 충만되어 있다.

   하나의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뇌와 시련이 따르는가를 1,2연에서 그 생명을 피우기 위해서 걸렸던 시간, 또한 3연에서는 국화를 누님에 비유함으로써 인고(忍苦)의 세월 뒤에 완성된 성숙의 순간을 잘 표현하고 있다. 특히, 그를 거울 앞에 서게 함으로써 자아 성찰과 자기 확인의 의미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이 시는 생명의 신비와 고귀함을 미물에 비유함으로써 생명의 존엄성을 느끼게 하는 데에 가치가 있다.

   전통적으로 선비의 맑고 고결한 기품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던 '국화'를 소재로 하되, 그것을 전통적,관습적 상징의 차원에서 받아들이는 대신 그것과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창조적 상징으로 변용시킨 것은 시인이 우리 시의 전통적인 맥락을 충분히 수용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뛰어넘는 비상한 시적 재능과 상상력을 지니고 있음을 말해 준다.

시어·시구 연구 및 분석

 #.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그렇게 울었나 보다. ; 국화의 개화(開花) 과정과 봄을 표현하는 소쩍새의 울음을 연결시킨, 불교의 인연설(因緣說)에 기인하고 있다. 인생과 결부시켜 볼 때, '봄'은 청춘(20대), '소쩍새'는 한(恨)과 애상, 실의와 비탄을 상징한다.

 #.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 먹구름 속에서 천둥이 그렇게 심하게 울어댄 것도 국화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서였나 보다. 봄에 대한 표현에 먹구름과 천둥소리로써 여름을 묘사하여 개화에 대한 예고를 반복하는 표현이다. 봄에서 여름으로의 변화는 자연의 변화를 나타내면서 아울러 인새의 변화 과정을 상징하고 있다. '천둥'은 격정과 울분, 고통과 번민, 광란을, '먹구름'은 고뇌에 찬 현실을 상징한다.

 #.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 젊은 시절의 꿈과 동경, 그리고 그것이 좌절되는 데서 오는 비탄과 번민에 애를 태우던의 의미로, 1연의 소쩍새 울음과 2연의 천둥이 지닌 상징적 의미를 포괄하여 직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 젊음의 뒤안길에서 ; 젊은 시절이 환하고 부드럽지 못했으며 그늘지고 으슥하여 고난과 혼란으로 괴롭고 어두웠음을 나타낸다.

 #.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 젊은 시절의 고독과 번민과 방황을 다 겪고 나서 차분히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중년 여인의 모습으로 원숙한 아름다움의 이미지를 가지면서 완성된 생명성을 의미하고 있다.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는 이 시의 시상이 집중된 시행으로 서정적 자아의 감정이 가장 고조되어 정점을 이룬 시행이다. 인고(忍苦)와 방황 끝에 찾아 온 환성의 순간을 표현하고 있다. '누님'은 성숙한 아름다움(인생의 풍상을 겪은 중년 여성)을 상징.

 #.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 국화의 개화와 무서리, 그리고 시적 자아의 '잠'을 연결시키고 있다. 시적 자아는 우주와의 영적인 교감을 통해 하나의 생명이 환성되는 순간을 지켜보는 설레임으로 잠을 설치고 있는 것이다. → 영적인 교감(交感)을 통해 새로운 생명체의 탄생과 자아와의 인연을 강조하고 있다.

생각해 봅시다.  

 1. 이 시에서 작가가 탐구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 이 시는 불교적인 윤회관, 인연설에 기인하여 국화꽃의 신비 속에 동화된 인간적 삶의 본질을 탐구하고 있다.

 2. '거울'이 나타내는 정서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 인욕의 세월을 거친 성숙한 모습을 거울 속에 투영해 보며 회고하고 반성하는 자아 성찰을 나타낸다.(반성적 사유) ⇒ 회상과 성찰

 3. 이 시에서 고뇌와 시련의 관념적 시상을 구체적 공간 개념으로 시각화한 시어를 찾아보자.

  ▶ 뒤안길

 4. 이 시가 내용면에서 '전통의 수용과 극복'이라는 양면적 성취를 보여 준다고 할 때, 어떤 점에서 그러한지 생각해 보자.

  ▶ 국화꽃은 전통적으로 맑고 고결한 기품과 절개를 상징(관습적)하나 이 시에서는 창조적 상징(개인적 이미지)으로 변용시키고 있다.  

 5. 자아가 제재를 통하여 발견한 의미에 대하여 살펴보자.

  ▶ 생명력

 6. 이 시의 주제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 생명탄생의 신비감, 인고를 통해 결정된 생의 원숙미

 7. '소쩍새, 천둥, 먹구름'을 포괄할 수 있는 시구를 찾아보자.

  ▶ 젊음의 뒤안길

 8. '봄'을 인생과 결부시킬 때의 상징적 의미를 본문에서 찾아보자.

  ▶ 젊음

 9. 작자가 그의 '시작(詩作) 과정(過程)'이란 글에서 말한 ①'많은 흥분과 감정 소비를 겪고'와 ②'한 개의 잔잔한 우물이나 호수와 같이 형이 잡혀서'는 각각 어느 시행을 두고 한 말인지 생각해 보자.

