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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 발 -유 치 환

素彬여옥 2010. 7. 9. 19:17

깃 발  -유 치 환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 깃발의 역동적 모습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理念)의 푯대 끝에

애수(哀愁)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 깃발의 순수한 열정과 애수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 인간 존재의 동경과 좌절의 아픔

  ▷▷ 이상향에 대한 향수와 비애

 < '조선 문단' 1936.1 >

 

작품해제

   갈래   자유시, 서정시, 상징시

   성격   상징적, 낭만적, 역동적, 의지적

   구성   ·1∼3행 ; 깃발의 역동적인 모습

            ·4∼6행 ; 깃발의 순수한 열정과 애수

            ·7∼9행 ; 이상 세계에 도달할 수 없는 데서 오는 비애감

   어조   애닮픈 어조

   표현   비유를 통해 추상적인 관념을 구체화함['깃발'을 표상하기 위해 '아우성, 손수건, 순정, 애수, 마음'의 5가지 매개어가 사용됨.]

   제재   깃발

   주제   이상향에 대한 향수와 그 비애, 존재와 지향 욕구의 모순과 부조리. 이상 세계에 대한 동경과 거기에 도달할 수 없는 데서 오는 비애감

 

시어·시구 연구 및 분석

 #.·해원-이상의 푸른 바다를 뜻함 ·노스탤지어-고향을 그리는 마음. 향수

 #.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 깃발의 펄럭거림을 아우성으로 표현하고 있다. 시각의 청각화라는 공감각적 이미지를 통해 깃발의 표상을 선명하고 강렬하게 제시하고 있다.

 #.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 '푸른 해원'은 화자의 지향점으로 이상과 동경의 세계이다. 한껏 열려 있는 해방의 공간으로 인간의 본질적 희구의 대상을 표현하고 있다.

 #. 이념의 푯대 ; 이상향에 도달할 수 없는 근원적인 한계를 상징한다. 깃발은 푯대에 달린채 지향하는 푸른 해원을 향해 흔들릴 뿐 나아가지는 못한다. 즉, 깃발을 묶고 있는 현실이 이념의 푯대이다.

 #. 맑고 고운 이념(理念)의 푯대, 애수(哀愁)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 곧은 이념과 그 이념의 정서적인 발로를 가장 아름답고 적절하게 대조, 조화시킨 수법이다.

 #.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 ; 좀처럼 실현되지 않는 멀고 높은 이상을 그대로 실현하려고 동경하는 마음으로 볼 수 있다.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바닷가에 높이 서 있는 깃대와 거기 아우성치듯 펄럭이는 깃발을 보며 시인은 그 느낌과 생각을 펼쳐 보이고 있다. 그 느낌과 생각은 비유를 통해 드러나는데, 차례를 좇아 정리해 보면 '소리 없는 아우성',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 '백로처럼 날개를 편 애수',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이 된다. '손수건'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추상적 관념어들이다. 일반적으로 비유가 추상적 관념을 구상화시키는 데 의의가 있는 것이라면 이 시는 그 반대다. '깃발'이라는 구체적 사물에 추상적 관념을 덧씌우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유치환을 관념의 시인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그가 깃발을 통해 제시하고자 하는 관념이 어떤 것일까? '아우성', '순정', '애수', '애닯은 마음' 등이 불러일으키는 정조가 매우 우울하다는 점을 상기하자.

   바닷가에 세워져 움직일 수 없는 '깃발'은 '저 푸른 해원'을 향해 향수를 느끼며 손수건을 흔드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머나먼 이상에 대한 동경과 그것을 이루지 못하는 데서 오는 슬픔을 나타내 준다고 하겠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 뛰어넘을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 한계를 표상하고 있는 것이 다름아닌 '깃발'인 셈이다. 깃대에 매여 있기 때문에 푸른 해원에 이르지 못하는 깃발을 통해 이상향을 동경하지만 끝내 도달하지 못하는 감상적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작자는 깃발의 본질적 개념을 자신의 독특한 주관으로 해석하여 아무리 실현하려 하여도 영원히 실현할 수 없는 이상을 실현하려고 펄럭이는 운동태의 표상으로서 깃발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에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또는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과 같은 표현이 쓰이게 된다. 사실 인간의 이상이 실현되어 버리면 그것은 벌써 이상이 아니다. 영원히 실현되지 않는 곳에 이상의 매력은 언제나 존속될 수 있고 그 이상을 좇으려는 인간의 보람은 끝없이 유지되어 갈 것이다.

