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모음/운문-詩,시조

妬花(투화) - 李奎報 (이규보)

素彬여옥 2013. 4. 5. 09:04

이안삼카페에서 보내는 " 문학의 향기 "

duga19 .jpg

    妬花(투화) - 李奎報 (이규보)

    鼓舞風所職(고무풍소직)
    被物無私阿(피물무사아)
    惜花若停風(석화약정풍)
    其奈生長何(기내생장하)
    花開雖可賞(화개수가상)
    花落亦何嗟(화락역하차)
    開落摠自然(개락총자연)

바람이 할일은 만물을 흔들어 깨워 춤추게 하는 것

만물에 입히는 공덕 더하고 덜함이 없는 걸세

만일 꽃을 아껴 바람을 불어 주지 않는다면

그 꽃 영원히 살아 있을수 있을까?

비록 꽃이피는 것도 좋겠지만

꽃이 지는 것 또한 슬퍼할 일 아니라네

피고 지는 것 모두가 자연적 이치일 뿐이라네!


*李奎報 (이규보)

1168(의종 22)~1241(고종 28).고려의 문인

본관은 황려(黃驪). 자는 춘경(春卿), 초명은 인저(仁低),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지헌(止軒)·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 9세 때 이미 신동으로 알려졌으며 14세 때 성명재(誠明齋)의 하과(夏課)에서 시를 지어 기재(奇才)라 불렸다. 소년시절 술을 좋아하며 자유분방하게 지냈는데, 과거지문(科擧之文)을 하찮게 여기고 강좌칠현(姜左七賢)의 시회에 드나들었다. 이로 인해 16, 18, 20세 3번에 걸쳐 사마시(司馬試)에서 낙방했다. 23세 때 진사에 급제했으나 이런 생활을 계속함으로써 출세의 기회를 얻지 못했다. 개성 천마산에 들어가 백운거사를 자처하고 시를 지으며 장자(莊子)사상에 심취했다.

당시 계관시인과도 같은 존재로 문학적 영예와 관료로서의 명예를 함께 누렸다. 국란의 와중에 고통을 겪는 농민들의 삶에도 주목, 여러 편의 시를 남기기도 했다. 그의 문학은 자유분방하고 웅장한 것이 특징인데, 당시 이인로 계열의 문인들이 형식미에 치중한 것에반해 기골(氣骨)·의격(意格)을 강조하고 신기(新奇)와 창의(創意)를 높이 샀다. 자기 삶의 경험에 입각해서 현실을 인식하고 시대적·민족적인 문제의식과 만나야 바람직한 문학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백운소설 白雲小說〉·
〈국선생전 麴先生傳〉 등의 저서와 다수의 시문을 남겼다.




http//cafe.daum.net/ansam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