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내리는 어느날 가창숲에서 내가 찍은 엉겅퀴풀꽃
몇일전 조선일보에서 읽은
나태주시인의 얘기가 나왔는데
거기서
시인은
잠들기전 기도
하느님
오늘도 하루 잘 살고 죽습니다
내일아침
잊지말고
깨워주십시오
하며 기도한다는 소리에 나무 너무 공감이 가서
오늘아침은 시인님을 그려보며
“자세히 보아야/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
나태주 시인의 대표시는 바로 ‘풀꽃’이다.
24자밖에 되지 않는 이 짧은 시는 2003년 발표된 후 ‘국민시’가 되었다.
시인은 산문집에서 ‘풀꽃’의 탄생 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이 시는 나 시인이 초등학교 교장으로 일할 때 아이들을 위해 쓴 글이다.
풀꽃 그림 그리기를 할 때 아이들이 제멋대로 그려오길래
‘얘들아 풀꽃도 자세히 보면 예쁘고 오래 보면 사랑스럽단다’고 잔소리처럼 말하다
‘얘들아, 너희들도 그래’라고 말하곤 그 말을 그대로 쓴 시란다.
참 맑고 고운시라서
시인의 대표시들
그리움
- 나태주 시-
가지 말라는데 가고 싶은 길이 있다
만나지 말자 하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하지 말라면 더욱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그것이 인생이고 그리움
바로 너다.
편지 - 나태주
기다리면 오지 않고
기다림이 지쳤거나
가다리지 않을 때
불쑥 찾아온다
그래도 반가운 손님.
시집 : 그대 지키는 나의 등불
애기똥풀 2 - 나태주
무릎걸음으로
앉은뱅이 걸음으로
애기똥풀 꽃들이 처마 밑
물받이 홈통 가까이까지 와
피어 있다
풀꽃 이름
많이 아는 것이
국어 사랑이고
국어 사랑이 나라
사랑이란다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
애기똥풀 꽃 속에서
동그란 안경을 쓰고
웃고 계셨다.
시집 <산촌엽서> 문학사상사.
고욤감나무를 슬퍼함 - 나태주
고욤감나무 한 그루가 베어졌다 올봄의 일이다
해마다 봄이면 새하얀 감꽃을 일구고
가을이면 또 밤톨보다도 작고 새까만 고욤감들을
다닥다닥 매다는 순종의 조선감나무
아마도 땅주인에게 오랫동안 쓸모 없다
밉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이 나무를 안다
삼십 년 가까운 옛날의 모습을 안다
지금 스물여덟인 딸아이
제 엄마 뱃속에 들어 있을 때
공주로 학교를 옮기고 이사갈 요량으로 이 집 저 집
빈 방 하나 얻기 위해 다리 아프게 싸돌아 다닐 때
처음 만났던 나무가 이 나무다
빈방이 있기는 하지만 아이 딸린 나 같은 사람에게
못 주겠노라 거절당하고 나오면서 민망하고
서러운 이마로 문득 맞닥뜨린 나무가 바로 이 나무다
저나 내나 용케 오래 살아남았구나
오며 가며 반가운 친구 만나듯
만나곤 했었지 꽤나 오랜 날들이었지
그런데 그만 올봄엔 무사히 넘기지 못하고
일을 당하고 만 것이다
둥그런 그루터기로만 남아 있을 뿐인 저것은
나무의 일이 아니다
나의 일이고 당신의 일이다
고욤감나무 사이
나 홀로 여기와 오늘 슬퍼하노니
욕스런 목숨을 접고 부디 편히 잠드시라
아름다운 짐승 - 나태주
젊었을 때는 몰랐지
어렸을 때는 더욱 몰랐지
아내가 내 아이를 가졌을 때도
그게 얼마나 훌륭한 일인지 아름다운 일인지
모른 채 지났지
사는 일이 그냥 바쁘고 힘겨워서
뒤를 돌아볼 겨를이 없고 옆을 두리번거릴 짬이 없었지
이제 나이 들어 모자 하나 빌려 쓰고 어정어정
길거리 떠돌 때
모처럼 만나는 애기 밴 여자
커다란 항아리 하나 엎어서 안고 있는 젊은 여자
살아 있는 한 사람이 살아 있는 또 한 사람을
그 뱃속에 품고 있다니!
고마운지고 거룩한지고
꽃봉오리 물고 있는 어느 꽃나무가 이보다도 더 눈물겨우랴
캥거루는 다 큰 새끼도 제 몸속의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다니며
오래도록 젖을 물려 키운다 그랬지
그렇다면 캥거루는 사람보다 더
아름다운 짐승 아니겠나!
캥거루란 호주의 원주민 말로 난 몰라요, 란 뜻이랬지
캥거루, 캥거루, 난 몰라요
아직도 난 캥거루다
시계에게 밥을 먹인다 - 나태주
한밤중에 깨어 괘종시계의 태엽을 감는다
이런, 이런, 태엽이 많이 풀렸군
중얼거리며 양쪽 태엽을 골고루 감는다
어려서 외할머니는 괘종시계 태엽을 감는 것을
시계에게 밥을 준다 그랬다
이 시계는 아내보다도 먼저 나한테 온 시계다
결혼하기 전 시골 학교에 시계장수가 왔을 때 월부로 사서
고향집 벽에 걸었던 시계다
우리 집에도 괘종시계가 다 생겼구나!
아버지 어머니 보시고 좋아하셨다
오랜 날, 한 시간마다 한 번씩 하루에 스물네 번씩
그 둥글고도 구슬픈 소리를 집안 가득 풀어놓곤 했었다
어려서 외할머니는 시계가 울릴 때마다 시계가
종을 친다고 말씀하곤 했었다
시계 속에 종이 하나 들어 있다는 것을 나는 결코 의심할 줄 몰랐다
그러나 이 시계 고향집 벽에서 내려지고 오랫동안
헛방에 쑤셔 박혀 있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몇 해 전 우리 집으로 옮겨 온 뒤
다시 나하고 함께 살게 되었다
친구야, 밥이나 많이 먹어 밥이나 많이 먹어
나는 새벽에 잠깨어 중얼거리며 시계에게 밥을 먹인다
........
이제
일흔이 넘은 시인은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다> 산문집에서
인생, 사랑,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가운데 가장 많이 눈에 띄는 단어는 바로 ‘행복’이다.
“우리들이 꿈꾸고 소망하는 행복한 삶은 결코 남의 것이 아니다.
나 자신 안에 이미 내재해 있는 것이고 이미 준비된 일이고 뻔하고 뻔한 일들이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발견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그 행복을 찾아내고 그것을 밖으로 표현하고 좋은 쪽으로 기르고 성장시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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