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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기도 -김현승-

素彬여옥 2010. 7. 9. 19:16

가을의 기도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

낙엽(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謙虛)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게 하소서. ▶ 기도에 대한 염원 - 기도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한

시간(時間)을 가꾸게 하소서. ▶ 사랑에 대한 염원 - 사랑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 고독에 대한 염원 - 고독(주제연)

  ▷▷ 경건한 삶에의 가치 추구

<김현승 시초>(1957)

♣ 감상의 길라잡이  

   이 시는 종교적 신비주의에 입각한 서정시라는 점에서 릴케의 '가을날'을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온갖 만물이 종언(終焉)을 고하는 가을을 맞이하여 시인이 자기 자신의 내적 충실을 갈망하는 마음에서 쓴 기도조의 시로, 엄숙하고도 경건한 시풍을 보이고 있다. 가을철에 느끼는 쓸쓸함과 겸허함 속에서 생의 가치를 추구하고 열망함으로써 삶의 깊은 체험에 이르고자 한 경건한 작품이다.

   이 시는 삼라 만상이 종말을 고하는 가을, 그 종말로 많은 깨달음을 얻는 계절이기도 한 가을을 맞이하여 내적 충실을 갈망하는 기도조의 시다. 그의 후기시의 주된 특징인 내면 지향적 경향 특히 고독의 추구가 이 시의 바탕에 깔리어 초기의 주된 경향인 자연 친애 사상과 훌륭한 조화를 이루었다.

   이 시에서 가을은 내면의 충실을 기하는 시기로, 자기 자신과 대면하고 신과의 만남을 가지는 계기로 다루어져 있다.

♣ 핵심 사항 정리   

   갈래   자유시, 서정시

   성격   종교적, 명상적, 상징적, 기구적, 상징적

   어조   사랑과 명상, 기도로써 체험하는 겸허한 목소리, 기도조의 어조

   표현   기도 형식의 어법으로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냄. 형태상 연에 따라 점차 길어지는 점층적 구조. 기독교적 금욕주의(禁慾主義)와 경건한 삶의 자세가 나타남.

   제재   가을의 기도

   주제   가을의 고독과 기도를 통한 정신적 충만감(경건한 삶에의 가치 추구)

♣ 시어·시구 연구 및 분석

 #. 겸허한 모국어-헛된 가식과 수식으로 가득찼던 온갖 의식이 사라지고 참되고 겸손함이 낳은 마음. 곧 기도하는 마음. 시(詩) 그 자체. 비옥한 시간-헛된 것들이 다 사라지고, 참된 것만 남은 시간. 굽이치는 바다-격정(激情)과 고뇌의 삶. 백합의 골짜기-탐미와 순수의 세계. 까마귀-고뇌하는 고독한 인간 영혼의 심상(心傷). 절대 고독.

 #. 가을에는/기도하게 하소서 ; 헛된 현상들이 사라지고 사물의 핵심만 남는 이 가을철을 맞아서 절대자에게 겸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 유전(流轉)하는 현상들이 다 시들어 떨어지고 순수하고 영원한 본질만이 남는 때를 기다려서 절대자인 당신께서 내게 주신. '낙엽이 지는 때'는 생의 종말을 뜻한다. 그 종말 앞에서 우리는 모든 가식을 다 벗어 던지고 겸허해 질 수밖에 없다.

 #.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 헛된 것들이 다 사라지고 참되고 겸손한 마음만이 나에게 가득 남아 있게 당신(절대자)께서 도와 주소서.

 #.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 인간 세상에서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왔지만, 이제는 절대자인 당신께서 저에게 오직 한 사람(예수 그리스도)을 사랑하게 해 주소서.

 #.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완전한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서.

 #. 1연 ; '낙엽이 지는 때'는 생의 종말을 의미한다. 종말 앞에서는 모든 가식을 다 벗어버리고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 2연 ; '오직 한 사람'은 '신' 또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 3연 ; 시상이 집중되어 있는 주제연이다. '굽이치는 바다'는 화자의 행로(行路)로 희로 애락(喜怒哀樂)의 삶의 현장, 험악한 세파를 의미하며, '백합의 골짜기'는 새로이 들어선 삶의 현장이다. 즉 영적 환희의 세계에 다다른 상태가 이 곳이다. '마른 나뭇가지'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최후의 곳이며,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는 시적 화자가 마지막으로 도달한 절대 고독의 경지, 고절한 단독자의 실존 심상으로 화자의 고독한 영혼의 모습이다.

♣ 생각해 봅시다.  

 1. 이 시에서 시인이 추구하고 있는 '절대 고독'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시어를 찾아보자.

  ▶ 까마귀

 2. 이 시에 나타난 '가을'은 어떤 계절인지 각 연의 내용을 근거로 하여 생각해 보자.