 

생각해 봅시다.  

 1. 일반적인 비유의 기능에 비추어 이 시의 비유가 어떤 특징을 보여주는지 생각해 보자.

  ▶ 추상적 관념을 구상화하는 것이 비유의 일반적 기능인데, 이 시는 반대로 구체적 사물을 관념화하고 있다.

 2. 이 시의 화자의 슬픔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주제와 관련지어 생각해 보자.

  ▶ 이상 세계에 대한 동경과 그것을 이룰 수 없는 데서 오는 슬픔.

 3. '깃발'의 상징적 의미를 생각해 보자.

  ▶ 이상과 현실 사이에 뛰어넘을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 한계를 표상한다.

 4.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에 쓰인 기법은?

  ▶ '소리 없는'과 '아우성'은 논리적으로 볼 때 모순 관계이다. 역설적 기법이 쓰이고 있다.

 5. 이 시에서 '이것'의 보조 관념으로 쓰인 것을 찾아보자.

  ▶ '이것'은 다양한 보조 관념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것은 '아우성'이며, '손수건'이고, '순정'이면서, '애수'이며, '애달픈 마음'이다. 그리고 '순정'은 다시 '물결'로, '애수'는 '백로'로 비유되고 있다.

비교해 봅시다.  

 1. 이 작품의 시구 '이념(理念)의 푯대'와 상징하는 바가 같은 것을 서정주의 '추천사'에서 찾아보자.

  ▶ 이상향에 도달할 수 없는 근원적인 한계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 '그넷줄'이다. 그넷줄을 힘껏 밀어 올림으로써 하늘에 가까워질 수는 있겠지만 하늘에 도달할 수는 없는 것이다.

 2. 이 시와 김영랑의 '모란이 핏기까지는'을 대비하여 화자의 슬픔의 원인은 무엇의 한계에서 오는 것인지 살펴보자.

  ▶ 깃발 - 공간의 한계,  모란이 핏기까지는 - 시간의 한계

이것만은 알아야   

 1. 이 시의 주제를 생각해 보자.

  ▶ 이상향에 대한 향수와 비애

 2. 이 시가 존재론에 근거한다면, 인간의 어떤 실상을 읊은 것인지 생각해 보자.

  ▶ 인간의 존재 조건은 자유의 열린 공간을 지향하면서도 거기로 갈 수 없는 조건이 공존한다. '해원'을 향하면서도 '푯대 끝'에 매달려 있을 수밖에 없는 이중적 조건을 지닌다. 즉 동경과 애수가 공존하는 이중성이 인간의 조건이다.

 3. '누구인가'의 '누구'가 지칭하는 대상을 생각해 보자.

  ▶ 인간이라는 존재 모두를 지칭하고 있다.

참고 사항

 ※ 1930년대 후반 '생명파' 시인

  1. 작가 : 유치환, 서정주, 오장환, 함형수, 김달진, 김상원, 김동리, 윤곤강, 신석초

  2. 특징

   ① 생명의 본질, 본능적 조건을 기초로 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추구함.

   ② 순수시파, 유미주의의 관념성, 모더니즘 시의 반생명성에 대한 도전

  3. 의의

   ① 시적 성공을 거두어 오늘날의 한국 문학에 영향을 끼침.

   ② 휴머니즘 문학(김동리의 주장)은 순수 문학론으로 발전, 계급주의 문학과 대결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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