  ▶ ①-3연의 1행, ②-3연의 3행

 10. 이 시의 시상이 집중된 시행을 찾아보자.

  ▶ 3연의 4행

비교해 봅시다.  

 1. 김춘수의 '꽃'과 관련하여 '꽃'이 의미하는 내용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보자.

    <꽃>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

          그에게로 가서 /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 국화 옆에서 - 인생의 경지, 꽃 - 존재의 본질

이것만은 알아야   

 1. '누님'의 이미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 친숙하고 다정함. 안정되고 여유로움. 불혹(不惑)의 성숙함. 성숙한 자기 인식

 2.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의 라고 말한 이유는 무엇인가?

  ▶ 새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한 우주적 협동의 비의(秘意)를 깨달은 감동과 설레임 때문이다.

 3. 이 시의 시상을 형상화하는 데 크게 이바지한 종교적 사상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 불교의 인연설(연기론)  연기관계 - 소쩍새, 천둥, 무서리

 4. '젊음의 뒤안길'이 '소외된 삶의 고뇌'를 상징하는 시구로 본다면 이와 직결되는 시어를 본문에서 찾아보자.

  ▶ 소쩍새, 천둥, 무서리

 5. 이 시에서 고뇌와 시련의 관념적 시상을 구체적 공간 개념으로 시각화하고 있는 시어를 찾아보자.

  ▶ 뒤안길 - '소쩍새'와 '천둥'도 관련은 있지만, 어느 한 면만을 의미한다.

참고 사항

생명파(生命派)

  ▷ 인간 생명의 원상(原象)을 찾으려는 몸부림 속에 인간 회귀를 주장하는 시적 경햐으로 <시인부락>의 동인인 서정주, 김동리 등과 유치환에 의해 주로 전개되었다. 이들은 목적성을 강조한 프로 문학, 감각적 기교에 흐른 모더니즘, 예술적 기교를 강조한 시문학파 모두를 비판하고 인간의 근원적인 생명력과 삶의 고뇌를 노래함으로써 시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였으며, 특히 해방 후 우리 문학의 주도적인 경향을 형성하였다.

 #. 귀촉도 전설 - 중국 고서의 하나인 환우기에는 귀촉도에 얽힌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중국 주나라 말기 촉나라에 두우라는 왕이 있었는데 제호를 망제(望帝)라 하였다. 어느 날 그는 문산의 강가를 지나다가 한 시신이 떠내려 오는 것을 보았다. 그가 건져내자 시신은 다시 살아났다. 이상히 생각한 망제는 그를 데리고 대궐로 돌아와 사유를 물은즉, 그는 "저는 형주 땅에 사는 별령이라는 사람으로 강에 나왔다가 잘못해서 물에 빠졌는데 어찌하여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습니다."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직 나이도 어리고 마음이 약했던 망제는 이는 필시 하늘이 보내 준 어진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별령에게 정승 벼슬을 주어 나라를 다스리게 하였다. 그러나 별령은 본시 음흉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예쁜 딸을 망제에게 바쳐 환심을 산 뒤, 곧 궁중의 사람들과 대신들을 매수해서 망제를 대궐에서 몰아내고 자신이 왕위에 올랐다. 일조일석에 나라를 빼앗기고 돌아갈 곳을 잃은 망제는 그 원통함과 한을 삭이지 못한 채 죽게 되었는데, 그 후 대궐이 보이는 서산에는 밤마다 두견새 한 마리가 날아와 슬피 울었으므로 촉나라 사람들은 이 새를 망제의 넋이 환생한 것이라 여기고 이를 '귀촉도' 혹은 '두견(杜鵑)', 혹은 '불여귀(不如歸)' 혹은 '망제혼(望帝魂)'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귀촉도란 촉나라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이요, 두견이란 두우에서 나온 이름이요, 불여귀란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요, 망제혼이란 망제의 죽은 혼이라는 뜻이니 이 모두는 두우의 이야기에 관련된 것들이다.

 ▷ '국화 옆에서'에 대한 평

     여기서 한 가지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국화꽃이 누님에 비유되었다는 점이다. 원래 국화란 사군자의 하나로서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는 꽃이다. 이러한 관습적 상징의 차원을 넘어서 작자는 생명 탄생의 존귀성과 원숙한 중년 여인의 불혹의 미를 상징하는 창조적 상징의 차원으로 국화꽃을 노래하고 있다. 대체로 우리가 사람을 꽃에 비유하는 경우는 많다. 그러나 꽃을 사람에 비유하는 것은 지극히 드문데 서정주는 국화꽃을 누님에 비유함으로써 묘한 시적 효과를 획득하고 있다. 또한 다른 여성에 비유하지 않고 누님에다 국화꽃을 비유함으로써 매우 구체적인 인간상 하나가 부각될 길을 연 셈이다. 본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일방적 응석으로 이루어진다. 그에 대해서 누님이 보내는 정은 형제간에 성립되는 평등애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작자는 시의 제목을 '국화 옆에서'라고 붙인 게 아닌가 싶다. 다시 말하면 그는 국화꽃에서 대등한 입장에서 사랑을 주고받는 누님을 연상하고 있는 것이다. <김용직, '한국 현대시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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