  ▶ 가을은 영적 충실을 기할 수 있는 계절(1연)이며, 사랑을 예비하는 계절(2연)이며, 고독의 계절(3연)이다.

 3.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는 어떤 상황을 은유로 표현한 것인지 '바다'와 '골짜기'라는 시어를 중심으로 생각해 보자.

  ▶ 번뇌와 고난으로 얼룩진 삶과 순결하고 영적인 삶이 세계 - 고뇌는 바다처럼 거칠고 넓으며, 아름답고 순수한 세계는 골짜기처럼 깊고 좁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4. 다음은 이 시에 대한 작가의 언급이다. (   ) 안에 적당한 말을 찾아보자.

  ▷ 나의 고독은 절망적인 고독은 아니다. 이를테면, 부모 있는 고아와 같은 고독이라면 궤변일지 모르겠다. 또한, 나의 고독 중에는 구원을 바라며 신(神)에게 두 팔을 벌리는 (             )와(과) 같은 고독도 있다. 아직까지는 나의 시에 있어선 단지 고독을 위한 고독, 절망을 위한 절망이고자 한다.

  ▶ 마른 나뭇가지

♣ 이것만은 알아야   

 1. 이 시에 나타난 가을은 어떠한 계절인지 생각해 보자.

  ▶ 기도하고, 사랑하고, 고독한 계절

 2. 이 시에 나타나는 분위기를 살펴보자.

  ▶ 기도하는 경견한 분위기

 3. 이 시의 주제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 가을의 고독과 기도를 통한 정신적 충만감(경건한 삶에의 가치 추구)

◈ 참고 사항
시상 전개

1연

기도의 계절

2연

사랑의 계절

3연

고독의 계절


이해와 감상
이 시에 대하여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도 인구에 회자되는 시는 <가을의 기도>이다. 이러한 시에도 나의 기독교적 기질이 어느 정도는 나타나 있다. '다소곳한 겸허' '쓸쓸한 감상' '반성의 기도' 이런 것들은 인간으로서의 나의 본질이었다.(<고독과 시> 중에서)." 첫연에서 시인은 기도로써 내적 충실을 기하고자 한다. 낙엽이 지는 결실의 계절인 가을에 '모국어'로써 기도하는 것이다. 가을은 낙엽의 유한성을 바라보며 느끼는 깨달음의 시간이며. 모국어가 가지는 심상은 근원적이고 진실한 언어이다. 생명에 대한 겸허한 운명을 깨닫는다고나 할까. 둘째 연에서 시인은 절대자에 대한 참사랑. 즉 순애(殉愛)의 마음을 가지려 한다. 제 1연에서 느낀 죽음에 대한 운명을 극복하고 그것을 절대자에 대한 소망으로 표현하고 있다. 셋째 연에서는 '마른 나뭇가지' '까마귀'와 같은 지극히 심상을 통해 자신과의 본질적 내면, 내향의 의지를 드러낸다. 서정적 자아는 '굽이치는 바다'로서의 험난한 인생 행로를 거쳐서 '백합의 골짜기'라는 영적 환희의 세계에 다다르게 되고, 드디어는 '고독'의 세계에 이르는 것이다. '마른 나뭇가지'는 온갖 것을 다 떨치고 핵심만 남은 본질적인 세계를 표상한다. 이른바 '절대 고독'의 경지일 것이다. 우리의 인생과 비교해 보더라도 '굽이치는 바다'는 거센 생명의 충동을 느끼는 청년기에 해당할 것이요. '백합의 골짜기'는 순결한 내면 지향적 경지에 이르는 중년기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제 3연의 고독 추구는 1, 2연의 헌신과 기원의 태도와는 사뭇 다른 것이다. 이 모순의 해결은 김현승 시의 이해를 위한 어려운 과제이다. 곧 유일신인 창조주에의 헌신과 믿음과 의탁이라는 신앙의 차원과 인간적인 '절대 고독'의 세계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느냐는 문제는 쉬 풀리지 않는다. 물론 우리는 그의 절대고독을 추구하는 것이 유일신을 찾기 위한 영적 고행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모순에 대하여 시인은 "인생관적으로는 천국의 기독교를 믿으면서 인간적인 고독에 관심을 갖는 것은 확실히 모순이다. 그러나 이 모순을 알면서도 시는 사상보다 먼저 기질의 소산인 것도 알고 있다. 그러므로 나의 고독이 절망적인 고독은 아니다. (중략) 거듭 말하거니와 기질은 사상에 선행하는가 보다 -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굽이쳐 가는 물굽이와 같이)"이라 말하고 있다. -윤재열 외 <즐거운 시여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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